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사람이 보인다.

창작가와 저작권에 대한 나의 생각

by 따수이

'나도 작곡이라는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흥얼거려 본다.
한 대여섯 번 흥얼거려 보지만 나의 모든 흥얼거림은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어 노래의 멜로디와 닮아있다. 머쓱하다. 이래서 아무나 작곡가가 될 수 없고, 그중에는 '음악적 천재'라는 말을 듣는 전문가도 있는 거겠지. 아이유나 이찬혁 같은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는 이 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준다. 그들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에 '나도 한번..?' 하며 어설프게 새로운 멜로디를 떠올려보지만, 결국 자주 들었던 멜로디를 따라가게 된다. 마치 자석처럼.
만약 그 노래가 이미 내가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들었던 멜로디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앨범을 내버리는 실수를 범한다면, 가차 없이 저작권 위반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 주변에서 이미 극구 만류해서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책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저작권 위반은 이런 잘못된 절차를 밟은 결과가 아닐까? 누군가의 오랜 경험과 연구 속에서 창조되는 창작물들 중 단 하나가 살아남는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고, '땀'이며, '편두통'을 남긴 결과물이다. 그런데 문제의식 없이, 어려움 없이 가져와 어미만 바꾸고 이름만 바꾼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그 부끄러움은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결과 하나뿐이라 해도, 그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끝없는 고민과 뇌 안에서의 수많은 시냅스 연결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고민을 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이기에, 자기 효능감과 유능감을 느끼는 정도도 더욱 클 것이다.
물론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림을 배울 때도 모방을 통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모방을 반복하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자기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주체성이 부족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창조물을 따라 연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자기로부터 나온 결과라 착각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다. 만약 그 사람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사기꾼이 아니라면, 주체성과 자아정체성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일 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작권이란, 한 사람의 주체성을 나타내는 창작의 권리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지문도, 똑같은 목소리도 가진 사람이 없다. 쌍둥이라 해도 살아온 환경이 조금씩 다르기에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누구든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창작할 기회가 평생 주어진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창조가 그 누구보다 어렵겠지만, 자신을 깊이 탐색하는 사람에게는 보다 더 나은 창조의 능력이 있다. 그러니 내가 창조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타인의 것을 모방하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혼란 속에 빠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모방으로 시작했더라도, 나의 색채와 모양이 깊고 강해질수록 그 창작물에서는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래서 글만 봐도 그 작가가 보이고, 음악만 들어도 작곡가, 작사가가 보인다. 아무리 자기를 숨기려 해도, 강렬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창작물이란 이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방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다. 애초에 창작자와 모방자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내 글에 내가 보이는 그런 창작자가 되고 싶다.
나의 색채와 모양이 깊고 강렬한,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그런 '날이 선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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