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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Julie Jun 03. 2020

위기에 강한 나라, 대한민국

타국에서 겪는 전염병의 공포-2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참으며 봐야 했던, 마지막 순간까지 벅찬 감동을 주었던, 이 경기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예선전.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선수가 넘어졌고, 중계 화면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엄청난 거리의 격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넘어지는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손을 있는 힘껏 뻣어 터치한 선수도, 동료가 넘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있는 힘껏 달려와 격차를 좁히기 힘을 실어낸 선수도, 기회가 보일 때마다 놓치지 않고 추월을 해낸 선수도, 결국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해내는 선수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 모든 순간은 이들이 가진 세계 최고의 기량과 팀을 위해 내 몫 이상을 해내는 팀워크의 힘을 보여준 멋진 경기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대비한 끝없는 훈련으로 준비된 실력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며 경기를 극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선수가 넘어졌을 때 '한국은 끝났어' 하지 않았을까? 마치 한국이 가장 먼저 코로나의 타격을 받았을 때, 전 세계가 우리를 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한 나라 취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닥치는 집단 감염의 위기상황에서도 정부와 의료진, 국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해 하나 된 마음으로 코로나 전쟁을 이겨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이 올림픽 경기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와 의료시스템, 기타 전반 사회제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민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삐걱된다면, 서로를 믿고 지지하고 지탱해줄 수 없다면, 우리는 이 경기를 좋은 결과로 끝낼 수도 완주할 수도 없다. 이 팀워크의 힘은 비단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팬데믹의 위기에서 전 세계는 국경을 넘는 단합과 공유의 가치를 잊고, 국경을 걸어 잠그고 사실을 숨기고 정보를 왜곡하며 비난과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질병만큼 심각해지고 있다.

오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올림픽은 지나친 메달 경쟁의 심화뿐만 아니라, 종교적 인종적 차별 문제와도 끊임없이 싸워왔으며, 정치적 경제적 도구로 상업화되어 여러 가지 비판의 이슈가 제기되어왔다. 국민의 안전보다 올림픽 개최에 더 목숨을 걸었던 일본 아베 총리의 모습이 그 의미의 퇴색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정치적 경제적 도구로 이용해 먹는 세력들과, 사람이 죽어가는 질병 앞에 드러나는 차별과 혐오가 이와 많이도 닮아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갈등과 차별을 넘어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 도모를 실현해온 것이 건강한 올림픽의 가치다.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마저 미뤄버린 이 기막힌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닌 이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체계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해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큰 혼란 없이, 모두의 권리를 존중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의료혜택과 정보를 제공받고,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협력하여 일상의 자유와 안전을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인과 기업 국가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폐쇄적 강제적 조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단호히 하며, 정보공개와 방역 등을 기반으로 질병의 예방/진단/치료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신속하게 대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리고 국민들 스스로 자율적 예방과 관리에 최선을 다해줄 것에 강하게 목소리를 키웠다. 국민들은 철저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으로 경제활동과 일상을 지속하면서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노력했다. 다 함께 힘을 합쳐 이겨내자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의료진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과 봉사도 이어졌다. 국민들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의 힘을 보여주었다.

지금에 와서야 전 세계가 칭찬하는 대한민국의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이 대응 방법은 그 폭풍우의 정점에서는 누구도 이것이 맞다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투명하고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이 전략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결과를 증명해 보인다. 완벽한 차단은 아니지만 끝없는 확산을 최대한 막아내며 안정권에 접어들도록 만들었다. 전 세계가 놀랐다. 한국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코로나 대처방식을 치켜세우고, 진단키트를 앞다퉈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방역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전 세계의 언론이 모여들었다.


한국의 상황을 국외에서 지켜보는 전 세계 교민들은 대한민국의 체계화된 위기 대응 시스템과 단합된 국민성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매우 부럽고 한숨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덴마크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공격적인(폐쇄적인) 대응을 한 나라 중 하나로, 의료시스템의 여력과 신규 확진자수의 안정화 분석 이후, 경제 타격 최소화를 위해 봉쇄조치 완화를 가장 먼저 시행한 나라이기도하다. 이로 인해 유럽 국가 중 가장 대응을 잘 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되고 국민들의 신뢰도 상승했다고 한다. 실제로 진단키트 부족 사태 등의 이슈 이후 최대한 진단 대상자의 폭을 확대하여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에 주력했고, 인구당 검사 수로 따지자면 한국의 6배에 가까운 수치이며 유럽 내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물론 인구당 확진자수는 한국의 10배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확진자나 접촉자가 다녀갔을지도 모르고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이곳에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확진자의 상세한 동선까지 재난문자로 안내해주는 한국의 친절한 시스템이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전 세계가 칭찬하는 한국의 선진 코로나 대응 시스템을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슷하게도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은 기술이나 예산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소위 부자 나라로 불리는 선진국들에서는 더욱이 말이다. (덴마크는 전 국민이 어플을 통해 거의 모든 공문서를 수취하는 등 IT시스템이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다.) 사람이 아픈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 그 아픈 사람을 고치는 것 또한 사람이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할수록 마음만 더 답답해지는, 이들은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없는, 코로나에 맞선 한국 사람만의 힘은 무엇일까?


