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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Julie Apr 01. 2020

코로나로 드러난
복지 최강국 정부의 민낯

타국에서 겪는 전염병의 공포-1

국가의 위기 상황을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 

그것 또한 대단한 리더십과 진보한 국민성의 반영일 것이라.

사회주의와 개인주의가 뒤섞인 아이러니한 상황들에 아주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해외살이를 하는 이민자로서 한국이든 이곳이든 정책과 국민성에 입을 댈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외국인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걸고 살아내야 하기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 조국의 위기상황을 타국에서 지켜보며 걱정과 한숨으로 채우던 날들이, 

순식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타국에서 겪어내야 하는 현실 공포가 된 지금.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모든 뉴스들이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 이어 한국과 몇몇 먼 동양의 질병인 듯 아시안 차별과 조롱으로 방관하던 서방국가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확진자수와 지역감염의 무방비 노출에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로 전 세계적 이슈가 되기 이전, 유럽에도 이미 감염자가 발생했고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다. 국경 없는 이 유럽 땅덩어리 전체에 전염병의 확산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전염력이 강하고 무증상 감염자나 잠복기간 동안에도 전파가 가능하다는 이 바이러스가, 유럽에는 번지지 않을 것처럼 이들은 제대로 된 예방도 대책도 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대처였고, 그 결과는 현재 유럽 전역에서 무더기로 끝없이 불어나는 믿기지 않는 숫자들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EU 각국 보건장관들이 모여 대책회의라는 것을 했지만, 결국 정치 싸움만 하다 아무런 명확한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끝내버리고 만다. 경제적 여파를 우려한다는 핑계로. 이후 상황이 심각해지자 각자도생으로 더 심각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겠다며 너 나 할 것 없이 국경을 걸어 잠그고 국가 간 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초기 대응 실패는 수십 년간 지속된 경제적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EU 집행위는 정상회의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고, 아예 EU 전체에 외국인 입국 자체를 금지하기에 이른다. 이미 유럽 전역의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가 된 후이다.

이들이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며 서로 정치 놀이를 할 시간에 예방과 대책 수립에, 경제 여파 이전에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국민의 건강에 총력을 기울였다면,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똑같이 일어났을까? 대체 얼마나 많은 소를 잃고 얼마나 큰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둔한 국가 행정부의 잘못에 국민들이 생사와 기본권리를 걸고 그 대가를 치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독일과 국경을 맞닿아 있음에도 덴마크는 꽤나 오랜 시간 확진자 숫자 0이 지속되었다. 그 시간 동안 이들은 대비라는 것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중국과 한국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국가도 국민들도 위기감이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이 작은 나라 덴마크에서, 1로 숫자가 바뀐 그 순간부터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기까지 무려 13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증상이 나타난 첫 번째 확진자가 며칠 동안 출근을 하고 일상생활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순간에도, 병원 근무자가 감염된 사실이 알려진 상황에도, 이들은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까? 무려 2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책 없는 일상은 반복되었고, 그렇게 확진자 수는 무섭도록 늘어났다. 

덴마크 총리 Mette Frederiksen

타 국가의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방식을 참고하여 대비책을 강구하고, 의료 인력과 장비를 준비하고, 전 국민들에게 심각성을 일깨워 행동 지침을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충분한 기간 동안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뒤늦게 총 확진자 수 500이라는 숫자(우리나라 인구 대비 체감 5000 쯤은 되지 않을까)를 기어이 만들고 나서야, 대체 뭐하는 곳인지 모를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나서야, 급급하게 나름의 대책이라는 것을 공식 발표했다. 타 유럽 국가들이 하고 있는 국경 봉쇄, 휴교, 휴업, 재택근무 권고 같은 찍어낸 듯 똑같은 대책이라는 것들을 내놓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려야만 했을까?

덴마크 여왕 Margrethe II

너무 늦은 대책이기에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이겠지만, 그럼에도 숫자는 계속해서 불어났고, 정부는 마트와 약국을 제외한 모든 상점의 문을 강제로 닫아버리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이 부족하여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부족한 모습이 지속되자, 연중행사로 새해인사 정도만 전한다는 여왕이 직접 나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모임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르라 강경하게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기까지 한다.

이 작은 나라의 정부가, 이 잘 사는 선진국가의 정부가, 국가를 넘어선 전 세계의 위기상황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 어느 유럽 국가의 대처도 현명하다 말할 수 없겠지만, 세계 최고 복지강국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절대 아닐 것인데, 그 탄탄한 정부와 사회 시스템이 전염병 하나에 이렇게 흔들린단 말인가.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그 최고의 복지국가에서, 과연 이들은 전 세계 전염병의 위기로부터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고 있을까.


