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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02. 2024

14.그 구두 발 안 아파?

<명품 구두의 착화감에 대한 진실>


 나는 평소에 늘 구두를 신고 다닌다. 정확하게는 명품 구두.

 사람들의 대부분 일상을 차지하는 운동화를 나는 일상에서 신지 않는다.

 내게 운동화는 일상화가 아니라 특별한 활동을 위한 기능화기 때문에, 운동할 때나 워킹수업이 있을 때만 신는다. 전 국민 애장 신발 크록스는 아예 소장하고 있지 않다. 

 솔직히 이것들(운동화나 크록스)은 아름답지가 않다. 아름다움을 상실한 물건들이 내 일상의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그렇게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 내 발에는 구두가 신겨져 있다.


 구두를 신는 이유는 그 자체로 예쁘기도 하고 내가 평소에 입는 옷 스타일과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신발을 험하게 신는 편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브랜드 구두 구입에 적절히 투자해 왔다.

 예쁜 구두를 많이 소장하고 있지만 사실 발이 편하려고 신는 신발은 없다. 


 운문의 종류에 있는 순수시와 마찬가지로, 신발의 종류에서 마치 신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학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신발이다. 

그래서 솔직히 내가 가진 모든 명품 구두는 발이 불편하고 아프다.


 그래도 내 발은 평균 아시아인들과 다르게 발볼이 없어 얇고 긴 형태이기 때문에 서양인들 발 기준으로 제작된 명품 구두들을 신을 때 덜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구두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유럽 신발이 예쁘지만, 발등 폭 때문에 아예 못 신는다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내 발은 서양의 구두를 받아들여줘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만 생각한다. 

이 정도 아픔이야 아예 못 신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다.


 오래 신었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늘 뒤꿈치를 괴롭히는 신발, 발가락을 조여 벗었다 다시 신으려면 애써야 하는 신발, 자꾸 벗겨져 발가락을 웅크리며 걸어야 하는 신발, 발바닥 아치가 이상하게 아픈 신발, 복숭아뼈 부근을 계속 짓누르는 신발, 형언할 수 없이 발 전체를 아프게 해서 유리구두라 칭해지는 신발.

 사실 대체로 나의 신발은 유리구두에 가까운 신반들이다. 발이 참 아프다. 예뻐 보이기 참 어렵다.

 예쁜 것에는 고통을 참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 누가 물었다.

 "그 신발 발 안 아파요?"

 "전혀 안 편한 내 신발들 중에서 그나마 편한(10분 이상 걸을 수 있는) 신발."이라고 대답한다. 쉽게 말해 발이 너무 아프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난 구두를 신으며 편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없다.

적어도 피를 보지 않고 물집만 잡히지 않는다면 대체로 무난하게 참을만한 고통의 크기라 여기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모델클래스에서 워킹수업이 있어 굳이 워킹화를 새로 사기 보다 내가 가진 명품 구두를 신고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워킹수업에는 발끝을 끌고 지지하거나 바닥에 비벼 턴 하는 과정 등 신발을 상하게 할 일이 많다. 교수님이 다음 수업에는 저렴한 워킹용 힐을 구해오라고 해서 국내 구두브랜드 매장 세라를 찾았다.


 그리고 워킹하기 딱 좋은 6센치 검은색 기본 힐을 구입했다. 도메스틱 브랜드답게 발볼이 상당히 넓어 바닥에 깔창을 2장이나 깔고도 구두밴딩을 해야 할 정도로 둘레가 컸다. 

신발 폭이 넓어서 구두가 상당히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몇백만 원대의 명품 구두보다 저가 브랜드 착화감이 더 좋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은 생각보다 편했지만 역시 나에게 한국 브랜드 신발은 발볼이 너무 크다. 물론 구두 특성상 운동화만큼 편할 수는 없다.

 

 솔직히 명품 구두는 계단 올라가기조차 쉽지 않은 신발도 많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구두가 플랫폼 아래로 빠질까봐 늘 발가락으로 구두 앞코를 움켜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 국내브랜드 세라 구두는 신고 뛰거나 한발 서서 지탱하기, 빠르게 워킹하기나 턴하기에도 꽤 괜찮다. 블랙 기본 구두라서 부담 없이 연습용으로 막 신고 있다.


