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맞춰 벌떡 일어났다. 사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기차를 타야 해서 부리케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아이도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숙소 맨션 건물을 나오는데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대문이 제대로 안 열려서 당황했다. 늦을까 봐 몇 번 급하게 시도한 끝에 겨우 열렸다. 우리는 찬바람을 뚫고 중앙역까지 금방 걸어왔다. 열차 시간과 플랫폼 확인까지 하고 여유롭게 매점에 가서 커피와 요거트를 산 다음 플랫폼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타는 중이었고, 우리도 탔는데 우리가 예약한 열차 번호와 철도 어플에서 알림 온 것이 달라 일단 좌석을 찾을 수 없었다. 열차 이정표에는 잘츠부르크를 간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두 번째 당황이 찾아왔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일단 2등급 칸으로 가서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기차가 흔들림이나 답답함 없이 좋긴 한데 이런 변수가 유럽에서 종종 있어서 버스가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철도 시스템이 정말 좋다는 걸 새삼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꼈다.
잘츠부르크까지 갈 물약
오스트리아의 목가적인 풍경을 지나서 오전 11시가 다 되어갈 때쯤 알프스와 가까이 있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세상에서는 어떤 도시의 특징을 지칭할 때 무엇의 수도라는 말을 많이 쓴다. 파리는 예술의 수도, 로마는 문명의 수도, 빈은 음악의 수도라는 세계구급 표현을 쓰는데 잘츠부르크는 도시가 작아도 그에 못지않은 음악의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클래식의 영원한 상징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났으며, 현대 클래식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촬영 배경이라서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에 연간 3,00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방문했다. 도시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있던 도시로 옛날에는 소금 광산이 있어서 도시 이름인 잘츠도 소금(Salz)이라는 뜻이었다.
모차르트의 고향에 도착
역에서 나온 우리는 제일 먼저 미라벨 궁으로 향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거리를 걷는 것조차 기분 좋게 느껴졌다. 미라벨 궁(Schloss Mirabell)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유명한데 본래 이름은 알테나우 궁전으로 18세기 초 건축가 힐데브란트가 개축한 뒤 아름답다는 뜻으로 미라벨 궁으로 불렸다.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며 1606년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애인 잘로메 알트와 낳은 15명의 자식을 위해 지은 궁전이었다. 1950년부터는 시청사로 사용한다고 했다. 모차르트가 6살 때 대주교 가족을 위해 연주한 대리석의 방(Marmor Saal)이 있으며 지금도 연주회가 열렸다. 겨울이라서 정원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궁을 나와서 간 모차르트의 집(Mozart-Wohnhaus)은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그가 17살까지 살았던 대성당 근처의 모차르트 생가에서 이사해 1773년부터 1780년에 살았던 곳이며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차르트 남매가 잘츠부르크를 떠난 다음에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혼자 살다가 사망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손되어 복원을 한 다음 1996년 재개관하였다. 사진을 찍는데 아이는 오늘도 클래식 음악 관련된 것만 찾아다니니 아빠 투어냐고 물어봤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나 1791년 12월 5일에 사망한 전무후무한 클래식의 천재 음악가로서 모든 이들이 처음 클래식을 접하게 된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르 배우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 작곡과 지휘를 배웠다. 35년이라는 짧은 인생에서 만든 수많은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등은 어느 하나 거를 것 없이 명곡으로 추앙받으며 음악의 신동은 영원불멸의 삶을 살고 있다.
모차르트가 청년 시절 살았던 곳
모차르트 생가를 가기 위해 잘차흐강을 건너야 했는데 바로 건너가지 않고 조금 더 돌아 모차르트 다리까지 걸어갔다. 모차르트 다리(Mozartsteg)는 잘츠부르크를 가로지르는 잘차흐강에 놓인 다리로 1903년 개인이 만든 철제 다리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며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유명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넌 다음 강변을 따라 걸어서 옛 시가지 쪽으로 들어갔다.
노란색이 인상 깊은 모차르트 생가(Mozarts Geburtshaus)는 1756년 1월 27일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으로 잘자흐강을 건너서 위치해 있다. 이미 노란색 건물을 보자마자 나는 살짝 흥분해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와서 여기를 꼭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 가족은 1747년부터 1773년까지 이 건물 3층에서 살았으며 모차르트 역시 3층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1층에는 그가 사용했던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오페라 '마술피리' 초연 당시 사용한 것과 같은 소품이 있었다. 3층과 4층은 그의 가족이 생활하던 모습이 소개되어 있었다. 실제 옛 거주 규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삶의 궤적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그의 아들들이 모두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넣지 않아서 그의 아들 대에 맥이 끊겨버린 것이었다. 빈에서 봤던 모차르트가 죽음을 맞이한 곳과 여기 태어난 곳을 와보니 기분이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거리는 개성 있는 철제 간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 거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리인데 역사가 오래된 쇼핑 거리였다. 이곳을 가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 가게가 있어서 시식을 해보는데 연필 깎기처럼 치즈를 깎아주며 시식하는 걸 아이가 무척 신기해했다. 들린 김에 치즈는 안 사고 겨자 페이스트를 하나 샀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잘츠부르크의 명물 중 하나인 모차르트 쿠겔을 사기 위해 카페 콘디토레이 퓌르스트(Cafe Konditorei Fürst)로 갔다. 정감 있는 좁은 길을 지나 도착한 카페는 1890년에 제과업자 폴 퓌르스트가 설립한 곳으로 맛있는 페이스트리, 케이크 등을 팔았다. 나와 아내는 더블 에스프레소와 카페 라테를 주문했는데 이런 전통 있는 카페에서도 커피 머신으로 내려 주는 게 의아했다. 호텔 조식에나 있을 법한 걸로 내려주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다. 독일문화권에서는 일반적인 것 같은데 지금까지 갔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보기 힘들어서 이번 여행 다니면서 카페에 갈 때마다 낯설었다. 아이는 오렌지 주스에 디저트로 레몬 페이스트리, 딸기 조각 케이크를 샀는데 맛은 우리나라 카페가 훨씬 맛있는 것 같아서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스트리아 카페 역사가 굉장히 길고 격이 있을 테지만 맛만큼은 한국이 앞서있는 듯했다.
