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Jun 08. 2024

48.생존 요가

<퇴근 후 너덜거리는 직장인들을 위한 가볍고도 편안한 요가, 왜 없죠?>


직장인인 나에게 요가는 챌린지도 뭐도 아니고 그냥 생존을 위한 방안이었다.

요가로 대성하고 싶지도 않고 멋들어진 아사나들을 척척 해내고 싶지도 않았고 이것을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이 요가를 통해 오늘을 잘 마무리하고 내일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한 요가다. 당시 나는 퇴근 후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고 싶기도 했고, 기회가 된다면 이 생을 언제든 끝나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요가를 시작하며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퇴근 후 사실 요가원에 출석하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집에 바로 가서 쇼파에 쓰러지듯 누워 맥주 한 캔 따고 유튜브 쇼츠나 보고 싶을 테니까. 평일 저녁 어느 정도 지쳐있냐 하면 서사가 긴 넷플릭스를 보는 것조차 에너지가 딸려 집중할 수 없다.

그저 스낵 정보들만 소비하는 멍청이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뒤적일 뿐. 쇼츠나 릴스 시청 외에 아무것도 할 의지도 힘도 없다.


충전도 아니고 그저 생존한 상태로 인스타그램을 보며 끝나버리는 하루. 버리지는 인생.

너무나도 허무했다.

이런 시간을 몇 달, 몇 년 이어가 봤자 한 단계 성장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지? 아니 성장은 고사하고 오늘의 스트레스조차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조만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아니면 사표를 과감하게 내던질 수도 있는 상황.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언젠가 먼 미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오기나 할지??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벌써 5번째 직장에 정착한 상태다.

그러나 회사를 바꿔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모이는 곳에는 늘 비슷한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면 여기서 바꿀 건 회사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니, 나 자신의 생각과 생활 아니겠는가?

퇴근 후 무기력하게 쇼파에 누워있기만 해서는 귀신이 씌지 않는 이상, 내 사고와 가치관이 바뀌기는 불가능하다.


오늘 나를 괴롭힌 일들, 나를 오해했던 사건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해명 못한 억울함. 넷플릭스가 아니라 내 하루가 드라마 자체인걸. 무슨 다른 이들의 드라마를 볼 힘이 남았겠는가?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괴롭기만 한 매일을 바꾸고 싶었다. 내 생각이든 생활이든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조금 편안해질 수 있게.

요가의 시작은 그저 숨을 좀 쉬고 싶어서였다.


몇 해 전, 퇴근 후 요가원에 갔다.

원래 원장님은 평일 저녁 수련을 지도하지 않으시지만 오랜만에 저녁 수업에 오셨다.

퇴근 후 참석한 대부분의 구부정한 직장인들을 보며 원장님이 질문한다.

"파워요가, 힐링요가.. 뭐 하실래요?"


어깨 말리고, 거북목에 하루종일 일에 시달렸을 넥타이 부대 같은 직장인들이 외친다.

"힐링 요가요."

(원래 요가원의 회원들 실력 수준은 저녁이 제일 낮다. 반면 아침, 새벽 요가에는 오랜 시간 수련한 고수들이 많다. 저녁 요가는 사실 버리고 가는 패??? 몸을 아예 못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얘기해서 송구합니다 ㅋㅋ)


우리는 쉬울 줄 알고 힐링요가를 선택했지만, 진행하다 보니 전혀 낫 힐링이었다. 이름에 속았다.

아니 대체 이게 빈야사랑 다른 게 뭐냐고요. 시계만 보며 1시간이 너무 길다고 마음속으로 불평했다.

물론 수련을 마치고 사바사나에 들어갔을 때는 평화의 순간을 잠시 느꼈지만 1시간에 가까운 수련 시간이 힐링이기보다 너무 고통이었다.

중간에 끊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따라 너무 힘든 하루였는데, 요가원도 겨우 왔는데, ㅠㅠ


'원장님, 저는 오늘 요가원에도 겨우 걸어 들어온 사람입니다. 이렇게 무리한 수련을 감당하기엔 에너지가 없어요. 살려줘~'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실 평일 퇴근 후 요가원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래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독한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기왕 온 거 대박 챌린지 해내고 가자는 마음은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이렇게는, 이런 마음으로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좀 달래고 가고 싶었기에 이곳에 힘을 내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수련을 하시다니요. 야속합니다.

 '원장님~ 직장생활 한 번도 안 해보셨죠? 흐흐.'


그래서 만약, 만약, 만약에,

만약에 내가 요가원을 차린다면, 저녁 직장인들을 위한 요가는 무조건 정말로 힐링이 되는 요가수업을 하고 싶다. 수련의 난이도도 아주아주 쉽게 시퀀스를 구성할 것이다.

이름도 벌써 정했다.


[ 사표를 품고 이곳에 방문한 직장인들을 위한 '진짜' 힐링되는 가벼운 요가 클래스 ]

수업 이름 참 구차하고 길다.

그러나 내가 늘 저 마음으로 요가원을 갔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너무 치이다가 요가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누워서 눈물이 난 적도 있다. 너무나도 지친 나를 스스로 위로할 방법을 전혀 몰라서... 그런데 사바사나 음악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이유 없이 힐링되는 느낌에...


물론 나는 아직 요가원을 차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퇴근 후 수련을 마치고 요가매트에 누워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 기분을 너무 지친 직장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직 때가 아니지만, 나도 은퇴하고 직장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은퇴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별 생각이 없긴 하지만.


사실 퇴근 후 나와의 싸움에서 진 날이 많아서 요가원을 대체로 가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주말반 정규 회원이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평일 퇴근 후 요가원에 오는 사람들은 패잔병 상태다. 뭘 바래요. 그저 힐링하고 가면 그걸로 충분~

챌린지 시퀀스는 주말에 합시다!!!


게다가 주말에도 요가원에 가는 것이 힘들어 지금은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하고 있다.

요가 지도자과정을 이수한 이유 중에, 요가원 갈 시간도 아까워서 혼자 수련하려고 한 목적도 있다. 그리고 힘이 좀 남아돌 때 혼자 챌린지도 하고 여러 가지 멋들어진 수련을 하고 싶다는 야망?

요가하는 사람이 이렇게 야망 차서... 참...

혼자서 수련하니 실력 향상이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셀프 위로는 많이 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47.와~코어 없었으면 어쩔 뻔?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