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남편과 아이들이다. 그래서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베스트 프렌드와 같이 살고 있는 거니까.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남편과 식탁에 앉아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나에겐 하루의 힐링 타임이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행복하다. (몸을 많이 쓰며 놀아야 할 때는 제외) 우리는 작은 간식 한 접시를 앞에 두고도 몇 시간씩 수다를 떨 수 있고, 아이들도 주말에 엄마 아빠랑 넷이 다 같이 놀 때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들,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가족. 나의 친구.
하지만 그냥 '친구'로서의 친구는 내 삶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에 온 지 8년, 처음엔 어학당을 다니며 또래 친구들도 만나고 외국 친구들도 만나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서 홈파티도 했다. 아이를 낳고도 아이 또래 친구 엄마 몇몇과 교류하며 마음을 나눴었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지금 나는 친구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이런 사람이다. 약속을 잡으면 집을 나서기 전부터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되는 사람. 오랜만에 만나서 주름이 늘었어도, 스타일이 좀 아니어도, 얼굴 보자마자 서로 '예뻐' 하는 사이.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웃어주며 힘든 일에는 서툴지만 진심인 위로를 건네주는 이들. 빛나는 시간들에 대한 추억이 같은 사람들.
그렇게 나의 현재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계속 있을 줄 알았다.
꼭 동갑이 아니어도, 말을 편하게 트는 사이가 아니어도, 마음을 틀 수 있는 사이는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세상 어디든.
아이 학교 같은 반에는 한국인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둘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이다. 아이 엄마와는 같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정보도 나누고 고민도 나눴다. 중국어 숙제가 어려워서 엄마도 도와주려면 함께 공부해야 해서 힘들다고, 또 세 가지 언어를 해야 하는 고충에 대해서도,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정말 쉽지 않았다. 중국 유치원을 다녀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영어도 홈스쿨링으로 끌어왔기에 기특하게 잘 적응하고 있지만, 초1 부터 핑잉, 한자, 고시 등을 공부하는 중국 교과과정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여태까지 따로 과외를 하지 않고도 유치원 교육과 독서 만으로 잘 끌어왔는데, 얼마 전 감기가 심하게 걸려 이틀 동안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면서 거의 일주일 동안 아이들을 잘 봐주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 남편도 일이 바빠 잘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일상이 정지되어 버렸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과외 선생님 정보를 물었다.
"중국어 과외는 하고 있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그랬구나. 그런데, '는?' 지난번 엄마들이랑 얘기할 때, 영어 원어민 선생님 수업도 하고 있다는 걸 한 번 들은 적이 있어서 다시 물었다. "아 그럼 그 원어민 선생님 수업은 이제 안 하고 중국어 수업하는 거예요?" 한참 후에 다시 답이 왔다. "아, 그 원어민 수업도 하고 있어. 그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 그리고 중국어는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했었던 거라고 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매일같이 하교할 때 픽업하며 얼굴 보고 한 얘기들이, 아이 숙제 봐주기 어렵다, 놀이터에서 놀고 밥 먹고 씻고 숙제하려면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엄마 혼자 첫째 숙제 봐주는 동안 둘째는 방치하게 되어 미안하고 힘들다. 이런 얘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원어민 선생님이 번갈아 집에 와서 숙제도 도와주고 복습도 해줬던 거다. 게다가 예전에 내가 "지금은 그래도 이 정도지만 나중에 학년 올라가면 진짜 따로 중국어 선생님 붙여야 하나봐요."라고 했을 때 그 언니는 "그러게 말야, 나도 숙제방 같은거 보내야 하나 고민했어."라고 말했다. 건망증은 심하지만 기억력은 좋은 내가 기억하기론 분명히 그랬다.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는 사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이들 애기 때부터 봐왔고, 맛집도 같이 찾아다녔고, 아이들 둘이 나란히 학교에 들어가서 기뻐했다. 숙제 봐주고 엄마도 같이 매일 공부해야 해서 힘들다는 얘기를 했을 때 같이 맞장구치며 힘들다고 했었는데,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을 땐 우리 집에 oo이 보내라고, 내가 둘이 같이 숙제 봐주겠다고도 했었는데, 매일 얼굴 보며 왜 한 번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당연히 따로 선생님 붙여서 학업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건 아이를 위한, 최선을 위한 엄마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한인 사회에서, 친한 사이에서조차 정보를 쉬쉬하는 모습을 보니, 또 그 당사자가 내가 되어 보니 참 씁쓸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서글펐다.
대입도 아니고 초등학생 1학년 아이들인데, 그것도 외국 아이들 틈에서 유일한 한국인 아이 두 명인데, 그 안에서 둘이 경쟁을? 학교 수업은 중국어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두 가지 언어에 쏟아붓고 있지만, 그게 학교 안에서 눈에 보이는 성적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봐도 성적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학교도 아니다. 시험을 잘 본 아이는 개인에게 따로 알려주거나, 아니면 상위권 몇 점은 3명, 중간 점수는 10명, 이런 식으로 공개한다. 지난번 시험 때 그 엄마가 나에게 아이 성적을 물어봤던 것도 생각이 났다. 중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영어 중국어도 물론 중요하고, 아이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거란 것을 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모국어인 한국어이다. 나중에 아이가 한국어로 소설도 읽고 시도 읽고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간절하다.
지금은 아이가 어리니까 그런 걸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아이가 생각보다 모든 걸 잘 해내 주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입시란 것도 경험하고 아이가 해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나도 이기려는 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서운한 감정을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도 같은 엄마로서 그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마음을 써서 이해해 본다. 그렇게 애쓴 마음 뒤엔 아무것도 남지 말아야 할 텐데, 텅 빈 듯한 상실감이 기어코 남고야 마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예전에 내가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도,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
만나면, 얼굴 바짝 맞대고, '그대로야!'를 외쳐줄 너희가 많이 그리운 날이다.
사진 : pex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