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여해 Jan 27. 2022

아기자기 숲길과 저지오름 : 올레 13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 올레

# 15.9 km

# 용수포구 ~ 저지예술 정보화마을 

# 상징 : 낙천리 의자마을

# 21년 8월 8일 11시 30분 ~ 13시 (1시간 30분)

# 21년 8월 15일 15시 ~ 19시 10분 (4시간 1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4~5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17



올림픽 여자 배구와 함께 올레 13코스 출발 


장마 이후로 계속 구름 많음 정도였는데 오랜만에 흐림이다. 새벽에 일찍 서두르려고 했지만 매일매일 빡센 일정이라 늦잠을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알람 없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2020 올림픽 여자배구 4강전 시간에 맞춰 8시 58분에 눈이 떠졌다. 1세트 초반엔 승산이 있어 보였지만 1세트 후반부터 패색이 짙어졌다. 배구를 보며 울어서 그런지 약간 정신이 혼미하면서 기분이 굉장히 가라앉았다. 이건 져서가 아니라 그들의 간절함이 좌절된 것에 대한 공감과 전염이다. 올레길을 떠날 땐 항상 정상보다 톤업된 기분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오늘은 날씨와 어울리게 neutral 상태보다 하강해있는 분위기이다. 저지로 떠나는 드라이빙 길에 신나는 노래는 어울리지 않는다. 


16시에 프리다이빙 트레이닝이 예정되어 있어 아마 아주 조금밖에 걷디 못할 것 같았다. 잃어버린 마을 조수리 하동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걷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짧게 올레길을 걸을 때의 문제점은 돌아가는 교통편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걸어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북적북적한 간세 안에 들어 있는 도장을 11시 30분에 찍었다. 13코스는 정방향으로 오면 마지막에 저지오름이 너무 힘들다는 후기를 봐서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올레 13코스 역방향 : 저지오름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져 14-1 코스를 갔다면 이번엔 직진으로 가서 오른쪽에 위치한 저지오름으로 들어간다. 저지오름은 올레길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유명한 오름이다. 해발 고도 239m, 비고 100m, 분화구 둘레 800m, 깊이 62m 인 분석구이다. 정상에 오르면 전망대도 있고, 그 옆에 분화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경사가 엄청난 분화구 관찰 계단도 있다. 보이면 가봐야 하고, 가보면 봐야 하는 나에겐 최고의 오름이었다. 성산일출봉도 위에서 안으로 굽어보는 분화구를 사실 더 자세히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저지오름 분화구 계단은 꽤나 힘들지만 그래도 왕복 10분이면 충분하다. 많은 오름들처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정상 분화구 둘레길, 그리고 아래에서 오름을 도는 둘레길이 있다. 올레 13코스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정상에서의 둘레길을 포함하고 있다.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360도 올어라운드 뷰로 굉장했다. 비양도, 차귀도, 수월봉, 당산봉, 모슬봉, 산방산, 금오름, 성이시돌오름, …. 넓은오름? 등등 이제는 꽤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제주 곳곳의 자연들이 다 보였다.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흐린 날씨가 아쉬웠다. 오름을 오르기엔 적합했지만, 뷰를 감상하기엔 살짝 부족한 날씨! 흐릿함 속에서도 빛나는 게 바로 제주 풍경이다. 


분화구 계단으로 내려가 또 심박수 170까지 오르며 구경을 마치고 저지오름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아주 금방이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올라간 기분인데 내려올 땐 이렇게 잠깐이라고? 놀랄 정도였다. 


저지오름은 혼자 걷기 좋고 또, 비 와도 좋고, 맑을 때도 좋아 여러 번 방문하였다. 초가을 해질녘 날이 좋아 다시 찾은 저지오름은 역시나 환상적인 뷰를 뽐내며 아름다웠다. 매일매일 올라 보고 싶은 저지오름. 아니, 제주의 오름이다. 


21년 10월 중순에 방문했던 저지 오름 정상뷰. 파노라마가 잘 어울리는 제주 풍경.

고즈넉한 뒷동산아리랑길


뒷동산아리랑길 이라고 제주올레에서 이름 지은 길을 내려왔다. 내려올 땐 길이름을 몰랐다. 역방향으로 걸어서 이 길을 들어올 때 알 수 있었다. 내리쬐는 햇빛이었으면 힘들 수 있는 길인데, 흐린 날이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기에 아주 적합한 길이었다. 묘들이 아주 많았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사람 사는 정다운 기분이 들어 한적한 올레길에 꽤나 많이 익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뒷동산아리랑길은 시멘트 길로 되어 있지만 주변이 고즈넉한 제주 시골의 풍경을 담고 있어 불편하지 않다. 



더 가기엔 돌아오는 것까지 계산해서 시간이 좀 애매했다. 연꽃이 핀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용선달리설촌에서 13시에 1시간 30분의 짧은 올레길을 마무리 지었다. 




비 오는 광복절 : 용수포수에서 다시 출발


비 내리는 광복절 남편과 함께 올레길 13코스를 마무리하기 위해 출발한다. 점심으로 두둑이 숙성도 삼겹살을 먹고 오후 3시 느긋하게 걷기 시작한다. 차귀도 요트를 타기 위해, 올레 12코스의 마무리를 위해 몇 번 왔던 용수포구에 다시 왔다. 비가 옷을 적실 정도로 내리고 있어 우의를 입고 출발한다. 



저수지인가? 궁금해지는 작은 연못을 끼고돈다.


