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녀의 꿈

프리다이빙을 영접하다

태초에 물속성

by 정여해

물을 무서워할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낚시를 취미 수준을 넘어 부업정도로 하던 부모님을 따라 바다를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물을 무서워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물'과 '무서워하다'가 한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충격받아 집에 돌아가 엄마한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땡땡이는 물이 무섭대!"


발목까지 오는 하천이든, 허벅지까지 오는 계곡이든, 허리까지 오는 강이든, 머리를 넘어서는 바다든 물만 보이면 들어가는 우리 남매였다. 어릴 땐 물에 보이면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항상 축축하고 늘어진 옷을 입고 있던 기억이다. 그런데 젖은 옷 때문에 불편하거나 추웠던 기억이 나지 않아 부모님께 여쭤보니 엄마가 항상 여벌의 옷을 두세 개씩 들고 다니셨단다. 물에 놀러 가는 일정이 아니었어도 꼭 챙기셨다고. 언제 어디서 물이 나타나고, 언제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서 놀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릴 적은 '도랑 치고 가재 잡고'였다. 경상도 시골에는 귀여운 청개구리를 비롯하여 도룡뇽과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자랑하던 가재가 많았다. 사대강 사업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낙동강 모래톱에서 달리기 하고, 수영하며 놀았다. '자연스러운'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IMG_9833(2).JPG



8월 초 휴가 시즌엔 항상 바다에 갔다. 오빠랑 나에겐 루틴이 있었다. 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하면, 일단 바다로 뛴다. 튜브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보면 아빠는 텐트를 완성시켜 놓고 술을 마시러 갔다. 엄마는 튜브에 바람을 넣어서 백사장 어딘가에 파라솔을 피고 앉아계셨다. 그렇게 5일 눈 뜨고 잠들 때까지 바다에서 놀았다. 백사장에서 먹던 강원도 옥수수가 참 맛있었다.


대체로 동해를 많이 갔는데, 가끔 서해를 갈 때가 있었다. 언젠가 바람을 넣어서 떠있을 수 있는 튜브와 비슷한 재질의 배가 있었는데, 그걸 타고 오빠랑 둘이 나갔다가 굴인지 뭔지에 긁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돌아온 적이 있다. 병원을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많이 아팠던 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탔던 배가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그 배는 그 때 구멍이 많이 나서 버려졌다.


언제는 남해에 한 해수욕장에서 엄마랑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작은 해수욕장이었고, 바다 중간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테우 같은 모양의 구조물이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그 곳에 가고 있었는데, 수영을 하다 보니 바닥에 발이 닿지 않게 되었다. 구조물을 멀리 두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붙잡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무게에 바닷속으로 짓눌렸고, 엄마는 내 어깨를 밟고 구조물에 닿아 붙잡고 올라갔다. 아마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잠깐의 패닉 상태에 빠졌던 모양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엄마의 행동을 꽤나 거리를 두고 관찰했음을 깨달았다. 엄마보다 작고, 엄마보다 발이 안 닿았음에도. 이후에 이런 엄마를 자주 놀렸다.

"엄마는 혼자 살겠다고 나 밟았잖아!"


몇 년 전 제주에서도 큰 파도에 휩쓸려 제주의 검은 현무암 바위를 나의 몸에서 난 피로 빨갛게 물들일 뻔한 적도 있었다. 나의 버디는 정말 내가 죽을 줄 알았다고. 머리는 바위에 처박기 직전이고, 부서지는 파도에 시야는 온통 새하얀 물거품뿐이었지만,

'스노클도 마스크도 다 멀쩡해. 침착하면 돼.'

라며 위기를 빠져나왔다. 도리어 그곳을 벗어난 후 버디가 보이지 않아 더욱 당황했다. 얘 어떻게 된 거 아냐? 꽤나 위급한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 멈추지 않더라.


IMG_4125.JPG


어릴 때부터 물을 엄청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제주에서 매일매일 바다에 들어가며 끄집어낸 나의 기억이다.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데 '물 사랑'이 꽤나 크다는 것을 어떻게 잊었을까, 왜 잊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물은 기억하고 있다’는 오래된 문구가 떠오른다.


제주에 머물면서 배우고 싶었던 : 스쿠버 다이빙


바다를 매우 좋아하는데, 막상 스쿠버 다이빙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다. 세부에서도, 발리에서도 스쿠버 다이빙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휴가를 쓰고 가는 여행이라 짧은 기간이었다. 스쿠버를 배우려면 안 그래도 짧은 여행을 모두 다이빙에 투자해야만 했다. 또, 학생 신분이라 수입이 많지 않았는데 두 사람(남편과 나)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려면 지출도 꽤나 컸다. 그렇게 다이빙을 배우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제주도에 머물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스쿠버를 배울 예정이었다. 서울에서 폭풍 검색으로 다이빙 센터도 알아보고, 주말이 되면 많이 붐빌 것 같아서 주중 시간으로 예약하였다. 2021년 5월 11,12,13일 3일 동안 오픈 워터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고, 18,19일 이틀 동안 어드밴스드 오픈 워터 코스를 진행하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역시나 바닷속에 들어가는 다이빙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제주에 있는 김에 레스큐 코스까지 할 수 있으면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프리다이빙을 영접해 버렸다!


프리다이빙을 해보고, 그 맛에 빠지면 다시 스쿠버 다이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나라는 실험 대상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스쿠버는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프리 다이빙은 스쿠버 보다 훨씬 자유롭고, 스쿠버 못지않게 수심을 타며, 훨씬 활기차게 바다를 온몸으로 즐긴다. 스쿠버가 장비로 인해 제한된 움직임으로 좀 더 소극적인 느낌이고, 프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다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 점에서 나에겐 스쿠버 보다 프리가 훨씬 재미있었다. 스쿠버가 실용 및 레저이고, 프리는 스포츠라는, 이후 심오한 프리다이빙의 세계가 열리지만, 처음 만난 프리 다이빙은 자유롭게 바닷속을 유영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


1693538269149.jpg


하지만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놓은 건 참 잘한 일이다. 프리 다이빙을 스포츠로써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정말 물 안에서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공기통을 메고 들어간다. 건조한 공기로 숨을 쉬며 바다를 구경하는 맛도 좋다.

"물 속에서 숨 쉬어서 너무 편해"


DSC06870.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