 하지만 세라 아울렛 매장에서 내가 느낀 미학적 느낌은 현타에 가까웠다.

 로저비비에 트럼펫 짝퉁에 가까운 신발, 마놀로블라닉 한기시 미투 신발, 레페토를 빼박 한 신발, 에르메스의 오아이스와 비슷한 슬리퍼, 페라가모st, 샤넬st, 수많은 명품 st 스타일로 만들어진 신발을 보다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인가??

 직업 특성상 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오리지널리티를 고려하는데, 이 브랜드를 선택하게 될 소비자로서의 브랜드 밸류를 찾기가 어려웠다.


 한 번은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했던 얘기다.

 인터넷 쇼핑을 하며 편해 보이는 슬리퍼를 하나 사서 신나게 신고 다녔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에르메스 오란 짝퉁 스타일인걸 알게 되어서 너무 부끄러워 다시는 못 신게 되었다고. 어쩐지 저렴한데 상당히 예뻐 보였다고 했다. (에르메스 오란이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약간 길들 때까지는 발등 살이 상당히 따가웠다.)

 명품을 잘 모르면 자기도 모르게 짝퉁 같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상하게 예뻐 보인다면 어쩌면 그것은 명품을 참고하여 만든 ST상품일 수도 있다. 

명품의 오리지널 미학과 그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아이덴티티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명품에는 매해 출시되는 캐리오버 제품이 있고 수십 년 전의 아카이브 자산의 디자인을 재해석하여 재출시하기도 한다.

 럭셔리 제품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 timeless power를 갖고 있다.


 명품 구두를 신은 발은 전혀 편하지가 않다. 그러나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역사와 오랜 가치가 있다. 명품에서 표현하는 그 심미적인 역사가 내 인생의 시간과 공존하고 있다.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선택하게 된다.

 수백 가지 기능보다 예쁜 이유 하나를 이길 수 없다.


 예전 광고 CM송 중에 "설명 필요 없고, 직접 맛을 봐요~"라는 소절이 있다.

 백가지 이성적인 설득보다 본능적인 선호를 이길 수는 없다. 인간에게 맛과 멋만큼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 있을까? 

 논리와 이성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에는.


 예쁜 것은 편하지 않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게 선택된 아름다움은 생각 없이 쉽게 가져진 것이 아니다.

비싸고 불편한 명품 구두를 신는 우매함으로 치부되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위해 이겨내는 고통의 크기를 인정할만한다. 게으른 비난러로써는 도저히 이런 불편을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물론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은 일부 세뇌(뇌이징) 및 문화적 학습의 결과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탐미주의자로 진화해 왔다. 시대마다 선호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바뀌어왔지만 인간은 늘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 왔다.


 고려말부터 사용된 갓끈의 구슬 장식이 있다. 별다른 기능도 없고 전통 복식 규정도 아니어서, 사치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여러 차례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구슬 갓 끈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남자들에게 대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가 보는 사극 드라마의 양반가 남자들은 모두 구슬을 단 갓을 쓰고 다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P사의 구두는 바닥은 은색으로 되어있는데 이 반짝이 장식이 몇 년째 내 발바닥에 묻어 나오고 있다.

 M사의 귀여운 슈즈에서도 검은색 물이 계속 나의 양말과 스타킹에 묻어난다. 

 사실 착용감이나 실용성으로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예쁘다.

 최근 D사의 펌프스를 하나 구입했다. 남편은 몇 년간 D사의 그 힐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구입을 말려왔지만 그 사이 가격도 너무 많이 오르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번 P데이를 맞이하여 남편과 백화점에 같이 가서 실제로 그 구두를 신은 모습을 보고 적극 구입을 찬성했다.

 명품 구두는 보는 것과 달리 신으면 더욱더 아름답다는 것이 결론이다. 한번 신어보면 그냥 벗을 수는 없다. 빠른 결제와 동시에 소장을 해야 한다. 

그렇게 내겐 사이즈 체크 혹은 컬러 확인용으로 그냥 신어만 볼까 해서 매장에 들어가서 그냥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구두 착화의 저주가 있다.


 갑자기 안데르센의 잔혹 동화 '빨간 구두'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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