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얼굴 쌩얼뿐만 아니라 정신적 쌩얼>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늘 인위적으로 꾸미고 살아간다.
풀메이크업, 단정한 옷차림, 침착하고 우아한 태도, 정제된 언어, 프로페셔널한 능력 등...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를 관리하지 않은 모습은 무척 무례하고 무성의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회생활에서 잘 포장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꼭 필요하다.
그러나 24시간 포장된 모습으로만 자신을 통제하며 살수는 없다.
세상 속에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집에서는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숨쉴 구멍이 있다.
이 세상은 내 쌩얼을 모른다.
배우자가 된다는 것은 물리적 생얼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얼을 마주하는 것이다.
다들 같이 사는 가족에게는 쌩얼을 보여주고 살고 있을거다.
화장을 지우고 잠옷을 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며 집안을 뛰어다니며 고양이에게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부리다가 1초만에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괜찮다. 이 사람에게는...
왜냐하면 남편도 잠옷을 입고 쿵쾅대며 뛰어다니고 고양이에게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감정이 널뛰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함께 살아가야할 날들이 길다. 하나하나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남편에게 우아하고 멋진(?) 직장 선배님으로 남았겠지만, 결혼을 했으므로 그에게 모든 나의 하찮은 모습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을 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세월이 흘러가며 진짜 모습이 나오게됐다.
모든 생리적인 순간과 의식주의 일상을 나누는 사이를 신비로운 존재로 남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평생을 함께 사는 가족에게 매일 정제된 모습을 보이고, 연기하며 살수 있을까. 만약 그게 가능한다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자기 아이덴티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평생 한결같이 연기할 수 있는 정도 절제력이면 그 모습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존경! 상상만으로도 피곤하네.)
그러나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풀려버리고 말았다. 긴장감을 살짝 놨다.
오늘도 사주얘기를 하자면, 나는 을목인간이라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사회적으로 자기 관리를 잘해보이지만 집에서의 모습은 헐랭이 그 자체다.
어릴때 교복을 입을때도 교칙을 100% 준수하여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줄여 입거나 체육복과 겹쳐입는 행동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교복사에서 맞춘 상태 그대로 타이를 메고, 명찰과 교표를 제자리에 부착하여 완벽한 모범생을 연출(?)했다.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눈에 완벽한 내 모습을 확인시켰다. 이런 모습은 학교 선생님들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못생기고 후출근해 보이는 범생이 스타일.)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순간 돌변한다. 긴장이 풀린 나는 책가방을 맨채로 현관에 드러눕는다.(아직 아버지의 퇴근 전까지는 자유다.)
그러면 엄마가 가방을 빼주면서 고생했다고 할때, 뱀이 허물 벗듯 교복과 양말을 하나씩 바닥에 흘리며(벗으며) 사라진다.
엄마가 제발 교복을 한곳에 벗어라, 옷걸이에 좀 걸어라, 입은 옷은 세탁기에 넣어라 했지만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나의 완벽성은 대외 한정이었던 것이다. 밖에서 완벽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은 나는 집에 오면 자기 생활도 못챙기는 헐랭이 딸이 되어있었다. 엄마 앞에서만. 지금은 남편 앞에서만.
이런 하찮은 모습 자기만 보는 것이 아쉽다는 남편의 말. (부인을 매장시키고 싶은 걸까?)
집이 아닌 곳에서 이런 정제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가는 격리 조치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 늘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가야 한다. 남들에게는 잘 준비된 가면만 보여주면 된다.
밖에서 항상 긴장하며 모든 행동을 절제해야 하므로 집에 오면 상당히 피곤하다.
그렇게 나는 풀어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 조차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면 참으로 괴로웠을거다.
일본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서 여자 주인공 유키노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저 애니를 처음 봤을 때 짜릿하다 못해 부끄러웠다. 마치 내 일기를 들킨 것 같은 이중생활을 하는 모습에.
사회생활의 모습은 굉장히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속으로는 분노, 불안, 짜증, 초조를 씹어내고 있다.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기기 위해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평온한 무표정 뒤에 수많은 괴로움을 누르고 있다.
누구나 말 못 할 인생의 무게는 속으로 숨기고 살고 있을 거라며. 굳이 너만 유별나게 얼굴에 티내지 말라며.
원래는 나도 잘 웃는 사람이었다.
워낙 사회생활에서 분노나 불안을 견딜일이 많으니, 화를 내기 보다는 무표정으로 직장생활에 임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사람들이 내 무표정이 너무 차가워서 싸가지 없어 보인다고 할 정도.(가까워지기 전에 초 싹퉁바가지인줄 알았다는 동료들을 증언)
진짜 내 모습을 안다면 상당히 놀랄지도 모른다.
사실 부모님도 모른다.
그런 내 정신적 쌩얼을 남편에게 마구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엄청 잘 웃고 나름 애교도 많다.
감정의 날 것이라고 해서 공격성이 아니라 내 속마음이라는 부분이다. 늘 남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살아야 했기에 속깊은 진심을 그대로 말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말 해봐야 좋을 일이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 남편에게는 속 얘기를 잘 털어놓게 됐다. 의외로 예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인배에 가까운 태도로 인해 자꾸 진심이 술술 나오고 있다.(분명 대인배는 아닌데 얘기를 잘 들어준다.)
딱히 솔루션을 주거나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담담하게 듣는 담백한 반응에 용기를 내어 내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 후 난 수다쟁이가 됐다. 하지만 나보다 말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내가 말할 기회가 많이 없다.
아쉽게도 나는 대체로 들어주는 역할이다.
