블랙미러는, 과학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소재로 각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시리즈이다. 넷플릭스의 수많은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구성으로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요즘 <블랙미러>가 유독 인기를 끄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소재가 상당히 독특하다.
과학 기술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들이 선정된다. 단면적으로만 보자면 선정성, 폭력성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그냥 그런 것들과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주제들이 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며, 단지 그것을 부각하기 위한 에피소드들이 절대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지금 우리의 이야기 같다.
여러 과학 기술이 등장하는 통에 당장 지금이라기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느낌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한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자각심이 들기도 한다. 특히 시즌 1, 에피소드 2 '핫샷'은 여러 영상 매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금 우리의 자화상 같았다. 진짜가 아닌 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를 혹사시키고 인간의 가치를 미디어의 존재보다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온 국민이 사랑하는 왕족 수잔나 공주가 납치된다. 범인이 요구는 단 하나. 바로 몇 시간 안에 영국 공영 방송 생방송을 통해 총리가 돼지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내보내야 한다. 그 때문에 총리는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공주를 구할 것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이 에피소드는 시놉에서처럼 총리의 개인적 고뇌에만 집중할 건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엽기적인 협박을 대하는 대중의 인식 변화, 대중과 한 명의 정치 세력의 심리적, 가치적 대립.
사실 소재 자체는 그닥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이 에피소드가 좋았던 건 그 모든 대립과 한 인간 각자의 심리 변화가 너무나 잘 드러나도록 연출된 모습이었다. 화면 한 가득 잡힌 인물들의 표정의 변화에 집중하도록 한 것과 화면 속 절망과 대중의 적막의 대치가 굉장한 볼거리로 다가온다.
생존을 위해,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 한 여자가 그 삶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 진심으로 노래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던 그 에피소드. 전력을 생성하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굴리며 시간을 벌고, 그걸로 의미 없는 가상의 것들을 사고, TV를 시청하며 시간을 소비한다. 진짜 꿈을 위해 그동안의 노력을 지불해도 결국 그건 또다시 흥미와 오락거리를 위해 사라지고 만다. 배경과 소재들은 가까운 미래이나, 현실적으로 유튜브 같은 요즘 미디어의 세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가까운 미래,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다 삭제할 수도 있다. 아내의 과거가 담긴 기억에 집착하는 남자. 이런 기억 따위,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보는 상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면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단면 중 하나, 바로 자신의 아내의 과거에 집착하고 결국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가 되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세상 속에선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고, 어떤 범죄도 완전 범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그것 자체가 또 새로운 범죄가 될 수도 있다. CCTV를 모든 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효과와 부작용. 때로는 '잊힐 권리', '기억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가까운 미래, 끝을 모르고 발전하는 과학기술.
우리는 어떤 변화와 위험을 안고 살아가게 될까.
일상의 편리와 진정한 행복엔 상관관계가 있을까.
자극적인 소재와 연출에도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가 생기게 만드는 건 <블랙미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