용수리 마을길 그리고 너른 밭길


차귀도가 보이는 제주의 서쪽 바다를 뒤로하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다음번에 걸을 땐 찐 역방향으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바다를 등지는 것보다 바다를 향해 나아갈 때 좀 더 즐겁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걸려있으면서 무언가 눈길이 가는 건물이 있다. 들어가도 되는 걸까? 하는 주저함이 0.1초 있었지만 문도 없이 열려 있어 구경해본다. 제주해녀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차도 다니지 않고 조용한 마을길이다. 비 내리는 휴일에 걷는 이는 우리뿐이다. 이렇게 비 내리는 마을길을 걸은 적이 있었던가? 곱씹어본다. 



순례자의 교회를 지나간다. 올레 13코스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본 곳이다. 순례자의 교회는 유명한 곳인 듯 드나드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나는 순례자의 교회보다 그 맞은편에 있는 일본 신사 느낌을 내는 이 구조물에 더 눈길이 갔다. 제주 고유의 건축물이라기엔 너무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순례자의 교회를 지나 500m 정도 더 걸으면 지붕이 반 넘게 무너져버린 옛 제주 집을 시작으로 용수저수지를 볼 수 있다. 이 무너진 옛집을 잡초들이 점령해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용수저수지



제주에서 이렇게 넓은 저수지를 본 적이 없다. 한림으로 내려가는 중산간서로에서 차로 지나가며 본 저수지도 있었지만 규모가 이보다 작았다. 1957년 건립된 용수저수지는 평대지, 뱅뒷물저수지, 서부저수지라고도 불린다. 하천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고 빗물이 모여서 유입되는 지표류로 채워진다. 맑은 날 보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곳은 습지 생태계의 보고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등급인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매, 2등급인 물수리, 말똥가리, 항라머리검독수리, 천연기념물인 원앙, 새매, 황조롱이 등이 찾는다고 한다. 비 내리는 용수저수지에서 새는 만나지 못했지만, 많은 낚시꾼들과 모기를 볼 수 있었다. 



5km 지점을 16시 40분에 지난다. 


13코스의 하이라이트라는 특전사 숲길은 못 간다


13코스의 진면목이라고 하는 특전사 숲길을 기대했는데, 사유지라고 해서 코스가 변경됐다. 


특전사 숲길은 50명의 특전사 대원들이 이틀 동안 총 3km의 숲길을 정비하여 만들어낸 길이다. 그들의 노고가 스며들어 값진 길이지만 다른 길보다 '더 아름다워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특전사 숲길 뒤로 계속 이어지는 중산간 숲길은 쪼른숲길, 고목나무숲길, 고사리숲길, 하동숲길, 고망숲길 등등 모두 다 엄청나게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다. 



충분히 좋아 좋아 : 쪼른숲길, 고목나무숲길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있어 '고목나무숲길'이라고 제주올레가 명명한 길이다. 




올레길 13코스에 오아시스가 하나 나와 잠시 쉬었다. 올레길 한 중간에 있어 우연히 들어간 카페인데, 그렇게 만난 카페 치고는 유명한 모양인지 꽤나 제주허씨들이 많다. 지난번 올레 11코스에 쉴 곳이 하나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 데에 몇 시간이나 걸으며 '고난의 행군'이라고 올레길을 지칭하던 남편에게 음료를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기자기한 올레 13코스의 숲길들 : 고사리 숲길


자잘 자잘한 숲길을 많이 지나는 올레 13코스는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다채로움에 즐겁다. 이렇게 비가 촉촉한 날에 제주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올레 13코스의 아기자기한 숲은 직접 걸어야 그 맛을 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깊이와 향기가 대단하다.



7km 지점을 17시 53분에 지났다. 



낙천리 아홉굿마을


숲길을 빠져나와 찻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낙천리 아홉굿 마을이 나온다. 굿이 무당이 하는 굿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샘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아홉 개의 샘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낙천리 아홉굿 마을의 또 다른 별명은 의자마을이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주민들이 1000개의 의자를 만들고 의자공원을 조성하였다.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느껴지는데, 왜 의자였을까?라는 궁금증은 검색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18시 25분 비를 맞으며 중간 스탬프를 찍는다. 낙천리 아홉굿 마을에선 빗살무늬 토기 같은 모양의 전망대를 짓고 있다. 수직적 건물은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올레 13코스의 또 다른 숲길 : 낙천잣길


어두컴컴한 낙천잣길을 지난다. 올레길을 걸으면 이런 종류의 어두운 숲길을 자주 만난다. 그 와중에 지척에서 꿩이 푸다다닥 하고 날아올라 둘 다 엄청나게 놀랐다. 



저 멀리 저지 오름이 보며 마을길을 걷다 보면 용선달리가 나온다. 



용선달리에서 마무리


19시 10분. 용선달리설촌 지난번에 끝맺음했던 연못 앞에서 마무리지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콜택시를 불렀으나 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큰길 용금로로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보기로 한다. 그런데 버스표를 보니 이상하다. 다시 한번 콜택시를 시도했고, 만원으로 용수포구까지 가기로 딜 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갈 수 있어 다행이다 하고 안심. 용수포구에 도착했을 땐 19시 50분으로 바다엔 고기잡이 배 불이 들어와 있다. 



올레 13코스는 중산간 숲길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저지오름을 따로 떼어내서 걸었지만 용수포구에서 저지오름까지 순방향으로 한 방에 걸으면 마을길, 다양한 오솔길, 오름까지 제주 중산간을 칵테일로 즐길 수 있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