이 카페에 온 이유인 모차르트 쿠겔때문이었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 쿠겔이 여기서 탄생했는데, 오리지널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쿠겔(Original Salzburger Mozartkugel)로 불렸다. 부드러운 헤이즐넛 프랄린 코어에 섬세한 마지팬 껍질을 입히고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한 것으로 한 입 먹을 때마다 질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과연 다르구나 싶었다. 10개가 들어간 봉지 하나를 샀는데 다른 회사 제품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4배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서 아껴 먹어야 했다. 모차르트 쿠겔은 독일어로 '모차르트 공'을 의미하는 둥근 모양의 초콜릿으로서 처음에는 모차르트 봉봉(Mozart-bonbon)으로 불렸으나, 이후 모차르트 쿠겔로 바뀌었다.
사악한 가격의 오리지널 모차르트 쿠겔
카페에서 나와 걸으니 소규모 아이스링크장으로 변신한 모차르트 광장이 나왔다. 모차르트 광장(Mozart Platz)은 호엔잘츠부르크 성 아래 위치한 광장으로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 대주교가 17세기 초 많은 집을 헐어버리고 광장으로 만든 곳이었다. 중앙에 모차르트 동상이 있는데 이는 바바리아의 왕 루트비히 1세가 돈을 내어 만들었으며 1842년 공개되었다. 이때 모차르트 자식들이 제막식 때 왔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한가로이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아이스링크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동상은 바래도 그의 이름은 영원히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잘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er Dom)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6,000개의 파이프가 든 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며 가톨릭 전파에 큰 공헌을 한 성당이었다. 역시 모차르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그가 이곳에서 영세를 받았고, 어린 시절 미사 참례를 하면서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를 했다. 744년에 지어졌으며 1598년에 대화재로 불탔다가 1655년에 재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1959년에 복구되었다.
대주교가 다스리던 도시의 대성당
성당을 지나 우리는 호엔잘츠부르크성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안 탔겠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푸니쿨라 운행은 하지 않고 직접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리 높지 않아서 금방 올랐는데 아이는 꽤 힘들어해서 운동 부족이 의심되었다. 올라가서 본 경치는 순식간에 바뀌어 있어서 신기했다. 호엔잘츠부르크성(Festung Hohensalzburg)은 중부 유럽의 성채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으로서 해발 542m에 위치해 있는 방어용 성이었다. 107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 사이 서임권 투쟁을 벌이던 당시에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남부 독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졌으며, 1618년 대주교 막스에 의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이유는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산성치고는 꽤 규모도 커서 작은 마을 같은 모습도 연출되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 시내 경치도 멋졌지만, 알프스 산맥 쪽을 보았을 때 경치가 너무 멋져서 마치 도시를 떠난 기분마저 들었다. 앞서 걸어서 풍경을 본 나는 아내의 눈을 감긴 다음 난간에서 눈을 뜨라 하고 보여주니 탄성을 질렀다. 한참 바라보며 잊지 않기 위해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아이는 프리 와이파이 존이어서 게임할 생각에 설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핸드폰 배터리가 바로 나가서 아쉬워했다.
오늘의 종착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
배가 출출해질 때까지 성 안을 둘러보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아이는 넘어져 길에 뿌려놓은 염화칼슘이 바지에 잔뜩 묻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역 쪽으로 걸어오는데 점점 노을 지는 거리와 건물,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저녁 식사는 역 근처 식당을 찾아서 잘츠부르크 스타일 슈니첼, 스페인 해산물 스튜, 치즈 뇨끼를 주문했다. 이 지역 맥주도 주문해서 아내는 색다른 맛을 느껴보았다. 다 맛있는데 특히 해산물 스튜가 한국인의 입맛에 어울려 다들 식사 후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식당 주방장이 한국인의 입맛을 너무 잘 아는 듯했다.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역으로 와서는 마트와 책방 구경을 하고, 이곳이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라 기념품으로 잘츠부르크 소금 광산에서 생산된 암염을 구매했다. 요리할 때 쓰면 무슨 맛을 낼지 기대가 되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한밤에 다시 빈으로 돌아왔다.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 후회 없는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