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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Sep 28. 2020

죽음, 그리고 모든 망각에 대하여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아이 미술 선생님한테 메시지가 왔다. 평소와 같은 가벼운 손가락 터치로 무심코 열어본 문자.

친정엄마가 오늘 아침 돌아가셨고 그래서 내일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간다는,  그리고 오늘 미술 수업은 취소하고 당분간은 아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전화 못 드리고 문자로 드린다는 그런 내용.

머리가 멍해지고 잠시 숨이 멈춰졌다.
어머님이 위독하시다고 그래서 한국 들어갈 준비를 하고 계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되었다 라고 현실화되는 그 간극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더군다나 그 간극의 정도란 곁에서, 그것도 아이 미술시간에 만나는 것 외엔 선생님과 그렇다 할 친분도 없었던 나로선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음이란 인생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사건이다. 통제라는 단어를 무력화시키는 소멸.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언젠가는 일어날 일임을 알면서도 우리 모두는 현재에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병에 걸리거나 상태가 위독해져 현실에 바짝 다가왔을 때야 그 크기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죽음을 알지만 외면하고 현재에 집중하여 살아가듯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것들을 그러한 채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을 붙잡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반복하며.. 실수를 반복하면 어떤 결과가 다가올 것인지 알면서도 오감을 동원한 현재의 감각이란 게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와 생생한 현재와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렇게 큰 간극 때문에라도 인간은 고통을 잊고 또다시 살아가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고통이 아무리 생생하다 한들 그건 추억하게 될 과거일 뿐이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아직 다가오지 않아 작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를 붙잡고 미래를 바라보는 삶 역시 저버리지 말아야 하거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감각에만 의존한 채 남이 아닌 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잊고 또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눈 앞에 번쩍이는 작은 핸드폰과 태블릿에 빠져 하루를 망각하는 그것과 비슷하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하루. 행복했던 과거, 고통스러웠던 과거 모두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기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온 마음을 활짝 열어 맞이할 수 있기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어리고 치열했던 고민, 너와 내가 사랑했던 기억, 작은 생명의 탄생, 그리고 함께 만들어갈 날들과 너희가 만들어갈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나의 하루하루에 항상 깃들어 있기를..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이제와 같이 영원히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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