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라는 꿈
올해 3월 초. 30페이지 분량의 단막극을 완성했다.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글쓰기에 대한 권태로움이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게 해줬는데, 바로 드라마 시나리오!
시나리오 작가? 생각만 안 해봤을 뿐이지 교육원 후기를 찾아보니 뭔가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작년 말부터 요상한 감정의 동기부여와 함께 처음으로 드라마 대본이라는 걸 써보게 됐다.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건 드라마 기획도 마케팅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솔직히 기획안 쓸 때 재밌었음..) 마케터는 늘 브랜드에서 해야 하는 것과 고객의 핏을 맞추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드라마도 그랬다.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게 맞물려있다는 게 맞겠다. 그렇게 1-2개월 매달려서 첫 대본을 완성했고 이실직고하자면.. 초고에 가까운 대본으로 합평을 받았다. (쓰레기를 제출한 것이나 다름없음)
수업시간에 받았던 피드백...
1. 장르가 모호하다. 로맨스도 아닌, 그렇다고 사회문제작도 아닌, 애매하다. 대본은 둘째치고 기획안에서 조차 장르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드라마는 실패다. 관념적인 표현 좀 그만써라.
2.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은 애초에 주인공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캐릭터가 다 죽어있다.
3. 기본이 안 된 스토리. 재미없다.
대본을 제출하면서부터 직감적으로 알았다. 합평으로 나의 대본은 땅에 버려질 것을...ㅎㅎ 소재에서 이미 망했다. 재밌는 스토리가 파생되기 어려운 소재였고 그냥 누군가의 가짜인생을 드라마인 척하는 느낌? 교육원 선생님도 보통 초보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지만, 위로만 받지 말고 얼른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다.
“처음이라.. 처음이라 그랬어요..!! ㅎㅎ”
<- 첫 작품 써봤기 때문에 이제 안 통함..!!
두 번째 작품 아이디어는 즉흥적으로 떠난 강릉 여행에서 피어올랐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편을 기다릴 때였는데 휴대폰 충전할 겸 공용공간에 앉아있었고, 기차역에서 노숙 중인 할아버지를 보았다. 상하의가 전혀 구분되지 않는 언발란스 옷차림 + 기름으로 엉키고 굳어버린 머리카락 - 전형적인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근데 뭔가 웅장한 강릉역이라는 공간과의 대비감이 강렬했다.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된 생각놀이..
- 할아버지는 몇 년 동안 여기 있었을까?
- 원래 강릉 사람일까?
- 알고 보니 노숙자가 아니라 누구를 기다리는 중이라면?!?!
- 그 사람은 왜 강릉으로 오지?
- 할아버지 보러? 아님 다른 목적?
- 둘은 아는 사이? 사이는.. 아마 안 좋겠네..?
...
이렇게 질문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 <강릉역에 사는 여자> 제목으로 기획해 보자. 다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지금 쓰고 있는 버전은 소재가 완전 달라졌지만 열심히 쓰고 있다. 정의실현 메시지를 담은 복수극! 첫 작품보다 나아졌다는 평가, 받을 수 있을까..?
꿈이 뭐니? 학창 시절 어른들이 묻던 꿈이 뭐냐는 그 질문에 나는 늘 어물쩍 넘어가기 바빴던 학생이었다. 생기부에 종종 예능PD를 적어냈던 기억만 있을 뿐 가볍게라도 진짜 꿈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나? 생각해보면 -> 없었다. 당시 입시 스트레스 도피처로 봤던 예능 프로그램(마녀사냥, 비정상회담)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런건 누가 만드는거야? 대단해! 단순한 감사함과 존경심으로 적어낸 것 뿐이다.
직업과 꿈이 VS 개념으로 맞서며 무언가 하나를 포기하기보다는 AND(&)를 적용해서 꿈을 이뤄보려 한다. 이유는 뭐? 당연히 현실적인 문제!
결혼하고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살려면 현실적으로 돈을 모아야 하지 않는가! (에라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자금이 있는데.. 그걸 위해서 매년 달성해야 할 목표 금액이 있다. 일을 중단하면 택도 없다. 뭐가 됐든 이걸 완성시켜 놔야 결혼할 때 내가 원하는 사람과 정서적으로 많은 걸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꿈>만 쫓는다면 보조 작가든 공모전이든 뛰어들고 올인할 수 있겠지만 분명 쌩신입에서 다시 시작해야할거고, 완전 박봉이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본업을 유지하면서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 이유가 있더라. 재능이 꼭 필요한 영역이라 그렇다. (예술쪽은 어쩔 수 없는 듯..) 근데 노력은 둘째치고 나에게 그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본업을 버리고 도전하는 건 넘 리스키,,
아마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올 것이다. 작게라도 꼭 온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 건 말이 안된다. 그건 아마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회당 1억 버는 작가가 되는 그날까지 DON'T GIVE UP. 누가 그러더라. 돈에 대한 욕망만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게 없다고..!! 수많은 탈락, 미선정이라는 결과를 맛보겠지만 작은 한계를 깨부수는 그날까지 필력이 조금씩만이라도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글은 많이 써야 는다.
일단. 계속.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