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 1편'이라고 한다. (브런치 작가라면 익숙한 이 문구?!)
아마존 리뷰 900개 돌파,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작가가 쓴 책이라고 한다.
책 제목은 '묘사의 힘'.
오, 이건 읽어야 해!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었지만, 독서 모임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을 책. 누구에게도 밝힌 적은 없지만 요새 나의 최대 관심사는 '글쓰기'다. 내 인생 최대 관심사의 총량을 따져보자면 여전히 외국어이겠지만, 최근의 시점은 '읽고 싶다' 보다 '쓰고 싶다'에 더 집중되어 있다. 많이 읽고 싶고 또 그보다 더 많이 쓰고 싶다. 그리고 책과 글이 나의 일상에 점차 스며들수록, 읽는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을 깨달아갈수록, 결국은 '이야기'에 끌린다. 거창한 주제, 인간의 심리, 숨겨진 은유 같은 것 다 떼어버리고 순수하게 스토리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댔던 독서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브런치에는 주로 에세이 위주의 글을 쓰고 에세이나 정보성 위주의 독서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끌리는 건 소설이다.
그런데, "이제 미뤄두었던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이기호 소설가 강력 추천) 라니!
얼마 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다시 읽었는데, 연이어 다가온 이 책이 더없이 반가웠다.
최근에는 '쓰는 사람' 이 많은 만큼 글쓰기에 대한 강좌나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 책은 소설 쓰기나 묘사에 보다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글쓰기 책들과 구분하여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팁이라는 점에서 글을 쓰는 사람 누구나 참고하면 좋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내용은 실제로 첨삭받는 것처럼 꽤 디테일하다. 책에서 밑줄 친 부분을 인용해 본다.
부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능한 부사를 빼버리자. 36p
'느꼈다' '듯했다' '보였다'처럼 수동적이고 힘이 약하며 정적인 동사는 행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38p
인물 배경을 지나치게 일찍 밝히는 경우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망친다. 71p
답을 제시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독자의 마음에서 궁금증이 피어오르도록 만들라 72p
가장 좋은 대화 꼬리표는 '말했다'이다 114p
중요한 것들은 보여주고 나머지는 생략하라. 124p
뛰어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며 작가들은 자신의 집필 도구함에 '보여주기'기술과 '말하기'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136p
책 전반에서 말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플롯을 방해하는 요소는 '말하기'를 통해 과감히 생략해야 하며, 보여주기와 말하기를 적절히 섞었을 때 이야기의 힘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결론을 전달하고 있다. 몇 가지 팁들은 바로 전에 읽었던 '유혹하는 글쓰기'와 상당히 많이 겹치기도 했다. 부사(ly)를 빼야 하고, 수동태를 쓰지 말아야 하고, 가장 좋은 대화 꼬리표는 '말했다'(said)라는 부분 등, 그 책에서는 영어 본문이 같이 인용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는데, 이를 우리말 글쓰기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필요한 팁만 쏙쏙 빼서 머릿속에 저장해 둔다면 글을 쓸 때 용이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유용한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책에는 없고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있는 것들이 조금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런 소소한 팁들보다 인상 깊게 다가왔던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글쓰기가 재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탁소에서 일하고 나서 녹초가 된 몸으로 쓰고 싶어 썼던 시간들, 문을 닫고 나만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쓴 후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글을 쓰고 난 후 초고를 아내에게 보여줬을 때 아내가 어느 단락에서 원고를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러 가는지 살펴보는 것, 속도가 느려지고 재미없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한다는 것, 글은 '주제'가 아니라 '스토리'라는 것.
편집자라면, 혹은 초고를 고쳐나갈 때라면, 이 책의 팁들이 무척 유용하리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매의 눈으로 인물 배경이 처음부터 드러나지는 않는지, 쓸데없이 너무 길진 않은지, 보여주기와 말하기가 적절히 섞여 있어 글의 흐름이나 긴장감이 잘 전달될 수 있는지. 하지만 초보 작가가 이런 팁을 하나하나 내재하고 글을 써나가기 시작한다면, 의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소설 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보다 어쩐지 더욱 막막해지는 느낌이 들었달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보기엔 소설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기술의 장인이 꼼꼼하게 이것저것 따져 엮은 것 같은 스토리보다는, 갑자기 튀어나온 듯 혹은 빨려 들어갈 듯 한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기에.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글쓰기의 마법에 빨려 들어갔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 '묘사의 힘'은 멋진 마법을 진짜 마법처럼 믿을 수 있게 하는 세세한 기술에 대한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편집자의 일을 신의 영역이라 하는지도.
결국 자꾸 엉켜버리는 생각들을 잠시 그대로 내려놓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팁들은 한 번 읽고 냉장칸 속 장아찌처럼 구석에 오래 묵혀놓아도 괜찮은 것이라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발견했을 때, 숙성된 그 맛이 짭짤한 좋은 반찬이 되어줄 것이니 말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면, 글을 써 내려가는 손가락이 이야기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때가 온다면, 그때 지금 읽은 이 책이 좋은 양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