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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로가 필요한 시대

<철학은 어렵고 인문학은 지루해. 세상 얘기 말고 내 얘기 좀 들어줘.>

by 전인미D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자기 사주를 봐달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도 봐주고 싶은데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 아주 간단한 부분 정도만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해 드린다.

이렇게 선무당이 감명을 남발해도 될 것은 아니나, 다들 재미로 생각하니까 그냥 말해달라고 한다. 재미라고 말해놓고 다들 상당히 진지하게 들으려고 한다.


명리학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모두 합리적인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초보 돌팔이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다들 우주 먼지로써 최선을 다해 고된 인생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진짜 나만을 위한 맞춤 조언!


더 이상 입에 발린 응원을 원치 않는다. 진정성 있는 조언과 현실적인 솔루션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 시대 젊은 사람들이 다시 명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명리는 과거를 알아 맞추는 쪽집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인간사의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사실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향해 있다. 명리에는 죽음 이후 내세도 없다. 과거를 쪽집개처럼 맞추길 원한다면 다른 계통의 상담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리는 결정론이 아니다. 과거에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가능성만을 볼수 있지 확정형으로 말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사주팔자에 묶여 아무것도 내 손으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말이 안된다.

인간에게는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있다. 물론 특정 기운이 왕성할때 해당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힘내라는 응원도, 영혼 없는 위로도 무의미하게 흩어질때가 있다. 이런 말들은 나를 향한 말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해줄 수 있고 화자만 뿌듯함을 느끼는 청자에게 아무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말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짜 나를 위한 한마디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에 대한 해답. 멋진 조언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모두를 위한 기성품 조언(Ready to Advice)이 아닌 나만을 위한 맞춤 조언(customizing Advice)이 필요하다.


오늘이야 말로 공허한 응원이 아닌, 인간을 이해하는 실용 철학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퉁치는 위로 말고, 나에게 최적화된 나만을 위한 기준과 구체적인 디렉션이 필요하다.

자연철학을 인간사에 대입한 실용적이고 철학적 고찰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전 인류를 향한 인문 철학 말고, 나만을 위한 개인화된 철학적 메시지 말이다.


예전 사주팔자는 어르신들의 전유물이었지만, 근래에는 젊은 사람들이 꽤 관심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유튜브 컨텐츠나 사주팔자에 관련한 인스타툰도 많다. 사주 수요에 대한 세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질로 모든 것이 만능해진 시대가 되고 보니, 다시 비물질적인 것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명품을 좋아하는 나도, 이제 쇼핑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나 해답을 구하기 힘들다. 명품을 구입할때 얻는 만족감으로는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있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쇼핑으로 잠시의 위로를 만끽하긴 하지만 이것이 나의 불안과 우울을 모두 불식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어차피 사는게 괴로움을 이겨내는 것이 기본값이라면, 정신을 온전히 붙잡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자신의 기준을 아직 찾지 못해서다.

놓을 건 놓고 할 건 제대로 투자해서 돌진해야 하는데, 자기 아이덴티티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 성공 공식을 쫓아서 정신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가시적인 물질과 성과가 집중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존재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정신, 대화, 눈빛, 에너지,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사람인데 죽어서 영안실에 누워있는 걸 보면 생전에 그를 감싸던 보이지 않는 아우라(정신/대화/눈빛/에너지/느낌)가 사라지면 낯설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곤 한다.


보이는 것의 가치만 찾던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 놓치고 잃어버린 느낌이다. 진짜 나를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있었을 텐데, 아무도 이 invisuable 한 영역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래서 혼란스럽게 헤매고, 시킨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괜찮은 직장을 다녀도 늘 뭔가 빠트린 불안함이 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완벽한 인생을 만들어 와도 스스로는 불완전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맞게 가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고 왜 나만 힘든지 고민하게 된다. (사실 다들 힘들다. 나만 벌 받고 있겠는가?)


인문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할 수도 있고, 고전 철학을 배워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 평균치의 얘기고, 통상적이고 사회적인 스토리 말고 “내 얘기 좀 해줘.”라는 개인적 서사에 초점을 둔 것이 명리학이다.


나도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이 공부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명리학 공부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잘 듣고 잘 해설할 수 있는 인문학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주 통변은 가만히 듣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상담가와 내담자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시간이다. 그러나 대체로 명식만 제시한채 조용히 듣고 있는 시간들이어서 늘 아쉬움이 남았다.


유동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다.

한 명 한 명 사람마다 처한 다양한 상황과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전혀 다른 감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30분이라는 상담 시간의 한계로 내담자의 내밀한 파악이 어렵다.

그래서 가장 좋은건 스스로가 공부하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공부가 필요하다.

물질 가치가 폭발할수록 우리는 정신과의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받아들임과 놓을 줄 아는 여유과 지혜가 필요하다.


"위로의 해답은 사실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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