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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Dec 21. 2024

태초에 인포메일이 있었다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 우리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멋진 것 같아"

메일로 뉴스 레터가 오듯이, 라떼에 '인포메일'이 있었다. 원하는 인포메일을 선택하여 구독하면, 공짜로 정보가 담겨있는 메일이 왔다. 나는 우표 수집, 십자수, 고양이와 관련된 인포메일을 받아 보았고, 덕후로서 가장 많이 신청한 인포메일은 바로 H.O.T. 였다. 스케줄, 기사, 사진, 팬픽 등 하나의 주제에도 다양한 종류의 인포메일이 있었고, 구글신이 탄생하기 전, 미숙한 검색 엔진의 시대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들만의 다섯아이들’ 이라는 소규모 인포메일이 있었는데, 발행자가 고3이 되면서 후임을 구한다는 공지가 떴다.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면서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고, 그 분은 흔쾌히 내게 넘겨주셨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이었던 나는 나모 웹데이터를 이용한 홈페이지 코딩, FTP, 서버를 이용한 인포메일 구성, 예쁜 사진을 만드는 포토샵 등에 빠져들었다. 소리바다에서 H.O.T. 노래를 들으면서 웹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방과 후 일과의 전부가 되었다. 2주일에 한 번, 1주일에 한 번 발행되던 ‘우리들만의 다섯아이들’은 매일 발행하는 메일로 성장했고, 결국 H.O.T. 분야 에서 1위를 쟁취했다. 나의 노력과 열정으로 구독자수 1위를 달성했으니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그것에 임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경험이 훗날 코딩을 낯설어 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석사 전공까지 갔으니 여러모로 덕질은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내가 만든 작품이 전국 각지의 몇 천명의 사람들에게 배포되는 경험은 짜릿했다. 내가 맞닿고 이 자그마한 시골보다 세상은 훨씬 넓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정보 제공 말고 내 메일을 받아보는 저 너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더 깊게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포메일에 펜팔 친구를 구한다는 소식을 올렸고, 약 1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편지'는 낡았지만 아직은 사람들에게 먹히는 장치였던 것 같다. 더불어 '팬레터'에 익숙한 빠순이들이라는 점도 한 몫했으리라. 내가 답장을 보냈을 때 그에 대한 답이 다시 오는 건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3개월 후엔 다시 또 반으로 줄었고, 1년 후엔 단 한 명만 남았다. 그리고 그 한 명과는 20년 째, 지금까지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선생님이 아직도 편지를 쓰냐면서 신기해하시는 것 반, 부러워하시는 것 반이었어. 아무리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메일을 주고 받는다 해도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 우리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멋진 것 같아 
05.10.14 from 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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