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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익구 Nov 03. 2021

아내의 눈썹

  ㅡ눈썹이 타도 미소만 짓던 아내의 앞머리가 하얗게 세었다.ㅡ

  시골 생활의 경험이 없는 아내를 신혼초에 고향집으로 데려갔다. 때마침 교직생활을 그만두어 시간도 있기에 시집살이 구실을 찾았다. 잠깐이라도 부모님을 모시며 가족들과 친해지는 게 좋지 않겠냐며 이런저런 설득 끝에 아내 혼자 몇 주만 부모님 곁에 있기로 했다.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때기도 하고 가마솥에 밥하는 것도 배우며 부엌일을 거들었다. 펌프질로 물을 긷고 방망이를 두드려가며 빨래도 곧잘 했다. 무엇보다 갓 시집 온 막내며느리가 시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시장도 같이 다니고 집안일을 도우려는 모습에 어머니는 마냥 좋으신 것 같았다.

  아내는 시골의 불편함 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하고  감나무 아래 평상이나 장독대 옆에 앉아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사람 사는 것이 도시나 농촌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혼자 두고 온 아내가 왠지 불안하고 마음이 쓰였다. 무엇보다 아래채 뒤쪽의 재래식 정낭 가는 일도 걱정이었다. 문이 없어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면 '어흠 어흠'하면서 인기척을 내어야 하고 밤에는 불빛 한점 없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두렵기도 한 곳이었다. 멀찌감치 서서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어머니에게 부탁할 것은 못되었다.

  결혼 초에 혼자 생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주일이 한 달 같아 얼른 시골로 내려갔다. 언제 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집에 새 식구가 있어 더욱 훈훈한 것 같았다. 색시의 얼굴이 반가웠다. 그동안 별일 없었냐는 물음에 아내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자세히 보니 눈썹이 다 타버렸다. 아궁이에 짚불을 피우려고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가 갑작스런 불기운에 앞머리와 눈썹을 태웠다는 것이다. 잠깐 스쳐간 탓에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큰일 날뻔했다. 며느리보다 시어머니가 더 불편해하는 것 같아 시집살이 일 주 만에 보따리를 쌌다.

  눈썹이 타도 미소만 짓던 아내의 앞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결혼 한지 사십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눈썹 태운 이야기를 우려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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