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년에 기대고, 삶보다 오래 사는 사랑을 바라고, 성실하게 슬퍼하고, 다시 쓰일 수 없다 해도 기적일 수밖에 없는 삶을 썼습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지만 가득 찬 것 같기도 한 그런 감정.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끝까지 발목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발목에 차오르는 빗물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는 생의 감정들.
이 책에는 알면서도 지나치고 싶었던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천사로부터 배운 그의 말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말들로 존재하는 슬픔, 고통, 행복의 감정들을 그려냅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와 함께 나의 유년시절을 눈앞에 그려보고, 미움과 사랑을 형상화해보고, 나에게도 천사가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매일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나도 언젠가는 너와 나의 문턱에 서 있게 될 텐데, 삶과 죽음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를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병든 아버지, 고양이 묘묘, 그리고 삶이란 아찔한 벼랑 끝에서 떨어져 버린 수. 정현우 작가의 세상을 읽으며, 여전히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음에, 함께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움켜쥐었다고 생각한 순간조차 마냥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누군가는 남겨질 거란 사실 때문일 테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사는 이 세상에 없었기에, 끝까지 이기적이고 싶었던 날들. 그 이기적인 사랑의 결실로 언젠가 너에게 아름다운 슬픔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고 나서야 생이 아득해졌었더랬습니다. '햇빛들이 나의 온몸을 찌를 것 같은 우울'. 쏟아지는 햇살 아래 눈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행복과 슬픔이 이토록 등을 맞대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징그럽고 아름답습니다.
책과 함께 정지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흐린 눈물을 흘려보내며, 또렷해지는 글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는 수밖에.
결국 사랑은 알게 되는 것뿐. 사랑은 예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22p
고장 난 마음들이 한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기분이 든다. 97p
문득 햇빛들이 나의 온몸을 찌를 것 같은 우울이 찾아올 때,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때 나는 작은 포도 씨앗이 되어 땅속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한다. 111p
생은 이토록 징그럽고 아름답다. 179p
엄마에게 피가 난다며 아들이 울었다. 나는 아이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뚝, 세상에 울 일이 훨씬 더 많지. 이건 하나도 아픈 일이 아니야." 241p (엄마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