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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r 15. 2024

5.이 할머니, 품격 있고 우아하네.

<시니어모델 클래스, 나를 돌아보았던 시간>


1. 멋지려면 에너지도 들고 귀찮기도 하다.


예의 바르고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품격 있는 어른 되기는 사실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냥 대충 살면서 기분대로 행동하고 대접받기 위해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노화의 흐름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상대편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이 몸에 배이기 쉽다. 필터없이 생각대로 말해버리고 당장 자기가 편하기 위해 배려하지 않고 대충 행동해 버리게 된다.

젊을 때보다 에너지가 없고 마음은 조급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욕망을 누르고 절제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경계를 소홀히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례하고 이기심 가득한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이 나이 들어서도 대접 못 받고 매사 맞추고 자제하면서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타인을 먼저 대접할 수 있는 여유롭고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편한 생활과 멋진 생활은 양립할 수 없다.


한평생 자기만을 바라보며 40~50년 이상 살아왔으니 모든 것의 기준은 자기 안으로만 결정된다. 외부의 시선에서 자기의 말과 행동을 객관화하며 주의를 기울이기에 점점 더 소홀해진다.

한마디로 눈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안하무인 독불장군까지 아이덴티티로 흡수하게 된다.


내가 먼저 타인의 상황을 배려하여 양보하고, 말과 행동을 늘 자체 검열하기는 피곤한 일이긴 하다.

나이가 들면서 '자기 주관화'에서 벗어나 '자기 객관화'가 잘 되면 우아하고 품격 있는 시니어로 기본은 준비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새로운 도전이 무서운 이유는 세상의 시선 때문.


모델 클래스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내 미래를 미리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미 나보다 10~20년 이상 앞서간 시니어 선생님들을 보며 매주 수업이 끝난 후 내 미래를 상상해 봤다. 

(나이가 많아 언니, 오빠라 못 부르고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들임) 


이런 수업에 나오는 시니어라고 하면 자신들의 또래 친구들보다 상당히 열려있고 튀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 혹은 시기질투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신의 도전을 즐기는 시니어 선생님들의 모습이 멋졌다. 

사실 주변인들의 질투는 그들이 못 가져서이다. 주변에서 말린다고 해도 들을 필요도 없다. 그들도 안 해본 거라 검증된 의견도 아니다. 그냥 무작정 노년은 조신히 있어야 된다는 생각의 편견에 갇혀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 모델 수업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흉볼까 봐 상당히 숨겨왔다.(그러나 최근 오픈했더니 생각외로 다들 너무 흥미로워하고 관심을 가졌다.)

내가 몇 년째 브런치 글을 쓰는 것도, 인스타그램에 모델 부계정을 만든 것도 모두 비밀이었다. 남들이 흔히 안 하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늘 구설에 오르기 마련이다. 

타인이 나를 비웃는 게 두렵다고 숨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원래 모든 새로운 것들은 주변의 비웃음을 꿋꿋히 견디며 해낸 결과로 특별함을 얻게된다.


사주 12신살 중에서 망신살이라는 것이 있다. 내 얼굴과 몸을 세상에 공개하여 나(=身)를 망친다는 살이다. 

그러나 망신에는 이득도 있다. 얼굴과 몸을 오픈해 성과와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망신이 두려워 숨어서 조용히 지내왔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평생 부지런히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지 못한다. 

안티도 부지런해야 하는데 대체로 그냥 지금 쉽게 안줏거리로 욕하며 씹고 버린다.


세상의 시선이 어떻든 그런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인연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 된다. 세상에 노출되는 활동을 많이 할수록 욕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고 유명세를 치러야 한다. 

유명해지며 얻은 이익이 있으므로 응당 내야 하는 세금이다. 

세상에 공짜 없다. 최근 개인 활동을 회사동료들에게 커밍아웃을 많이 했다. 조만간 유명세를 제대로 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망신살로 인한 미움과 시기질투를 슬기롭게 웃으며 잘 이겨낼 수 있기를...)



