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살(Мне двадцать лет, 1965)
<나는 스무살>은 '해빙기'라고 불리는, 1960년대 소련 사회의 변화 속에서 표류하는 청년들의 삶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당시 소련 사회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청춘들이 겪는 보편적 고민을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한국의 1970년대를 그린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우리는 <바보들의 행진>를 통해 1970년대 서울의 거리와 사람, 그리고 그 기저에 얽혀있는 감정들을 읽어낸다. <나는 스무살> 속 세르게이, 콜랴, 슬라바 역시 돈, 우정, 사랑, 인생에서부터 비롯된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있으며, 때때로 이런 감정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벗어나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련의 해빙기
영화 곳곳에서 소련의 해빙기를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세르게이는 흐루쇼프의 군비 축소 정책의 여파로 군에서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슬라바가 조종하는 크레인의 강철 공에 의해 건물이 철거되는 강렬한 이미지는 스탈린 체제의 붕괴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한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재즈 음악은 폐쇄주의의 종말과 사회개방의 도래를 암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나는 스무살>이 단순히 인물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소련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움직임
이 영화는 시각적 연출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예컨대, 인물들이 모스크바 거리를 걸을 때, 카메라는 인물들을 따라가다가 곧 거리의 풍경을 담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세르게이와 콜랴, 슬라바은 종종 프레임을 벗어나고, 그 자리는 카메라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모스크바 시민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서 대체된다. 마치 키노-프라우다(Кино-Правда) 스타일을 상기하게 하는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동시에, 세련된 연출 기법들도 눈에 띈다. 노면전차가 터널을 지나 순간 검게 물든 창문에 세르게이의 얼굴이 비치는 쇼트. 파티장에서 선반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세르게이와 아냐의 트래킹샷. 마지막의 롱테이크샷. 이러한 서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들은 인물의 내면과 사회의 변화를 미학적으로 포착하여 이미지에 담아낸다.
‘부재한 아버지’의 모티프
이 영화의 핵심 모티프 중 하나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세르게이의 성장을 견인한다. 세르게이가 꿈속에서 만난 전사한 아버지는 인생의 방향을 갈구하는 아들의 방황을 전적으로 아들에게 맡기고 전선으로 떠난다. 이는 마지막 롱테이크 장면과 결합되면서 피로 소련을 지켜낸 구세대와 앞으로의 소련을 이끌 신세대 간의 세대교체가 전면에 드러난다.
이러한 부재한 아버지의 모티프는 독소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전후 소련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전쟁은 많은 이들의 아버지 혹은 형제를 앗아갔으며, 이 상실감은 소련의 집단적 기억의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모티프는 현대 러시아 영화에서도 때때로 등장하며, 예컨대 알렉세이 발라바노프(Алeксeй Балабанoв) 감독의 작품(<카고 200>, <전쟁>, <브라트>)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체첸에서 ‘돌아오지 못한 남성’들(혹은 ‘돌아왔더라도 온전치 못한 남성’)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나는 스무살>은 소련의 해빙기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평범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이지만, 어느 특정한 시대에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세르게이, 콜랴, 슬라바의 고민은 그저 1960년대 소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하는 삶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스무살>은 시대를 초월한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