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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Nov 05. 2021

아빠가 1번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헤 정말 좋겠네.


5살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고 난 다음, 책을 내려놓자마자 아이 손을 붙들고 무릎을 들썩이며 노래를 불러준다. 책을 하나 더 읽으면 목이 찢어질 것만 같아 아이에게 '생각 방지용'으로 급 처방한 노래이다. 아는 동요는 언제나 한정되어 있으므로 또 '텔레비전'이다. '어~어~ 이것도' 하며 책을 집어 들려던 아이는 방금 전에 읽었던 이야기도 까맣게 잊은 채 고개를 까딱거리며 좋아한다. 노래 한 곡으로 끝나고 자리 탁탁 털고 일어나면 바랄 것이 없겠는데 저 멀리 노랫소리를 들은 첫째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달려온다. 익숙하게도 올 것이 왔구나.

"나도 나도~ 이제 내 차례야!"

한껏 치켜 올랐던 둘째의 얼굴이 손으로 방금 쓸어내린 것 마냥 쑤욱 쳐진다.

이러다 번갈아가며 끝없는 레이스를 펼쳐야 할 모양새라, 협상에 들어갔다.

"스돕!"

"둘이 같이 앉아봐."


맨 뒤에는 나, 그 앞에는 첫째, 또 그 앞에는 둘째. 착착 겹쳐놓은 종이컵 마냥 딱 붙어 앉았다.

나는 첫째 손을 잡고 첫째는 둘째 손을 잡으면 준비 끝. (한 번으로 끝내자를 속으로 외치며) 시작!


텔레비전에 엄마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헤 정말 좋겠네에~ (x2)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엄마 얼굴.


'엄마'로 개사하여 부르니 나도 아주 조금은 신이 났다.

그때 남편이 첫째와 똑 닮은 싱글벙글한 얼굴을 하고 방에 들어왔기에 한 번 더 가사를 개사하기로 했다.


텔레비전에 아빠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헤 정말 좋겠네에~ (x2)

방귀 뀌고 냄새나는 지독한 아빠 얼굴.


"우하하하."

아이들이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고 나는 아이들을 웃겼다는 사실에 대만족 했다. 그런데 보통 때 같으면 옆에서 엉덩이를 흔들어줬을 남편이 그냥 미소만 띄고 있는 게 아닌가. '응?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 아이들이 와하하 웃어대며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문득, 어렴풋이 생각 나는 일이 있었다.  


#1. 엉덩이 댄스

남편 회사 중국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 우리 가족도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두 명의 한국 직원, 나와 아이들 외엔 모두 중국인이었다. 중국 직원들 가족도 몇몇 참석해서 큰 홀이 있는 식당에서 여러 명이 식사를 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식탁들 맨 앞에는 노래방 기계와 스탠드 마이크가 있는 작은 무대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몇몇 직원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귀엽다, 멋지다, 각종 환호들이 쏟아졌고 누군가는 아이가 BTS 중 한 명을 닮았다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미래의 K POP 아이돌의 어린 시절을 잘 보아둬야 한다고도 했다. 맨날 위에서 까만 머리통만 내려다보다가 저 멀리 앞에 서 있는 두 아이들의 하얗고 자그만 얼굴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뿌듯해져 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내심 으쓱거리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잡고 무대를 향해 고개를 길게 빼긴 했어도, 나와 남편을 닮아 춤이나 노래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라 그냥 유치원에서 배운 짤막한 동요 정도를 기대했다. 어리둥절해하며 눈동자를 굴리던 아이들도 입가에 슬슬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옳거니! 하지만 웬 걸,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리다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점프해서 뒤로 홱 돌더니 엉덩이를 신나게 좌우로 흔들어댔다. "와하하하" , "크아이~ (귀엽다)."가 쏟아지자, 첫째는 더욱 신이 나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시작했고 둘째는 손을 입에다 대고 가짜 방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룩실룩, "뿌앙 뿌앙 뿌아앙."

 K Pop은 어디로 가고, 엉덩이 댄스와 방귀만 남았다. 어떤 이들은 와하하 웃었지만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모르는 중국 사람들은 또 저게 뭐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난감했다. 난감함을 넘어서 심히 어지러웠다. 어린아이들이라 엉덩이 댄스까지는 그래도 귀엽게 봐줄 수 있었지만 방귀는 아니었다. 엄연한 식사 자리였고 공적인 회식 자리였다. 낯설어하지 않고 앞에 나가 뭔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게 여기고 싶었지만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아닌 건 아닌 거였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못 봤는지,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제 자리로 돌아왔고, 나는 옆자리 직원에게 "뿌하오이스~ (미안해요)"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앞에 나가서 한 건 용감한 거지만, 그런데선 노래나 춤이나 말을 하는 거야. 식사자리에서 엉덩이 대고 흔들거나 방귀 소리 내는 건 절대로 안돼. 그건 예의가 아니야. 앞으로 절대로 그러면 안돼. 다음에 또 그러면 엄마 화낼 거야."

여기까지,  1절만 해야지 하고 얕은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남편이 옆에서 대견하다는 듯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들 귀엽기도 하지~!!!"

