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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Apr 25. 2020

해외 살이 1.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

사랑VS일, 후회 VS 시작

"너무 부럽다." "좋겠다." "헬조선 탈출!"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모두들 나에게 용기를 주기위해 격려하고자 했던 말들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난 스페인 남편과 결혼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계속해서 설레고, 또 우울했다. 

'어떻게 버텨온 일인데....' 사실 말이 그렇지 뭐 그리 내 일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잘 버티지도 못했고...

나는 나약하기도 하고 끈기도 부족한 성격이다. 

한 번은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다른 일도 있었지만 너무 지쳐서 

스페인으로 무작정  떠나버리기도 했고 

다시 돌아와서는 다른 직종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항상 열정만큼 끈기가 따라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람 운명이란 참 신기하게도 마지막으로 놀아보겠노라고 떠났던 스페인,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파며 새로운 도전을 했던 직장 덕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28살 이었던 남편, 결혼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였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 어머니를 잃고 또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홀로 해야 하는 그에게 

심적으로 안정이 되줄 내가 필요했었기에 결혼을 결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제일 걱정은 부모님의 반응! 

외국인이랑 사귀어도 되지만 결혼은 반대했던 엄마, 아빠였기에 더욱 걱정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엄마 아빠는 한껏 폴로 티쳐츠에 외국인 모범생처럼 단정하게 머리랑 수염도 깎고

하이얀 피부에 눈은 똥그란 지금의 남편을 한 눈에 오케이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ㅋㅋㅋㅋ (정말, 어쩜 딸을 이렇게 쉽게 줄 수가 있어?)


뭐 친정부모님의 빠른 승낙 덕분에 한달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당장 한 달후에는 결혼, 두달 후에는 멕시코로 가야했고

그럴수록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점점 더 고민이 되었다. 


'잘 결정한 걸까, 그냥 너무 힘들어서 결혼으로 또 다른 어디 다른 나라로  또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이제야 더이상 도망 안가고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꾸준하게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싹텃는데, 

7~8년 그동안 일했던 내 삶을 다시 업었던 셈 치고, 

리셋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걱정되었다. 


우울할 틈도 없이 바빴는데 나는 참 잘도 우울해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남들은 잘 알지 못하게...


그리고 정말 하루 하루 결혼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이대로 인생의 선택을 망칠 수 없다 생각되어 

내가 존경했던 인생의 어른님들께 조언을 요청했다. 


"그런데, 잘하는 걸까요? 제가 했던 일 외국에 가면 할 수 없을 텐데....

가서 뭐하죠? 남편을 따라 이대로 모두 버리고 가는 게 맞을까요?"


라고 초조하게 말했지만 모두들 의외로 대답은 한칼이었다. 


"사람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야.. 아무리 찾고자 노력해도 나타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어."

"그런데, 일은...일이 잖아...결국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은 게 '일'이지, 사람이 아니거든....

인생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잘 생각해봐."


대부분 사회적으로도 직위도 있고 

커리어 우먼, 골드미스였던 분들의 대답은 한결 같앗다. 

당연히 '일'이라고 대답하며 나를 설득해 줄 것 같았던 사람들의 대답은 

주저 없이, 일과 사람 중에는 무조건 사람이였다. 


"아마, 부모님도 그래서 한 번에 오케이 하신 걸 거야..

.ㅋㅋㅋㅋ 물론 얼른 다 큰 딸 치워버리고 싶기도 했겠지만...? ㅋㅋㅋㅋ"


한국에 살면서 '공부=인생, 일=인생' 이라는 분위기에 살아왔어서 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를 마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쨋든 나는 어른님들의 조언을 변명 혹은 힘으로 삼아 

일보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람'을 택했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삶은 참 신기하게도 살아지더라...'

라는 말처럼,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첫발을 내딛자 마자 하루 하루가 살아지고 익숙해졌다. 


이제 외국살이 4년차, 

들여다보면 남들보다 멋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적당한 일, 적당한 휴식 그리고 적당한 스트레스...


열정 만수르인 삶에서 빠져나와 한 동안은 우울하기도 했는데, 

어느덧 하루 하루를 알차게(일만이 아니라 여러가지로)살면서 이 삶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계속해서 내 일을 열심히 했다면...이런 사회적 위치에 있을텐데..적어도 돈은 이만큼은 벌었을텐데...'


그러다가도 커다란 눈의 남편을 택하고 같이 살아가면서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국가들에서 이방인의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간혹 간혹, 지금 이 순간이 돈으로도 명예로도 살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것임을 느낀다. 


그 누구도 아닌 진정한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달까?

돈을 많이 벌었을 때 보다, 일로 인한 성취로 벅차올랐던 마음과 비교할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행복하고 그리고 조금 더  풍요롭다. 


해외로 떠나올 적 엄마가 적어 주었던 

손편지에 쓰여있던 선묵혜자 스님의 '모르는 마음'이라는 책의 

구절이 와닿는다. 


'산다는 것은

비갠 산사를 걸으면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새와 바람과 나무와 한 몸이 되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홀로 책을 읽거나 창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산다는 건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버리는 일입니다. '


그래도 또,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삶을 더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한국의 삶과 비교해 보면서

끊임없이 한 켠의 시기심과 한 켠의 자부심이 나를 두고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루 하루 홀로 외로워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더 오롯한 자유를 느낄 수 있기에..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또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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