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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Oct 16. 2024

상실의 터널을 지나며

환상의 빛 (幻の光, 1995)

    영화 속 인물들은 ‘상실’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다. 유미코는 죽으러 가는 할머니를 붙잡지 못했고, 남편인 이쿠오는 자살했다. 유미코는 자살한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죄책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새로운 시아버지 요시히로는 아내와 사별했으며, 새 남편 타미오 역시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영화 속에서 펼쳐진 각각의 상실은 때로는 원인이 실적되었고, 영화는 구태여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미코는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손에 닿는 것은 상처뿐이다.



    1995년의 일본: 사린가스와 지진


    1995년의 일본에서는 유미코처럼 원인이 없는 상실들이 넘쳐흘렀다. 1995년에 동시다발적인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과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몇 천명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들은 많은 질문들을 세상에 놓고 간다. 그날 지하철에 탔던 내 가족은 왜 출근길에 사린 가스를 마시고 죽어야 했을까. 사랑하는 당신께서는 왜 하루아침에 건물 잔해에 몸이 짓이겨져야 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들 투성이다.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 질문들을 떠안고 살아가야 했다.


    상실의 고통과 영화적 연출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 (1997)>에서 아시타카의 입을 빌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1995)>은 질문에 답을 내려주지 않으며, 위로 또한 하지 않는다. 그저 관조할 뿐이다. 외려 상실의 고통이 영구적일 것임을 암시한다. 마치 상실의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말이다. 그래도 유미코는 1995년의 일본인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문득 창 밖을 보며 상실을 더듬을 때가 있겠지만, “좋은 계절”이 오고 삶 가운데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환상의 빛>은 상실과 회복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그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며, 고통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바다의 풍경, 창 밖을 응시하는 유미코의 건조한 이미지는 상실이 남긴 고독과 침묵을 대변한다. 히로카즈는 영화를 매개로 하여 정답이 없는 질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조용하지만 강렬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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