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친구를 찾아도 여전히 친구라는 관계가 고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는 배우자를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자녀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이다.
옛 친구들을 현재에 만나면 아쉽지 않은가? 모여선 항상 과거 얘기만 하고 있다.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중학교 때 너 그랬잖아! 그때 그 선생님 기억나?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다. 한 번 찾아뵙자 하는 기약 없는 약속들과 추억팔이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갑지만, 집에 돌아오면 옛 친구들을 만남이라는 높은 산을 넘은 듯하다. 하지만 드디어 해냈다 또는 해치웠다는 정복감만 남을 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남는다. 채워지기 위해서 만났는데 도리어 비어버린 느낌은 기대와 목적 때문인지 더 허무하다.
과거의 친구들과는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기 어렵다. 누구는 비혼을 고집하고, 누구는 육아를 하고 있으며, 누구는 딩크족이다. 누구는 전업 가정주부이고, 누구는 휴직 중이고, 누구는 일 중독이다. 과거에 같은 반에 나란히 앉아서 함께 졸고, 함께 급식을 먹던 친구들은 너무 가까이 모여있어서 구분되지 않는 점들이었다면, 이제는 사는 방식이 너무 달라져 점과 점 사이는 마치 미국과 한국에 있는 사람인양 멀어졌다. 마음의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멀어져 만날 시간을 정하는 것도 힘들다. 가족 행사, 회사일, 개인적 약속 등등을 다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 만나야만 하는 ‘옛 친구들과의 약속’ 은 날짜 결정뿐만 아니라 파투도 쉽다.
결혼식 사진 찍을 때야 잠깐 얼굴을 보고, 소식은 한동안 끊어지기도 하다. 그리고 만나면 ‘하나도 안 변했네!’라는 말을 하고, 크게 할 얘기가 없어진다. 하나의 점처럼 보이던 우리가 이렇게 다른 현재를 살 것을 그때는 예상했을까. 하물며 미래를 얘기하기는 더 어렵다. 우리 사이에 ‘미래’가 남아 있던가? 더 이상 ‘우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진다. 너무 멀게 떨어진 점들은 우리라는 가까운 거리의 언어로 묶이기엔 무리가 있다. 일대일의 ‘너와 나’ 로도 묶기 버겁다.
현재의 친구들은 어떤가? 당신은 현재의 친구들이 있는가? 어릴 때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친구란 항상 학교에 가면 있는 사람들이고, 현재의 세상에 친구들이 존재함은 공기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당연했다. 나이가 들면 친구 만들기가 어렵다는 어른들의 얘기는 대학이 되면서 현실인가 싶더니 직장에 나가면서 사실이 되어 버린다. 직장 동료는 있어도 친구는 없다. 친해지고 싶어도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직장 동료의 관계라는 선을 넘어선 질문이 아닐까?’ 하고 망설여진다. 그렇게 현재의 친구는 레어템이 된다.
현재의 친구가 없어 과거의 친구를 찾아도 여전히 친구라는 관계가 고프다. 소셜링 이름으로 포장된 ‘온라인 친구 찾기’가 핫하게 떠오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참여했던 소셜링 어플에서 어떤 소셜링이든 열리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정원이 차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게 만난 소셜링 사람들도 비슷한 의견을 나누었다. ‘사람들이 이러한 만남을 고파하는 게 느껴진다.’라고. 현실 세계에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과의 만남이 차단되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사람들이 더욱 고프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소셜링은 핫해지고, 4인의 인원 제한은 ‘친구 같은’ 느낌을 더욱 주게 된다.
이제부터 나의 자랑을 해본다. 나에게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할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떤 인싸가 ‘고작 한 명?’이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극소수의 사람만을 사귀며 산 사람에겐 엄청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인싸에게도 ‘너를 이길 수 있는 비장의 친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만남부터 신비로웠던 나의 친구는 항상 사람들에게 내기를 건다.
“이 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 맞추는 사람에게 밥 산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공통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으면 항상 이 질문을 하고, 사람들의 오답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심리학자 존 크럼볼츠의 계획된 우연성 이론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의 만남에 의해서 인생의 80퍼센트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우연이라는 운명을 가장하여 들어온 과현미 (과거, 현재, 미래) 친구에게 감사와 사랑을 담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