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겪는 전염병의 공포-3
나는 10년 전 우리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신종플루를 앓았었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탓에 잠은 늘 부족했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면역력은 최악이었다. 하루 종일 자소서와 면접 준비로 정신없는 날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던 중, 최종 합격한 기업에 입사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아직 몇 개의 면접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앓아누워버린 탓에 남은 면접은 어쩔 수 없이 갈 수도 없었고, 신입사원 연수 조차 참석이 불가능했다. "저 신종플루에 걸려서.." 아직 입사도 하기 전에 한국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약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야만 했다. 다행히도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된 질병이기에 완치까지 연수 참석을 미룰 수 있었고, 회사 최초로 신입사원 연수에 일주일을 지각하는 직원이 되었다. 먹기만 하면 분수 토를 하고 울면서 또 억지로 삼켜야 했던 타미플루도, 진짜 이렇게 감기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싶던 온몸의 통증도 생생하다. 전염병의 공포는 언제든 내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현실임을 온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지금 모두가 함께 힘든 코로나 전쟁에서, 죽는 병 아니니 상관없다며 마치 남의 일인 듯 이기적인 태도를 일삼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화가 난다.
코로나 확산 초기, 미국과 유럽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국민들의 안일하고 이기적인 태도는 한국 뉴스에도 소개된 바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최대한 외부활동과 모임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정부의 방침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결국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확진자수를 통제하기 위해 각 정부는 역사에 없던 초 강수를 띄운다. 모든 상점을 일시 폐쇄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외출금지령을 내려 이를 어길 시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무는 강력한 강제조치를 시행한다. 바이러스도 화가 나는데, 이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만 갇혀있으라니, 시민들은 분노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정부의 강력한 폐쇄조치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는 봉쇄령 시행 전날 밤 마리화나(네덜란드에서는 합법이다)를 사기 위한 줄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의 보호가 매우 중요한 소위 '자유로운 영혼'인 이들에게 사회주의식 강제 통제는 정부와의 갈등을 야기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북유럽인들의 성향은 국가 위기상황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유럽 내에서도 최고일 이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내성적이고 이성적이다) 덴마크는 '비교적'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사회적 분열이나 저항 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대하는 모습이다. 한창 신규 확진자수의 증가가 심각했을 당시에는 강제 외출금지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전체가 텅 비어 굉장히 조용한 모습이었다. 워낙 '집'이라는 곳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족 중심적인 삶의 성향이 이 lock down 기간을 버텨내는 데에 조금 더 수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무엇보다 투명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정부, 이 상호 관계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상황이 조금 안정화되고 화창한 날씨가 지속되자 다들 밖으로 나와 해를 즐기는 모습이긴 하다. 겨울이 길고 해가 귀한 곳이라 여름을 정말 최선을 다해 즐기는 이들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수준이 최선인 것 같기도 하지만, 봉쇄 조치들이 완화되고 상점들이 문을 열자 마치 벌써 코로나가 다 끝난 듯한 일부의 모습은 답답하기도 하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문을 닫았던 이케아가 문을 열자 첫날부터 엄청난 줄을 서서 입장한다던가, 카페와 바에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넘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이 늘어선다던가, 하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곳곳에 붙은 안내판의 공지처럼 어디든 줄을 설 때에는 1m 넘는 거리 유지를 꽤나 철저히 지키는 모습이지만, 마스크 착용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몰리는 것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정말 이 전 세계적 전염병의 위협에 정말 '쿨'한 것일까? 미국과 유럽에서 유난히 이슈가 된 화장실 휴지 등 사재기 현상에서 이들의 이중적 태도가 드러난다. 전시상황도 아닌데 식료품과 생필품 사재기가 발생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지금에서야 해프닝으로 여겨지지만, 당시 몇몇 나라에서는 텅텅 빈 마트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심각하기도 했다. 사재기가 전혀 없었던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 간 접촉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인 전염병 상황에 우르르 마트에 몰려 빼곡히 줄을 선 이들의 모습이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 무슨 바이러스 최적의 양성소가 아닌가.
덴마크도 정부의 봉쇄조치 발표 당일 마트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처음 겪어보는 전염병 위기와 봉쇄/통제의 공포로 인해 일어난 이 모든 현상들은, 정부의 소통과 함께 바로 잠잠해졌고 동시에 마트들은 규제를 강화했다. 마트는 입장과 퇴장 시 구비된 손소독제를 사용하도록 하고, 바닥 벽면 등 곳곳에 사람 간 간격을 유지하라는 안내가 붙어있고, 직원들은 전부 장갑을 끼고 일하며 계산대에는 유리벽이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꽤나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장을 보거나 호흡기를 스카프 등으로 가린 노인분들도 꽤나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만큼 온라인 마켓이 활성화되어있지 않기에 오프라인 마켓의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긴 하지만, 온라인 마켓들의 주문량이 폭주하고, 대형마트들의 TO GO 서비스가 평소보다 몇 배로 늘었다.
