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롱박의 장막희곡 2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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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주 내내 소재에 대해 생각했지만. 결국, 새로운 소재를 찾지 못했다. 한-심.
무언가 신선하고 맘에 쏙 드는 생각이 떠올랐을때 '머리 속에 폭죽이 터진다.' 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순간은 잘 없다. 겨우겨우 짜내고 짜내서 내 안의 즙이란 즙이 다 빠진 것 같을때에 겨우 나오는 것이 딱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이거다.
'꽃은 됐어요'는 지난 3월 내가 열심히 준비했던 한 지원사업에 냈던 작업의 제목이다. 나는 정신장애에 대해 생각 중이었고 '꽃'은 응원과 위로의 선물로 많이 쓰인다는 생각에 정신장애를 시혜적인 태도로 보지 않기 위해 붙였던 제목이다. 좀 있어 보이고 싶어서 불어로 된 부제도 붙였었다. 'je refuse les fleurs'
결국엔 해결하지 못한 이 숙제같은 소재를 잘 기워보기로 한다. (아직 까지는 그렇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은 티비 프로그램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만난 신촌의 광인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럭키빌라? 써니빌라? 뭐 여튼 엄청 희망적인 이름의 빌라에 사는 50대 여성은 걸인같은 행색에 늘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거리를 걷는다. 비닐 봉지가 없을때는 눈을 감고 벽을 더듬으며 길을 걷는다.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 해도 거칠게 거부하고 여자는 전기도 가스도 모두 끊긴 쓰레기 집에 들어가 어둠을 보낸다. 까만 방안에서 혼자 말하고 웃고 화내고 우는 여자.
제작진이 찾아가 '어머니-' 라고 부르며 말을 걸지만 언제 봤다고 어머니라고 부르냐고 화를 내는 여자. 그건 맞지. 나이든 여자라고 다 어머니는 아니잖아? 몇년 전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나이든 여성을 높여 부르는 표현이 '어머니'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참 한-심하다. 아무튼, 대화를 거절하며 여자는 할말이 있으면 편지를 쓰라고 하며 문을 닫는데 이때 부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작진은 여자의 우편함에서 국제 우편을 발견하고 프랑스에서 온 이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 연락을 취한다. 영상 통화속의 그 남자는 프랑스에서 패션사업을 하는 남자다. 이야기인 즉슨, 여자는 20대때 프랑스에 유학을 와서 패션을 공부하고 남자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자 문제로 여자는 불법 체류자가 되었고 경제적인 이유까지 더해서 거리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을 하며 살게 된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남자는 자신의 사비로 여자를 한국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간 후 오랫동안 자신과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나 최근 몇년간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여자가 전에 살던 집 주인, 지금 사는 건물의 관리인, 그리고 먼 친척을 찾아가 한국에 돌아온 후 여자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에 돌아온 여자는 부모님을 잃게 되었고 꿈도, 가족도 잃은 여자는 큰 상심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병을 얻은 여자를 다른 가족이 폐쇄 정신병동에 보내게 되었고 병원에서 여자는 더 큰 병을 얻어 나오게 되었다는 것.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있다는 것. 가족도 지자체도 여자를 챙기지 않고 있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제작진은 다시 여자를 찾아간다. 문을 열고 말을 걸어도 쓰레기 집 안에 누워 꼼짝도 않는 여자에게 영상통화로 프랑스인 친구를 연결해 준다. 까맣고 빈 집 안에 불어가 울린다.
"잘 지냈어? 거기 있어? 내 얼굴 보여?"
잠시 흐르던 적막을 깨고 여자가 일어나서 말한다.
"Pourquoi êtes-vous ici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이게 드라마가 아니고 실제 상황이라니. 난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실제로 저 장면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중년 여자'로만 생각했던 모자이크 된 그 여자의 뒤로 엄청난 서사들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젊은 시절 꿈 많던 학생,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동양인, 패션을 사랑한 청년, 부모님을 잃게된 딸, 혼자 살게 된 여자, 나이듦을 체감하는 여자 등등, 단순한 '광인'이 아닌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안의 나도 몰랐던 견고한 편견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보통사람과 좀 다른 이들의 지적수준과 교육수준은 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심하기도 하지.
20분 정도 되는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온 머리통이 흔들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경험한 이 뇌가 트이는 기분!을 연극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꽃은 됐어요"인 것이다.
저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제작진은 지자체의 관리를 약속 받고 다시 여자를 찾아간다. 프랑스인 친구와의 통화 이후로 마음을 연 여자는 제작진을 맞아 주고, 비닐봉지를 쓰고 다녔던 이유를 말해준다. 매일 집 앞의 대로변에서 사람들이 패션쇼를 한다고, 화려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비닐봉지를 쓰고 안 보려고 하는 거라고.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이 지금의 괴로움이 되었다니. 마음이 아팠다. 제작진은 여자에게 꽃다발을 건네준다. 물론 이 꽃의 의미는 위로와 응원이겠지. 놀랍게도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꽃 가져가세요. 꽃을 이런 곳에 두면 안되죠. 이런 똥뚜깐에 이렇게 예쁜 꽃을 둘 수 없지" 끝까지 멋진 마무리. 정말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꽃은 됐어요>를 써 볼까 한다. 방송에서 본 에피소드는 절대로 그대로 극화 할 수 없다. 나는 최대한 연극적인, 그리고 실제인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한 고비는 넘었다. 자 아이디어는 준비됐으니 희곡은 누가 쓸래?
내일의 내가 하겠지.
머리 속에 폭죽이 펑펑 터져주길 기다려 보면서.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