확진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장 심각한 때, 보건부는 진단 역량의 부족으로 검사 진행 규모를 의료인과 중증 증상자를 대상으로 대폭 축소해버리고 만다. 이에 대한 심각성은 보건부 장관이 한국 기업의 진단키트 제공 제안을 거절한 사실과 함께 검사역량 부족 문제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는 것으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와 함께 다시 모든 의심 증상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대폭 확대 시행하겠다고 검사 역량 확보에 의지를 굳힌다. 매일매일 요동치는 신규 확진자의 숫자가 불안정한 정책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정책을 며칠 새에 이리저리 바꾸고, 치료 역량을 따지기 전 병의 유무 검사마저 준비가 미흡한 상태라 하니 국민들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불안할까. 

중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입원 치료 자체를 하지 않고 자가격리와 치료를 기본으로 하는 것(입원 치료 환자의 비율이 총 확진자 수의 10-20% 정도)에도 놀랐다. 어디까지 심각해질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다른 질병과 사고의 환자 또한 특정 전염병 유행의 상황에도 치료를 받아야 하니, 의료 과부하 상황을 최소화해야 하는 목적은 이해된다. 의료 전문가가 아니니 이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겠지만, 다만 집에서 죽어가는 환자는 없기를, 모두의 목숨이 귀히 대접받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검사 역량도 치료 역량도 부족해 보이는 이 상황에서, 현 확진자 수의 100배 이상의 감염자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는 등 이런 숫자의 공식 발표가 계속되는 것이다. 예상은 하면서 왜 가장 기본인 진단키트 조차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란 말인가. 책상머리에서 숫자 놀이할 시간에 심각한 현황의 해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중 하나인 독일 메르켈 총리의 전 세계 인구 70%가 감염될 것이라는 공식 발언은 WHO의 팬데믹 선언과 맞물려 전 세계를 더 큰 공포에 몰아넣는 효과만 안겼지 않았나. 정말 그래서 어쩌라고 다. 명확한 대책도 해결책도 없는데, 전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여러 추정치를 바탕으로 말만 내뱉기는 참 쉽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숨 막힐 듯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의료 대응책과는 반대로, 복지 최강국의 면모가 다른 방향에서는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노동 안정성에 최선을 다하는 국가답게, 코로나로 인한 기업의 경제 타격 및 그로 인한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국경 봉쇄 등의 조치와 거의 동시에 내놓았다. 해고 위험이 있는 기업 직원(정규직 및 일용직 포함)의 급여를 국가가 75%-90% 보전하는 등의 상세한 지원책을 이미 노사와의 합의까지 끝낸 후 발표했다. 해고로 인한 개인의 타격을 보상하는 사후 정책(이는 이미 덴마크에서 굉장히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이 아닌 해고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생각한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위협할 만큼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히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전염병은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먹고살기 위한 일자리 보장과 소득의 보전은 건강 다음의 가장 큰 이슈가 아닐까. 일시적인 지원금보다는 힘든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기업과 개인의 상생이 가능한 지원책이 훨씬 실효성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전염병과도 싸워 이겨 살아남아야 하지만, 이 역사적 경제 위기에 맞서서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근무의 유연함이 워낙 뛰어난 나라인 덕분에 정부의 발표와 함께 하루아침에 재택근무로 전환하여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들의 업무 문화는 정말 전 세계 최고라 불릴만하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기에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하루 종일 육아를 부모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공공기관과 더불어 사기업도 가능한 거의 재택근무가 이뤄지고 있으니, 이 또한 평소 이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굉장히 중시하는 업무 문화로 미루어 타 국가들에 비해서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덴마크 정부는 4월 13일(부활절 연휴 이후)까지 국경이 봉쇄됨은 물론, 휴업 및 휴교, 모든 상점의 폐쇄조치를 연장한다고 발표한 상태이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 상황이 쉽사리 끝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의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수는 매일매일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각종 경제 지표를 보여주는 숫자들은 연일 끝도 없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이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 여파가 대체 얼마나 클지, 그 회복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될지 상상조차 어렵다.


타이타닉호 침몰 대 참사는 결국 이 배를 만들고 이끈 이들의 오만함과 교만함이 만든 "인재(人災)"였다. 그 어떤 크고 튼튼하고 호화로운 세계 최강의 배도 자연이 만드는 재난 앞에서 인간은 힘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와 연구로 만들어진 매뉴얼에 따른 예방과 신속하고 현명한 대처는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 자부하며 구명정조차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된 준비되지 않은 혼란은 결국 그렇게 허무하게 수많은 목숨을 잃는 대 참사를 불렀다. 1912년의 일이다. 10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인간이 막지 못해 발생한 수많은 참사를 통해 이렇게 배운 것도 없이, 왜 또다시 우리는 그 배 위에 앉아있는 것인가.


전 세계 모든 리더들이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더 복잡하게 얽혀버린 국가 간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 외교 경제 의료 교육 끝없이 연결된 사회 시스템을 통제하여, 전 세계에 놓인 똑같은 과제를 누가 더 현명하게 해결해내는지가 국가와 리더의 평가가 되어버린 실상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집안에 갇힌 답답함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생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위태로운 생사의 공포일 수도 있는 바이러스와의 길고 긴 싸움에서 전 세계 모두가 현명하게 이겨내길 바라고 또 바란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모든 국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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