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마다 현미한테 그 얘기를 털어놓을 껀데... 들어줄 수 있지?"
10살이 넘고 난 이 자그마한 동네가 날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둠 속을 헤매며 탈출을 꿈꿨지만 조용한 시골밖에 겪어본 적 없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13살, 인포메일을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작은 세계를 벗어나 세상과 연결되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덤벼 들었고,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인포메일을 받아보게 되었을 때 기뻤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마치 홀로 낙오된 우주선에서 미약한 생존 신호를 보내듯이. 그리고 현미는 나의 생존 신호에 답해준 사람이다.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현미 역시 파동의 발원지라는 것을. 현미도 누군가 답해주길 기다리며 끊임없이 신호를 생성한다. 그런 현미 였기에 나의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를 예민하게 알아차렸(던 것 같)다.
나는 어린아이라기엔 조숙했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미숙했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건 재미없었고, 어른들과 어울리기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학교만 후딱 다녀오고 나선 집에 있는 시간을 즐겼다. 혼자 인포메일을 꾸미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들, 들은 것들, 한 것들, 그에 대한 내 느낌과 생각을 어딘가에 외치고 싶었다.
시골쥐인 나로서는 상대의 부재가 시골 거주로 인한 사람 부족이 원인이라고 여기며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서울쥐 현미를 보면 그도 아닌 듯 하다. 사실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지도, 대화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이미 있었다. 우리는 그저 내 이야기가 펼쳐질 공간을 원했다.
내가 본 영화, 책, 내가 들은 음악, 학교에서 있었던 일, 여행, 좋아하는 가수 그리고 꿈. 나의 이야기를 무자비하게 털어놓는 공간, 그것이 우리에겐 편지였다.
"난 참 쓰잘데 없는 생각을 너무 깊게 해서 괜히 혼자 고민하고 그래. 그럴 때마다 현미한테 그 얘기를 털어놓을 껀데... 들어줄 수 있지?"(03.09.21 from 나, 중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