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 오늘 장사 안 해
내가 본 캐릭터 중 가장 이상한 여자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배우 김부선이 분했던 '못 잊어 떡볶이집' 주인이다. 이 여자는 남자 고등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한다. 늘 배가 고픈 남학생들에게 떡볶이며 튀김을 아낌없이 주고 한 번 본 얼굴은 잊지 않으며 친근하게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냥 정 많은 분식집 아주머니였을 수 있는 이 여자는 몇 가지 이유로 '이상한 여자'가 된다.
여자는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긴 머리를 헐렁하게 묶고 있는 여자는, 군살 없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늘 가슴이 깊게 파인 예쁜 옷을 입는다. 여자는 학생들의 이름을 살갑게 부르며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왜 어제는 안 왔냐며 잘생겼다며 보통의 분식집 아줌마가 하지 않을 말들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자가 떡볶이를 주고 돌아선 뒤통수에는 남학생들의 희롱이 넘쳐난다. "맛있겠다.", "빨통 죽인다.", "저 아줌마랑 떡 한 번 쳐야 하는데."
요즘 좀 마른 것 같아 보이니 매일 와서 많이 먹고 가라는 여자에게 남학생은 여자의 가슴을 보며 말한다. "매일 오면 그냥 줘요?"
"나 오늘 장사 안 해"라는 대사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한 개그맨이 만들어 유행시킨 말 일뿐이다. 영화 속 여자는 남학생들을 대놓고 유혹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쁘고 가슴이 파인 옷을 입었을 뿐. 남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대해 주었을 뿐. 영화 속 여자는 개그맨이 묘사한 것처럼 몸이 달아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자를 '남자를 좋아하는, 남학생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나이 든 여성'으로 기억한다. 감독이 이 여자를 그렇게 그려놓았고 시대가 그 역할을 밈화 시켜서 기억한다.
오히려 성희롱을 당한 쪽은 이 여자다. 영화 속 남학생들은 이 여자와 대화하며 얼굴을 보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늘 여자의 가슴에 향해 있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음식을 핑계 삼아 '맛있겠다. 그냥 줘요?' 같은 중의적인 말로 여자를 희롱한다.
남자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버스에서 만난 여학생. 이 여학생은 첫사랑의 결정체로, 아름답고 맑고 하얗고 순수하다. 떡볶이집 여자가 악녀, 창녀라면 첫사랑 소녀는 성녀 그 자체다.
가장 친한 친구와 동시에 여학생을 좋아하게 된 주인공은 괴로워한다. 그리고 친구와 여학생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날 밤. 주인공은 장사가 끝난 떡볶이 집에 찾아간다. 왜? 마침 씻고 나온 여자를 보고 남자 주인공은 "떡볶이 돼요?"라고 묻고 우리의 친절한 사장님은 "그럼 되지. 들어와."라고 해 버린다.
좋아하는 여자와 잘 안돼서 힘들다는 주인공에게 여자는 맥주를 권하고 주인공은 냉큼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덥다며 윗옷을 벗는 여자. 깊게 파인 나시를 입은 그녀는 몇 번의 더듬거림 끝에 냅다 주인공에게 키스를 날린고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목석같이 굳어버리고 여자는 그런 그를 달래 가며 일을 성사시키려 하지만 첫사랑에 상처 받은 주인공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괴로워할 뿐이다.
떡볶이집 여자와 첫사랑 여학생. 이상한 야한 아줌마와 순수한 첫사랑 여학생. 이 두 명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주요 여자 캐릭터의 전부다.
이상한 여자
개봉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영화의 '떡볶이집 여자'는 젊은 남자를 유혹하는 나이 든 여자의 전형으로 남았다. 그 후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상한 여자'의 종류 중 하나로, '젊은 남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여자'라는 목록이 추가되었다.
그 나이의 여자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여자. 보통의 그 나이의 여자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는 여자. 많은 그 나이의 여자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욕망을 가진 여자. 여자는 나이대별로 외모나 행동에 정답이 있고 그것에서 벗어난 경우 우리는 그 여자를 '이상하다'라고 말한다.
떡볶이집 여자는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다. 뽀글이 파마를 하고 일하기 편한 옷을 입고 앞치마를 맨, 팔에는 토시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어머니'의 형상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못 잊어 떡볶이집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여자는 실제로 남자 주인공과 성행위를 하길 원한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그런 욕망을 갖다니, 이상한 사람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그 특정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여자가 이상한 여자일 것이라는 힌트를 그녀의 외모와 말투에서 얻는다. 그것은 공식이 되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만들어진 공식을 실제 인간에게 투영한다. 그것은 점점 덩치를 키워 전혀 말도 안 되는 것들까지 힘을 얻게 되었다.
'감자탕 집에서 접시에 고기를 덜어주었기 때문에',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싫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늦은 밤에 돌아다녔기 때문에', '웃어주었기 때문에'
때문에 여자들은 더욱 자신을 검열한다. 내 행동이, 내 말이, 내 옷차림이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내가 여지를 준 것은 아닐까? 피해자가 된 순간에도 여자는 자책한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모두가 말하는 그 '이상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도 마음도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늦은 밤, 웃으며 혼자 길을 걷더라도 그 누구도 내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냥, 짧은 치마를 입고 늦은 밤 즐거운 일이 생긴 혼자 걷는 여자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여자에게 금지된 그 무언가를 강력하게 원한다고 해서 이상한 여자로 보이지 않길 바란다. 성적욕망, 권력욕, 지배욕과 같은 것들을 갖는다고 해서 독하고 이상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욕망이 있는 여자로 보이길 바란다.
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사회적 약속이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전혀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