그 말에 참았던 2절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맨날 집에서 애들하고 그런 저질 댄스나 추고 노니까 애들이 밖에 나와서도 저러지!"

분위기 파악 못한 남편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덧붙였다.

"노홍철 엘리베이터 춤 안 춘 게 어디야."

"뭐? 론머ㅏㅇ롬나ㅓㅇ로만어로(생략)."


#2. 겁쟁이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집에 가져왔다. 빈 A4용지에 연필로만 슥슥 그린 그림이었다. 얼마 전 다녀왔던 놀이공원의 각종 놀이 기구, 관람차를 그린 것이었다. "와아~ 놀이공원 놀러 갔던 거 그렸구나!" 그런데 한쪽에 보니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엄마와 두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에겐 고소공포증이 있다.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높은 곳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날도 관람차를 타기 싫다는 걸 아이들이 졸라서 같이 탔다. 차라리 속도감이 있는 놀이기구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서서히 높이 올라가서 내려오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꼭대기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남편은 급기야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고 땅에 내려올 때까지 손잡이를 꽉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건장한 남자가 관람차를 타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게 웃기기도 해서 웃음을 빵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둘째가 놀라며 같이 울먹거리려 하는 게 아닌가. '하아~ 참! 땅으로 내려가기까진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

첫째가 물었다. "아빠 왜 울어? 무서워?"

"응, 아빠는 높은 곳을 무서워해. 겁쟁이인가 보다~" 

공벌레같이 스멀스멀 내려가는 관람차와 울고 있는 남편과 걱정스러운 아이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노래를 불렀다. "아빠는 겁쟁이~ 아빠는 겁쟁이~." 첫째와 둘째 아이가 신나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도 빨개진 눈으로 헤헤 웃었다. 울음바다가 된 관람차 안에 갇히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위기를 모면한 나를 스스로 칭찬했었던 것 같은데, 첫째 아이의 그림이 그때의 우리를 다시 잡아 세웠다.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아빠를 겁쟁이라고 놀리면 안 된대. 친구도 누구도 겁쟁이라고 놀리면 안 된대."

"맞아 맞아. 선생님 말씀이 맞아." 웃으며 답하는 내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애들이 따라 하잖아!'라고 핀잔주거나 '이런 건 닮지 말아라'라고 하거나, 아니면 놀리거나. 남편에게 그랬다. 실제로 이런 건 제발 제발 닮지 말아라 하는 점도 여전히 많고,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도 많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서, 아빠가 하는 걸 보고 자라서 잘 컸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가만히 있을 땐 웃는 얼굴이 조금도 없는데, 남편은 가만히 있어도 항상 웃는 얼굴이다. 아이들이 그걸 닮았다. 아이들에게 너무 화가 나면 참으려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방에 따라 들어와서 '엄마 미안해' 한다. 부부 싸움했을 때 남편이 나에게 하는 걸 보고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전에 이미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천지였지만) 그리고 저녁 늦게든 아침 일찍 출근하기 전이든, 쌓아놓은 설거지를 해치워 주는 남편을 보고 두 아이들이 서로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나선다.(명절 때도 시댁에서 설거지 담당은 남편과 아주버님이시다.) 언제 어디서나 아이들이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유머감각을 발휘할 줄 안다는 것도 다 나를 닮은 것 같지는 없고 남편을 닮았을 것이다. 물론, 그 이상은 머리를 쥐어 짜내도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결혼하기 전, 부모님의 반대로 3년 동안 몰래 그럭저럭 연애를 하다가, 완강한 반대에 단식을 했었다. 하루, 그러니까 삼시 세끼라서 단식이라 하기 부끄럽지만, 그 하루 만에 엄마가 우셨다. 결혼 승낙을 받은 후로도 엄마는 언덕길 꼭대기에 있는 24평짜리 전세 신혼집을 보고 우셨고, 결혼식날에도 우셨다. 엄마가 눈물이 많다고 생각한 적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그때마다 나는 죄를 지었다. 학벌도 직장도 남부럽지 않게 보이던 남편이었지만,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회사에서 정장 입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사석에서 만날 때는 단벌 신사였다.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걸 알고 남편이 연락을 끊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저녁, 집 앞에 찾아가 밤까지 기다렸다. 그러니까, 내 생애 가장 철없고 무모했던 짓은, 결혼이었다.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 하지만, 나의 경우엔 결혼했을 때의 후회치가 안 했을 때의 후회 치를 한참은 넘어섰다. 후회에도 질량이 있다면, 어마어마한 먼지 같은 후회에 질식하고 말았을 거라 확신한다. 다행히도 후회는 하고 또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사라지는 망각의 물성을 가지고 있어서, 건망증이 심한 나는 지금까지 잘 숨 쉬며 살아 있다. 그렇게 까맣게 까맣게 잊고는 아빠를 닮은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만하면 행복하지'라고.

그리고는,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관람차를 타 줄 수 있는 용기, 겁쟁이라 놀려도 활짝 웃으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아이들을 웃게 해 줬던 남편의 마음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닮는다면 크게 바랄 것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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