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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Feb 08. 2022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알잖아? 

#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

# 필립 브라운, 휴 로더, 데이비드 애쉬턴

# 개마고원

# 2013년 9월


# 한 줄 추천평 : ★★★ 지식 경제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알기엔 좋으나,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추천은 애매하다. 비슷한 주제로 신간이 분명히 있을 듯. 


# 읽기 쉬는 정도 : ★★★★ 잘 읽힌다. 주제가 하나로 정해져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어 그냥 1장부터 따라가며 읽으면 된다. 






약 10년 전에 샀던 책이다. 한 2/3까지 보다가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꼬집었던 지식 경제의 피해자들의 분노가 어떻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로 얘기가 시작되는 2021년「공정하다는 착각」과 연결된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고작 이런 일? 고작 이 연봉? 왜 그럴까?


저자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지식기반 사회가 대졸자 고용 수요를 더 창출할까? 교육이 고액 연봉의 직업을 보장해준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개인이 재능과 능력을 키우는데 투자하면 그렇게 될까? 


1980년대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자유무역, 개인의 이익 추구, 번영과 정의를 가져다주는 시장경제를 향한 맹신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고용주들이 생산성 높은 노동력으로부터 이익을 찾고, 고급 인력의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맞다, 내버려 두면 된다라고 했지만, 그 결과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운 만큼 번다"는 기대는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우리는 성실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오오력을 하며 살아도 덜 받고 더 일하고 있다. 엄청난 연봉을 받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적게 받고 많이 일하는 일자리라도 갖기 위해 어릴 때부터 수많은 교육과 경쟁에 내몰린다. 개인이 노력하면 해결되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여전히 많은 청년들 아니 청중장년의 탓으로 돌리지만 이쯤 되면 고학력자, 고급 인력임에도 저임금에 머무르는 상황을 구조가 문제의 본질임을 어렴풋이라도 눈치채게 된다. 


중2병 걸린 아들이 아니라도 누군가 하는 "어차피 그렇게 살 건데 왜 공부해야 돼요?"라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디지털 테일러리즘으로 뇌 없는 손으로 전락한 노동자들


포드 자동차 대량생산 방식으로 대표되어 20세기까지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뇌 없고 손을 움직이는 기계 부품과 같았다. 그러다 1960년에 들어서 경제학자들이 많은 노동자보다는 질 좋은 노동자가 중요하다는 인적자본 이론을 개발한다. 이에 교육과 훈련에 투자함으로써 노동자의 질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요소라는 아이디어다. 이후 첨단기술이 발전하면서 육체노동에서 지적 노동으로 경제의 주도권이 이동했고, 개인과 기업, 국가의 발전은 기술과 지식에 기반하게 된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동기 부여가 성장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학력, ‘머리’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큰 비용을 치른다. 고학력 노동자가 고임금을 받는다는 약속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었으나 모두가 고학력자가 되었을 경우를 상상하진 않은 듯하다. 


기업은 아주 뛰어난 인재에게는 막대한 임금을 주지만, 보다 적은 비용으로 고급 지식노동을 이용하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한다. '창조적 파괴의 강풍'이 휘몰아친 이후인 현재 창의적인 인력보다는 소위 개기지 않고 생각 없이 하라는 일을 잘하는 인력이 더 중요해졌다. 어제의 혁신이 오늘의 일상이 되어 사람들에게 생각할 자유를 주기보다 자율성을 제한하고 노동을 세분화하고 통제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인다


20세기 초 경영학자인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는 미국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과학적 경영관리 원칙을 적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 관리, 즉, 테일러리즘을 도입하면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의 지식, 기술, 노하우를 시스템으로 전환하였고, 이것들은 공식이나 매뉴얼화되어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노동자들이 비슷한 수준의 업무 능력을 발휘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테일러리즘이 21세기엔 디지털 테일러리즘이 되었다. 표준화된 지식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IT산업, 의료업 등 모든 업계를 막론하고 적용되고 있으며 물리적 장벽도 없어 세계 어디든지 짧은 시간 안에 업무를 분산시키고 결합시킬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손이라면 기업에서 생각을 담당하는 뇌는 누구일까? 단 한 명만이(극소수만이) 사고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머신러닝이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선 극소수의 엘리트 직원 10% 만이 '사고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충분히 많이 배운 고급인력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손의 역할에 머물 것이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첫째, 좋은 일자리를 위해 경쟁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연대하며 공존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보호무역을 해서는 안되고, 신자유주의를 믿고 내버려 두지 말고 책임을 갖고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만들고, 그들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과학은 어렵다. 해결 방안 제시는 더 어렵다. 대부분의 책이 좋은 말로 결론 맺는다. 그만큼 당연한 것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해결책이 정말 너무 맞다는 격한 동의도 들지 않는다. 좋은 말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정말 맞는 말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평행 우주를 만들어서 다양하게 실험을 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회과학 책들을 보면서 반복적으로 결론지어지는 '좋은 말'이란 바로 연대라는 단어이다. 낯설고 어딘가 거리낌이 생기는 단어지만 결국 포인트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 공정하다는 착각 」과 결이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덜 답답했다. 도리어 내가 느꼈던 또는 당했던 '생각해선 안 되는 파편화된 노동'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풀어내어 설명해줘서 좀 시원했다고 할까. 또, 경영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데, 테일러리즘이라는 용어는 경영학에서 유래되었고, 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경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노동자가 되는 것도 힘들고, 내 입맛에 맞는 노동자를 구하기도 힘들다. 좋은 노동자가 되기도, 좋은 경영자가 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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