이 진심이 우리가 늘 마찰하게 되는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깊이 이해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거의 마찰할 일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은 왜 싸움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이걸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은 대체로 평화로움 속에 있다. 사실 내가 두려움에 대한 회피가 조금 있어 결정적인 진심은 속으로 모두 묻어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죽을 때까지 품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얘기들이라 괜찮다. 진짜 얘기를 다 하며 살 필요는 없다.
물론 진짜 정신적 생얼은 나만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거의 남편에게 90% 이상은 오픈한 실체다.
타인에게 나를 이렇게 노출하는 것은 늘 위험과 공격이 따르지만 남편에게만은 믿고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숨 쉴 구멍이 되기도 한다.
남편이 나보다 먼저 죽게 되면 이제 이런 진심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무척 서운할거같다.
늘 진짜 모습을 숨긴 채로 살아야만 했다면 상당히 고독하고 답답했을 수도 있다. 하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을 집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남편은 대체로 나의 대나무숲이 되었다.
이 대나무 숲들의 글들도 대체로 남편에게 털어놓다가 글감을 모아서 시작하게된 것이다.
어디서도 진짜 나답게 행동한 적이 없으므로, 처음에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믿고 나를 편하게 노출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물론 신혼때는 서로 조심하며 행동했지만 그렇게 평생 살수는 없는 노릇.
10년 넘게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서로 많이 풀어졌다.
이렇게까지 편하게 해도 될까를 고민하기도 했으나, 꽤 오랜 시간 함께 살다 보니 스스로 억압만 하는 것도 불가능해서, 지금은 대충 편할 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20대 초반 독립하여 혼자 살면서 모든 것이 자유롭게 풀어지는 생활을 처음 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엄격한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미리 어머니께 모든 행동을 물어보고 결정하곤 했다.
"엄마, 000 해도 돼? 괜찮을까?"
이게 버릇이 되어 혼자 살때도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너 000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괜찮겠어?'라며 내가 내 눈치를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늘 셀프 검열하는 피곤한 삶이었다.
지금 남편은 전혀 터치가 없다. 사소한 많은 것들이 너무 자유로운 일상이다.
처음에는 너무 막돼먹게 대충 사는 그가 어이 없었지만, 자세히 보니 상당히 행복지수가 높은 삶이었다. 그렇게 나도 대충대충 헐랭이 라이프에 끼어들었다.
이런 날것의 편안함은 서로 생활의 안정감으로 만들어져 집에서는 그다지 날카로울 일이 없다.
순둥순둥한 행복한 내가 있을 뿐.
몸도 마음도 다 편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여유 있는 가정은 나 혼자 1인 가정이어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과 편안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중에 우리는 평화롭게 쉴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올 수 있었다.
나는 외로움을 안타는 성격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안정적이고 든든한 울타리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외로움을 갈구하지 않게 된 건지도...그래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수 있었다.
(남편은 나의 성공을 응원해주며 셔터맨을 꿈 꾼다고 한다. 야망 없는 놈;)
배우자가 주는 안정감은 가정 전체를 통틀어 분위기를 결정한다.
결혼 초반에는 내가 믿음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을 자유롭게 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를 믿고 어떤 결정이든 다 허용하는 내 성격이 관대하고 '나는 대장부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오며 생각해 보니 남편 역시 나에게 의심의 여지를 굳이 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신뢰감을 주는 행동들이 누적되어 오며 그가 나에게 보여주는 크고 다양한 일들을 내가 여유 있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 점도 인정하게 된다.
물론 서로의 여유와 믿음이 윈윈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오로지 나만의 관대하고 위대한(?) 인성만으로만 이루어진 신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뢰라는 것도 큰 거 한방이 아니라 매일의 작고 사소함을 쌓아가는 것이 더욱 견고하다.
아무튼 이렇게 평화로운 가정을 가진 것을 남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 생활 어떠냐고 하면,
"그냥 평범해요. 결혼은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해도 그만." 정도로 대답하고 있다. 실은 꽤 만족하고 있어서 마구 강추하고 싶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안다. 내가 이 결혼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는걸.
일상의 생얼은 남편에게만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가정임을 혼자 인지하고 누리면 된다.
아무리 회사에서 전쟁통으로 지냈어도,
퇴근하고 집에 오면 편안한 잠옷을 입고 한량이처럼 뒹굴대며 고양이랑 수다 떠는 행동은 나를 가장 편하게 풀어놓는 모습이다.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찌질한 내 모습도 좋아해 주는 그에게 감사하다.
신혼때는 남편이 자주 해준 얘긴데 요새는 뜸하다.
"자기는 쌩얼이 제일 이뻐. 진심이야."
진심 그러길 바랄 뿐이다. 요샌 사실 풀 메이컵이 제일 예쁘다.ㅎㅎ
남편을 처음 만난 건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였다.
같은 회사라 해도 서로 다른 부서, 다른 층에서 근무했으므로 서로 존재를 알게 된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남편은 입사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신입 사원이었다. 아직 사회생활도 모르는 초짜가 여기가 학교라고 착각했는지 다짜고짜 나이부터 깠다.
난 속으로 '아니 회사는 직급이 우선이라고!!' 라고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나이도 내가 더 많다.
발칙한 그의 제안.
"나는 반말이 편해. 누나라고 불러도 돼?" 그렇게 나는 그의 누나가 되었다.
참 사회생활 못하는 남편이었다. 남자 선배였어봐. 너는 뼈도 못 추렸다. 남자 선배한테 가서 반말이 편하다며 직급보다 형이라고 불러보렴~ ㅉㅉㅉ
오늘도 남편은 위아래 없이 사회 선배님인 부인에게 친구처럼 대하고 있다. 저런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