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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Feb 26. 2024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세상에는 다른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거부감만 쌓이는 사람이 있고, 

아무런 노력하지 않아도 오랜 만난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이 있다. 

몇 년에 걸쳐 노력했음에도 친해질 수 없던 사람. 오늘은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대학시절 나는 학교 동아리 회장이었다.

처음 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의욕에 넘다. 먼 훗날 우리 회원들이 대학 시절을 돌아봤을 때, '아 그 동아리에 들어가길 잘한거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일 동아리 회원과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여러 명이서 함께 말고, 1 대 1 개별적인 자리. 그렇게 따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의 시간을 우선 갖는다면, 회원 각자의 사정이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그런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게 되면 향후 동아리 운영 방안과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회원들과 개별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통적인 대화 주제는 이 동아리에 들어온 특별한 목적이 있는지, 앞으로 이 동아리에서 어떻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지 등의 동아리 운영에 필요한 의견이었고, 말이 잘 통하는 회원인 경우 대화의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연스럽게 그 이상의 이야기(개인적인 사정)까지 들을 수 있었다. 반면에 어떤 회원과의 시간은 함께 밥 먹고 있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게 느껴졌다.(적막의 여백을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행위로 채울 수 있으니깐) 왜냐하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에 함께 점심을 먹었던 어떤 회원은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순조로웠다. 하지만, 이 회원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떤 잘못이 있는 성격도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딱딱함 같은 거라고 할까. 씹히지 않는 이물질을 계속 씹어서 소화시키려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까. 그와 어떤 주제 꺼내도 섞이지 못했고,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회원들과의 면담을 모두 마치고 난 후, 동아리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도 그 회원과 나는 계속 부딪혔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늘 그의 마음엔 들지 않는 것 같았고,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 눈에 들어오진 못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다가 '혹시 저 친구가 회장이 되고 싶었던 걸까? 리더의 성질을 가진 그에게 나는 뭔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존재일까?'라는 짐작을 하게 됐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는 걸 훗날 알게 된다.


나는 한 학기를 마치고, 개인적인 이유로 회장직을 그만뒀다.

이제 나는 동아리의 다른 회원들과 같은 위치이자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새 동아리 회장을 위해서 동아리 활동이나 운영에 대한 어떠한 태클을 걸지 않았다.(회장직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동아리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리고 병무청의 부름을 받고 입대했다.


군대에서의 2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정신없는 훈련병 시절과 이등병 시절을 지나 어느덧 내 군생활은 절반을 넘어섰고 상병을 지나 병장이 되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입대 전의 일들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시간을 종종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세상과 격리된 군에서 나는 조금 더 넓고 깊게 내 지난날에 대해 되돌아봤다. 하지만, 다른 애들과는 달리 그와는 왜 끝까지 섞이지 못했는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답은 찾지 못했지만.. 사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나는 그때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일 텐데.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제대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실제로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하게 지내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제대했다.


군복무를 마친 다음 해에 나를 비롯한 남자 동기들 모두 복학했다.

제대한 사람들끼리의 동질감 덕분인지, 입대 전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도 모두 친해졌다.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듣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상하게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됐다.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항상 맨 뒷자리를 선호해서, 여느 때와 같이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그 친구가 버스에 탔다. 버스 안의 빈 자리는 내 옆자리 밖에 남은 게 없었기에 그 친구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도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나를 환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학교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누구와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가는 재주? 가 있던 시절이었음에도 그 친구와는 대화 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도 뭔가 불편해 보였고, 그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그의 얼굴은 억지 미소를 뗬다. 아마 나를 바라보는 그도 같은 기분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나도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깐..

그때의 10분은 다른 때의 한 시간보다 길었던 걸로 기억한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걸로 봐선.. 심지어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날의 뒷자리처럼 뭔가 민망하고 어색한 기분이 든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졸업 이후에도 동아리 모임을 이어나갔는데, 그를 만날 때마다 항상 같은 분위기였다.

그가 내 근처에 있을 때마다 '아 제발 다른 애들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 뒤따라 왔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또 다른 '그런 친구'같은 사람을 여러 번 마주했다.

특별히 성격적으로 모나거나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없음에도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

마치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시공간을 준거 같은 느낌이 들만큼, 그들과 함께할 때는 늘 다른 공간과 다른 공기에 둘러 쌓여있는 듯 했다.

만약 당신이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다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될 거 같다. 10분이 한 시간 같고, 한 시간이 하루 같은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으니깐. 하루 24시간을 그런 친구와 함께 보낸다면 하루를 24일을 산거 같은 기분이리라.




그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걸까.

어쩌면 사람들마다 어떤 고유의 주파수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FM 전용 라디오가 AM 주파수를 방송하지 못하고, AM 전용 라디오가 FM 주파수를 방송하지 못하는 것처럼.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ios 운영체제의 아이폰에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하지 못하고, 안드로이드 폰에 아이폰 전용 앱을 설치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태어나면서 각자의 주파수나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나오는 걸까.

그래서 어떤 사람과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과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어도 아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처럼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예전에는 맞지 않는 사람과도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무던한 노력을 했다.

20대 땐 내 목표 중에 하나가 '남녀노소, 직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과 대화가 되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색한 사람이 있다면 멀리하려 하기보단, 오히려 그 사람의 관심사나 성격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관련 관심사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는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대화할 거리를 찾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 할 때 불편한 건 그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졌거나, 운영체제가 다를 뿐이다.라고 가볍게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그냥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 그냥 그런 사람.

세상은 넓고 인종과 언어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주파수를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사람과 소통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언어라도 놓치지 않도록 내 마음속 안테나 방향을 오직 그들을 위해 조절하는 데 더 마음을 쏟는 것에 더 집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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