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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Feb 28. 2023

브런치는 좀 괜찮을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질겁하고 온 고인물

예전에 태어난 이유로 거저 블로그 1세대라는 타이틀을 갖은 적이 있었다. 

나란 사람, 구글, 아마존, 네이버, 다음의 창업을 지켜본 사람이다. (아..IT 고인 물..)

심지어 네이버 아이디는 지금은 절대 만들 수 없는 3자리 수다. 

불안정한 네이버 창업 초창기에나 가능 했던.. 희귀 아이템이랄까 하하..

그때만 해도 워낙 초창기라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내 블로그 글이 노출되기가 그나마 좀 쉬웠던 세대였다.


한 번은 친구랑 뉴질랜드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그냥 느낌대로 여행기록을 적었는데 

블로그 조회수가 폭주하는 것이다. 

잘 보고 간다며 댓글 남기시는 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아시고 여길 오셨어요?" 라고 물어봤더니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 걸렸단다 글쎄.

그 힘을 받아 네이버에서 주최한 여행기 공모전에 블로그 글 그대로 제출했더니 

옳다구나, 대상을 받아 선물로 일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뭘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거 자체가 

좀 희귀한 때였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여행작가님들의 콘텐츠와 비교해 보면 어우, 감히 도전장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시대를 잘 타고났었다. 그 때 블로거로 자리 매김을 했어야 했는데, 그 땐 그것이 귀한 줄 모르고 방심했다가 지금 블로그는 거미줄이 쳐져있다. 물 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그 땐 왜 몰랐을까.


20년 직장생활과 15년 육아로 바쁘게 살아온 세월 동안 "기록"이라는 것을 거의 못했다.

기껏해야 카카오스토리 육아일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그날 먹은 것들, 산 것들, 요리한 것들, 간 곳들 등 간략하게 사진으로 남기는 게 전부였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 기록 없이 스쳐가는 삶이 좀 공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도 기록용 글을 좀 남겨보자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나름 꽃 같지 않고 불꽃 같은 삶을 살아왔고, 파란만장했는데 기록이 없다. 

이력서? 자기소개서로는 나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다. 


나만의 콘텐츠가 무엇일까, 글로 쓸 때 가장 흥분되는 카테고리와 장르, 소재가 무엇일까?

고민해 봤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뭘 하나 진득하게 제대로 하는 것이 없기에.. 

난 정말 그냥 제너럴리스트 직장인이었구나 한 사람으로서의 내 킬러 콘텐츠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의 색깔이 무엇일까.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어떤 회사를 위한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를 제대로 찾아 남겨보고 싶다. 


어쨌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정비하고 새 블로그도 만들어보고 했는데

와! 정말 너무 많은 "선수"들이 있어서 기가 죽어 못하겠다.

단순히 일기라면, 아무도 안 보는 일기장에 쓰면 되건만 글이라는 게 또 남한테 보일 때 빛을 발하기도 하니까 내가 쓴 글을 남들도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요즘 핫한 인스타나 유튜브는 재주도 없고, 부지런함도 없어 감히 엄두도 못 내겠다.


그러다가 예전에 계정을 만들어 둔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어와 보았는데, 편안한 안정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브런치를 우습게 보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야 말로 진정한, 좀 덜 상업적인 "진짜 글 꾼"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잘 안다.

제품소개글이 아니어도, 여행지 맛집 소개글이 아니어도 진정성 있는 글들을 서로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다른 채널들에서 상처받고 기죽어 온 이 한 몸, 글자 몇 자 살포시 적어놓고 잠을 청해 본다.

내일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곳에 들어오는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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