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미친, 천재 이중섭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천재긴 천재였던 모양이다. 17살이 되던 해에 원산으로 이사 갔고, 제3,4,5 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서 잇따라 입선한다. 1936년 21살 일본으로 넘어가 미술을 배운다. 처음엔 제국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갔다가 관두고 문화학원으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아내가 될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난다. 제2,4회 자유미술과협회전에서 입선한다. 1941년부터 43년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다가 일본 전시체제가 깊어져 원산으로 귀국한다. 1945년 원산에 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혼례를 올리고 1946년 해방 공간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 1950년 한국전쟁일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간다. 부산에서 날품팔이를 하다 1951년 1월 제주로 넘어가고 이중섭 그림에서 ‘게’가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게 된다. 1951년 12월에 다시 부산으로 가고, 1952년 6월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간다. 1953년 7월에 가짜 선원 신분으로 일본에 가 가족들을 만나고 1주일 만에 돌아와서 서울에서 생활하며 활발한 작품 생활을 했다. 1955년 40살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치르고 대구에서도 개인전을 열었으나 작품 판매가 기대했던 것만큼 이뤄지진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입원을 하며 몸이 약화된 모습을 보인다. 1956년 9월 6일 목요일 오후 11시 45분 지키는 사람 없이 생을 마감한다.
# 이중섭
# 최문희
# 다산책방
# 2013.11
# 한 줄 추천평 : ★★★★☆ 이중섭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소설은 아니다.
# 읽기 쉬는 정도 : ★★★★★ 읽히지 않는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책 보듯 술술 읽을 수 있다.
두 권으로 된 소설 「이중섭」을 함께 보면서 요즈음 부쩍 접촉이 늘어난 이중섭의 그림을 떠올려본다. 사람 자체가 순수하고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 부산에 일본인 수용소에서 가족들이 배고픔에 사실상 죽어가고 있을 때조차 그림을 판매한 돈으로 친구들과 술 마시는 데 탕진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가족들 입장에선 최악의 가장이다. 소설 속의 이중섭은 답답이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그림을 노리고 찾아와 그냥 훔쳐가도, 그림을 주고 그림값을 받지 못해도 알면서도 따지지 못한다. 이중섭이 마치 고흐처럼 살아생전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해 가난해서 홀로 외로이 죽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이중섭은 꽤나 많은 작품을 파는 당대의 인기 화가였다. 자기 것을 전혀 챙기지 않았을 뿐. 이중섭은 가족을 가졌으면 안 되는 사람이지 않을까. "저는 그림과 결혼했어요."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 듯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여건 속에서 예술혼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마 좀 더 편안한 상황이었어도 화가 이중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닿는다. 그게 그냥 이중섭이라는 사람 그 자체였을 것 같다는 느낌, 아마 이 느낌을 소설에서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화가 이중섭은 그림에 미친 사람이다. 그리고 천재임에 분명하다.
그림이든, 글이든, 노래든, 무대든 무슨 형식이든 간에 개인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한껏 담아 드러냄 자체가 가치 있다. 레디메이드라는 말도 이미 옛 단어가 되어 버리고, 복사 붙여 넣기의 시대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되면 값어치가 생긴다. 브랜드 이중섭만의 개성은 확실히 뛰어나다. 한국적 정서에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담고 있는 그림들. 마티스의 원색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역동성과 에너지까지. 거기다가 이중섭 생애에 관한 스토리까지 더해진다.
처음 봤을 때보다 이중섭 그림이 좋아졌지만, '와! 이 사람이야!' 하고 본격 덕질을 해야겠다는 한 방은 여전히 없다. 좀 더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읽어 본 소설로도 나와는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 어떤 작가가 나에게 세게 다가오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도 예술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