3. 지난 15주의 시니어 모델클래스.


나는 아직 시니어라고 불리기에 이른 감이 있다. 이 클래스에서는 영시니어라고 부른다.

마치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교과과정 선행학습을 마치고 진학하면, 성공적인 입시생활을 마칠 수 있는 것처럼. 

이 시니어 모델 클래스는 나의 미래 시니어를 위한 선행학습이었다. 그간 매일의 현실에만 집중하느라 10년 이후의 먼 미래를 그려보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저 세월이 빠르다고만 생각했고 수많은 시간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좋은 학교, 스펙 쌓기, 자기계발하기. 중년이 되기까지 완벽한 삶의 전성기를 꾸리기 위한 투자와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중년이 모든 인생의 최종 종착지인 것처럼 그 뒤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틈 없이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삶을 지탱하던 중요한 목표를 상실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경험은 과거에도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내어 수능을 치고 난 뒤 잠시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은퇴시기에 비슷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후회 없이 치열한 사회인으로 살아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내기 바빠 그 뒤에 올 어떤 삶을 그려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모델 클래스에서 워킹하는 방법, 아나운싱법, 바르게 서있기 같은 물리적으로 얻게 되는 교양수업 말고 보이지 않는 어떤 내면적인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이 수업을 대하는 시니어 선생님들을 보며 새로운 것을 즐기며 배우고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살아오며 여러 분야에 있어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인생을 살았지만 즐기면서 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늘 괴로워했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잘 해내기 위한 악착같은 마음으로 버텨내며 많은 성취를 거머쥐었다.

과정을 즐기며 조금 어설픈 결과를 얻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과주의적인 인간이다. 독기를 품다 보니 과정은 괴롭고 결과만 중시했다. 살아온 많은 시간 속에서 즐거움보다는 뼈를 깎고 괴로움을 이겨내는 결과들로 쌓아왔다. 

그래서 나의 과정(일상)은 늘 괴로움이며 성취를 낸 결과만 중요하게 여겼다. 일상을 즐기며 살지 못했다.


지금 살기도 바쁜 와중에 은퇴 이후 남은 인생을 미리 계획하긴 쉽지 않다.

그냥 남은 시간 맘 편히 흘려보내며 하늘나라 가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시기는 몹시 길다. (내가 직접 그 나이로 안가봤지만 부모님을 보며 그렇게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살아내느라 바빴던 젊은 시절과 다른 마음으로 인생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시간도 있고 아직 체력도 많을 테니까.


아직 나는 한창때라 매사 즐기는 마음으로 새로운 상황을 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은 시니어 라이프에 어떤 상황을 만나든 시험과 숙제가 아니니 하나하나 재밌게 아이의 시선으로 즐기며 지내고 싶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동기 시니어 선생님들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20년을 뛰어넘는 나이에도 그들과의 관계가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마치 미국처럼 70대와 10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편견 없는 사이를 경험했다. 

이런 매력 있고 귀여운 어르신(?)들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이런 곳이 아니면 어떻게 내가 이렇게 멋진 시니어를 만날 수 있을까. 롤모델 같은 진짜 어른들의 조언이 하나하나 소중하다.


그래서 늙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멋지게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나이 드는 것이 더욱 기대된다. 오히려 이들을 보며 수많은 기회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마저 생긴다.




15주면 대학 한 학기 한 과목 강의일 뿐이다. 이 정도 시간으로 한 인간의 삶에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엄청나게 역변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는 많이 배웠으니 끝이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에게 남은 미션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즉,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더해가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다.


남들에게 가르침을 주세요라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어떤 것을 더 공부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배움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드는 것은 자신이다.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태어난 김에 사는 유전자 운반체로써의 기능을 하는 몸 말고, 멋지게 잘 사용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 몸으로 즐기고 싶다.

  "저 할머니 품격 있고 우아하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말을 듣는 누군가의 롤모델 할머니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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