빠르고 투명한 정보 공개 시스템은 신속하고 정확한 대규모의 검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끝없는 확산을 막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확진자의 동선 추적을 통해 감염경로 파악과 접촉자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무증상 감염자까지 찾아내고, 이 정보를 전 국민에 공개하는 그 속도는 정말 놀랍다. 물론 이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든 대한민국의 기술이 가장 대단한 것이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이 과정 중에 발생하는 일부 개인의 불편함과 개인정보의 활용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기반된 것이기에 가능했음을 잊어선 안된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 시스템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너무나 중시하는 서양인들에게 이 방법은 문화충격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기술이 놀랍고 대단하기는 하지만, CCTV와 개인정보 추적을 바탕으로 한 동선 파악과 그 정보의 공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이 있다. 덴마크 정부도 비슷한 알림 서비스를 시행하려고 하였으나 국민 반발로 무산되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 더 많은 국민 안전의 보장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이들에겐 더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인가 보다. 그 개인정보의 침해가 철저한 익명성과 보안의 보장이 원칙임에도 말이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 공무원처럼 일을 열심히, 빨리, 많이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공무원 업무방식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다면,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업무처리 속도와 서비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빠르고 편리한 그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누군가는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고 체력을 갈아 넣어 헌신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만큼 초과근무를 당연한 듯 많이 해내는 나라가 있을까? 그것은 그저 국가의 인력이기에 당연한 것은 아니다.

덴마크는 3월 봉쇄 조치 시행으로 공공기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특별히 이 사태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을 제외한 수많은 일반 공무원들이 유급휴직 혹은 재택근무 시행 중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상황에 그 많은 국가의 인력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공항이나 역 등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 어디에서도 방역하는 사람들 조차 본 적이 없다.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평소 본인의 업무에 추가되는 수많은 업무를 엄청난 강도로 해내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다시 한번 느껴진다. 


대한민국 의료진들의 헌신에 대한 찬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쏟아졌다. 이들은 국가의 인력도 아니고 어떠한 강제적 의무도 없지만, 밤낮 없는 고된 노동으로 본인의 안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직업의식 이상의 사명감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의료인력과 기술, 그리고 의료보험 시스템은 미국과 유럽의 정반대 의료시스템의 장점을 최대화한 가장 이상적인 버전이다. 무엇보다 이 특수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훌륭한 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다른 질병을 가진 환자들도 병원 방문과 치료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덴마크 외 수많은 유럽 국가의 의료는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 시스템이다. 질병 치료를 통한 수익창출 목적이 아닌 전 국민의 건강을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기에 꼭 필요한 의료혜택 외에는 제공될 의미가 없다. 이런 특수한 국가 전염병 위기상황이 오면 그 우선순위가 명확히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덴마크 정부의 봉쇄조치 발표 당시 시급하지 않은 치료(수술 및 치과진료 포함)는 연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감염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시스템 붕괴와 의료기관에서의 감염 방지 목적이라지만, 모든 국민의 건강할 권리가 평등하듯 모든 질병의 환자가 치료받을 권리 또한 동등하지 않을까? 의료혜택을 국가에서 지원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는 이상적인 공공 의료시스템의 현실은 이러하다.


현재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방패 역할을 해내고 있는 마스크. 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바이러스 확산을 물리적으로 예방하는 것뿐이다. 한국은 WHO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서방국가에서 마스크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며 물음만 던지는 그 아까운 시간에 국가적 차원에서 마스크 생산과 공정한 가격의 유통에 온 힘을 기울였다. 국민들은 이전보다 몇 배로 오른 가격에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착용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생활을 수개월째 해내고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하루 수천 명씩 확진자가 쏟아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초반 모든 대응에 실패하고 급증하는 확진자로 인해 마스크 외 기본 의료진의 장비마저 부족한 사태에 처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전이 되어버린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lock down 강제 봉쇄조치. 극단적 상점 폐쇄와 이동제한을 통해 강제로 사람 간 접촉 자체를 통제하는 것. 몇몇 유럽국은 모든 국민의 외출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개인정보의 보호와 인권의 보장을 부르짖던 이들은, 이곳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조차 의심하게 되는, 집이라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동서와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은 유난히도 큰일이 닥치면 한마음 한뜻으로 성과를 이루어내고, 그 힘은 위기상황에선 몇 배가 되어 다 함께 이겨내자 의지를 다진다.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이 취한 폐쇄적이고 강제적인 조치 없이 자유와 안전이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방침을 믿고 행동하는 국민과 국민들의 힘을 신뢰하는 국가가 함께 이 위기를 현명하게 이겨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의료진들의 노고와 헌신은 물론, 이들을 위한 구호물품과 기부금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나눔도 잊지 않으며, 전염병의 최전방에 선 봉사자들도 있다. 대한민국의 '정'문화는 위기상황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이기심을 이기는 이타심의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성의 진짜 힘이다.

