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즈 Mar 02. 2023

에세이 04, 오봉도둑

나쁜 기억 #1

출처 : https://www.etsy.com/ca/listing/592009125/1960s-tray-vintage-serving-tray-hand

어릴 적 작은 우리 동네에 제일 안쪽 골목에 부잣집이 있었다. 부자라고 해봤자 서울 부자와는 급이 다른 그냥 동네 부자 수준이었겠지만, 그 집 4남매는 철마다 때마다 옷을 사 입고 우리가 갖지 못한 장난감을 가졌으므로 내 기준에서는 세상 가장 부잣집 같았다.


그때 아마 초등학교 3학년인가였을 것이다.

워낙 골목 집집마다 가족처럼 지내던 때라 그 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셨다.

그날 초저녁이었나? 엄마가 나에게 음식을 먹고 난 오봉(쟁반)을 그 집에 갖다주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귀찮지만 반항해 봤자 달리 거부할 방도가 없기에 군소리 없이 오봉을 들고 타박타박 그 집에 갔다. 나에게 닥칠 일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원래 남에게 음식을 받으면 우리 쪽에서도 음식이든 뭐로든 답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예의에 철저했던 안동 양반이신 우리 엄마는 왜 하필 그날은 빈 오봉을 나에게 주신 것일까? 안될 날은 안될 징조였던 것이다.


좌우지간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넓고 커다란 대문 앞에서 오봉을 들고 까치발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그 집주인아줌마는 나오질 않으셨다.

그러면 그냥 집에 돌아오면 될 것을 미련스럽게도 나는 대문밖에서 아줌마에게 오봉을 전달해줘야 한다는 일념하에 하염없이 기다렸다. 날도 어둑어둑 해지고 골목 젤 안쪽이라 제법 무서웠는데도 말이다. 역시나 안될 날은 안 되는 거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 집주인아저씨가 저 멀리서 퇴근하시는 게 보였다. 그 아저씨는 대문 밑에서 그 집 "오봉"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셨다. 아저씨는 한두 번 밖에 뵌 적 없는 분이라 쭈뼛쭈뼛 인사를 할까 말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다.


아저씨가 나의 머리를 그 큰 손으로 쥐어박은것이다. "아니!! 이 도둑 X! 왜 남의 오봉을 훔쳐가!!" 라고 고함을 지르며.


정말 나는 그때 아저씨의 그 말과 폭력에 그 어떤 대꾸도, 변명도 할 수 없을 만큼 놀랐었다.

아저씨가 너무나 무섭고 놀라서 한마디도 못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나를 자꾸 자기 집 오봉도둑!으로 몰아세우는 거였다.


나는 꾀죄죄한 인상착의의 좀도둑 모양새도 아니었고, 귀한 우리 집 딸이었다. 형제들과 싸운다고 엄마한테는 좀 맞았지만 아빠한테 한 번도 맞아본 적 없었다. 어른 남자에게 손찌검을 당하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아직도 그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충격이 컸었나 보다.  


그 아저씬 왜 나를 오봉도둑으로 몰아세운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설사 내가 오봉도둑이라 해도 내가 남의 집 담을 넘어 훔친 물건이 고작 오봉이었겠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억울하고 원통하고 아프고 서럽고 어린 맘에 상처를 입은 나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왔고 집에서도 한참을 대성통곡을 했었다.


사건의 내용을 알게 된 엄마는 노발대발하며 나의 손을 붙잡고 그 집에 가서 그 무례한 아저씨에게 사과를 받아내었다. 물론 거만한 그 아저씨는 말로만 미안하다 했을 것이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난 이미 상처받았으므로..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그 아저씨를 만날까 봐 그 집이 있던 골목길엔 절대 가지 않았다.


어떻게 그때 그 아저씨는 자기 대문 앞에 서 있는 10살 어린아이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람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점점 잃게 되면 나도 그 아저씨처럼 아이를 보고도 오봉도둑이란 생각을 먼저하게 되는 불쌍한 사람이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03, 덕질찬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