이 힘들고 답답한 시간 속 일상을 살아내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다행인 것은, 부모님께서 뉴스를 보고 걱정할 정도로 코로나로 인한 아시안 인종차별이 꽤나 심각한 이슈가 된 상황에서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문제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이들의 성향 자체가 본인은 물론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기에 평소에도 인종차별이 문제 되지 않았지만, 이 특수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쓴 동양인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친절한 이들의 태도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말 그대로 웃프지만,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마스크, 그놈의 마스크. 나는 왜 유일하게 마스크를 쓴 아시안이 되어야만 할까. 현재 마스크에 대한 인식과 정책은 각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각 나라 전문가들의 의견과 국민을 보호할 정책을 만드는 정부의 태도가 어떻게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을까. 한국은 국민들 스스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고 집 앞 산책에도 마스크 착용을 필수로 하는데, 유럽은 정부가 강제로 시키니 억지로 쓴다는 마인드가 대부분이며 정부 규제가 없는 곳은 아예 쓰는 사람들이 없다. 일상에서의 마스크 사용 자체가 서양권 문화에서는 매우 생소한 일이고, 의료인이 아닌 이상 수요도 공급도 충분치 않으니, 이런 특수한 상황에 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없다면 일반인들은 마스크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고 구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매일 뉴스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워낙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이기에 좀처럼 타인을 쳐다보는 일이 없는 이들이지만, 마스크를 쓰면 그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불편한 정도는 아닌 일부의 시선이고 그 자체도 나쁜 의미로 보이지 않지만, 아시안 자체가 흔하지도 않은 이 도시에서 마스크까지 착용하여 더더욱 튀는 사람이 되는 건 당연히 불편한 일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 전염병의 확산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서양인들은 대체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일까? 마스크는 실효성이 증명된 바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며, 손 씻기와 사람 간 거리두기만 강조해온 WHO와 정부의 공식 발표들로 인해 국민들이 호흡기를 막는 것에 위기감과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더 심각한 바이러스의 확산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스크의 공급이 부족하여 의료기관에서조차 문제가 제기되니, 더 심각한 현상을 막기 위해 상황에 끼워 맞추기 식 정보로 보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우려일까.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지고 나서야 미국은 물론 몇몇 유럽 국가에서도 마스크 사용을 강제화하고 있다. 4월이 되어서야 EU 질병 예방 및 통제 센터에서는 마스크가 전염병 확산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일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각 유럽 국가들에게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 유럽 국가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며, 지금도 덴마크 보건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마스크 사용을 공식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이유가 더 환장할 노릇이다. 일반인들에게 마스크 구입은 비용의 부담이며, 마스크 사용 자체가 일상의 불편함을 초래하고, 호흡과 대화에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부자 나라에서 돈 핑계를 대다니.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공급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한다는 말은 일반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들에 의하면, 마스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노력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엄청난 혈세 낭비와 가정의 비용 지출을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모든 불편함과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전 국민의 노력이 쓸데없는 짓이란 말인가? 감기 등 여러 전염성 바이러스 전파를 막고 호흡기 보호용이나 방한용 등의 여러 목적으로 마스크를 사용해왔고, 특히나 최근 미세먼지 덕(?)에 전문 의료용 마스크까지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유난히 발달된 한국의 마스크 문화가 조금은 더 수월하게, 더 심각한 전염병 확산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마스크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이 상황을 대하는 일반 시민들의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젊은 세대와 상대적으로 위험군인 노년층의 마인드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분명히 훨씬 더 조심스럽고 단합된 모습임은 분명하다. 묻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하루라도 더 빨리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노력할 수 있는 작은 수단을 하나 추가하는 것이 정말 그리도 힘든 것이냐고. 세상에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질병이 있고,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거나, 누구나 걸려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매년 찾아오는 독감마저 걸리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한 사람의 마음 아닌가. 감염병이 유행한다 하여 그때마다 일상을 멈추지 않듯, 이로 인해 모든 생활을 접고 이것만 생각할 수 없지만, 일상생활의 범위 내에서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우리 모두가 당연히 할 수 있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닐까?
1918년 발병 후 2년 동안 전 세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자 전 세계 정치와 경제의 판도를 뒤집어 새로 쓰게 만든 역사적 사건, 스페인 독감. 당시 사태가 극심하자 유럽 및 미국 정부들은 전 국민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였다. 바이러스의 입자 크기를 이유로 마스크의 실효성에 반대하는 일부 학자들의 의문이 수없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자유의 침해 등을 이유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의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려 100여 년 전에 제기된 의문에 현대 의학의 기술로 아직도 전 세계가 동의하는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전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는 WHO부터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확실한 가이드라인도 내놓지 않으니, 국가 간 규제는 제각각에,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초미세먼지까지 막아낼 만큼 마스크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인간은 이리도 변함이 없단 말인가.
2020년, 세계의 역사에 남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살아가고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변화를 우리는 얼마나 현명하게 살아내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이 어떻게 기록되어 훗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영문도 모른 채 몇 달을 집에만 갇혀 지내고 당연히 마스크는 매일 써야 된다고 배우고 있는, 아무 걱정 없이 숨 쉬고 아무거나 만지고 아무데서나 뛰놀고 싶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이 날들을 설명해야 할까. 아이들이 훗날 배우고 듣게 될 오늘의 역사에, 모두를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노라 부끄러움 없는 시간으로 기록되길. 하나 된 마음으로 현명하게 위기를 이겨낸 아름다운 모습들로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