국뽕에 차올라 한국이 제일 잘했고 한국 방식이 다 맞고 다른 나라의 대응은 다 틀렸다 외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 또한 마찰 없이 불만의 목소리 없이 다 평화롭게 흘러오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기상황을 이겨내며 코로나 대응 우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모든 이유에는 매일매일 일상을 걸고 노력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한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코로나 사태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바이러스 대응에 처절히 실패한 국가로 평가받을 때가 있었다. 한국인들은 전 세계 공항에서부터 바이러스 취급을 받아야 했고, 부당한 차별대우를 당해야만 했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스스로 마스크를 쓴 국민들의 사진이, 마치 온 나라가 아픈 것 마냥 퍼져나갔다. 먼 아시아의 전염병은 그들의 뉴스거리이자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유럽과 미국의 상황이 급작스럽게 심각해지자 갑자기 한국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의 대응체계는 바뀐 것이 없는데, 타 국가들의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로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상황과 질병 관리에 대한 국내외적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진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국가 간 누가 더 빨리 끝내냐를 겨루는 경주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 똑같이 닥친 국가 위기상황을 각국의 리더가 어떻게 현명하게 신속하게 대응하는가('얼마나 똑똑하게 정치적 도구로 잘 활용하는가')를 나라별로 비교하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와 국가의 국내외 평가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중국 정부의 사실과 정보 은폐 의혹 관련 논란을 제외하더라도, 우한의 극단적 봉쇄 조치로 인해 인권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기도 하고, 이 지역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전 세계 매체에 소개되어 중국 정부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중국인을 위한 애도와 도움의 손길보다는 전염병을 세계에 퍼뜨린 바이러스 근원지라는 이유로 전 세계인의 비난과 혐오가 시작되었고, 이는 곧 세계 각국에 거주 중인 중국인뿐만 아닌 모든 아시안들의 인종차별 문제가 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중교통 등 일상에서 위협을 받기도 하고, 수업 출석 자체가 금지되는 등 근거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덴마크 일부 언론사에서 중국 국기를 바이러스 입자로 만평을 게재한 것이 논란이 되어 중국 정부에서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사과를 요청했으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매우 존중한다'를 이유로 언론사와 정부 모두 사과를 단호히 거부한 사실이 있다. 과연 이것은 언론의 자유의 힘일까 윤리적 한계선의 이탈일까.)

얼마 후 이탈리아의 상황이 갑자기 심각해지고 수많은 노인들이 목숨을 잃고 일부 지역이 봉쇄되고 외출조차 금지되어 시민들 모두 집에 갇히는 강제조치들이 시행되며 나라 전체가 멈춰버린다. 그러자 전 세계인들이 이탈리아를 위해 기도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보내기 시작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질병 앞에서, 중국은 바이러스의 발병지 이기에 당연히 비난과 혐오를 받아야 하고,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는 애도를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노령층 인구를 중심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며 의료시스템 붕괴 위기까지 겪어야 했던 국가들은 초기 대응에 철저히 실패한 정부와 안일한 국민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없이, 이 바이러스의 가장 큰 애처로운 피해자가 되었다. 바이러스를 핑계로 한 인종차별은 불편한 진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길고 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끝이 보일 듯 말 듯 계속되니,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일삼의 침범 범위가 점점 커져가고 참고 기다리는 것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하니 이 혐오와 비난은 점점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도 자라나고 있다. 그 수많은 위기상황들 속에서도 꿋꿋이 잘 버텨왔지만, 그 과정 속 논점을 벗어난 뒤틀린 시선과 비난이 불러오는 사회의 균열은 바이러스로 인한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고, 타인을 향한 비난이 자신의 화를 푸는 수단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이 바이러스가 남긴 못난 흉터가 아닐까.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의 공포는 단순 숫자로 보이는 감염자 수와 치사율보다 훨씬 더 온 지구를 패닉에 몰아넣으며 수많은 분야에 상처와 흉터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끝내고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지난 역사의 가르침이 그러하듯, 자연이 주는 재해도 인간에 의한 위기도 언제든 다시 찾아오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위기상황들을 대비해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은 과거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질병을 국가적 위기로 싸워내며 그 경험을 통해 쌓은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준비되었기에 신속하고 현명한 방식으로 위기를 대응할 수 있었다. 국민들이 직접 겪어내며 배운 경험의 짬밥이 이리도 무섭다. 

국가와 국민의 진짜 힘은, 탄탄하게 쌓아 올린 단단한 나라의 힘은, 위기 상황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는 이 위기의 시간이 언젠가 또 한 번의 경험치로 쌓여 지나가면 우리는 그만큼 더 단단해질 것이라, 끝까지 '위기에 강한' 단합된 우리 국민성의 힘을 보여주길 바란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라고 88 올림픽 당시 전 국민이 다 함께 한 마음 되어 불렀던 그 노래처럼 말이다.(물론 손에 손은 잡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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