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신고가를 찍고 신저가에 닿았다.

주식에선 그 종목의 최고 가격을 갱신한 걸 신고가라고 한다. 

그 종목에 더 큰 호재가 발생하면 차트는 신고가를 뚫고 쭉쭉 올라가지만, 많은 경우는 그날의 영광을 박제하길 원하는 듯 이후로는 쭉쭉 하향 곡선을 그린다. 

그런 곡선은 주식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종영된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인생 그래프 특집을 방영했었다. 멤버들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과 그 이후의 삶을 그래프로 그렸고, 예능이 가미된 그날의 특집은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었다. 이렇듯 서사가 있는 모든 스토리는 같은 형식을 취한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가장 큰 이벤트인 명절도 같다.

명절이 최고가를 찍는 날은 보통 그 가족의 구성원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아들, 딸의 시댁과 친정이 되고, 독립한 가족 구성원이 각자 애들이 생겼을 때 명절은 가장 빛나고 북적거린다. 

나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명절의 할아버지 댁은 엄마, 아빠, 큰 이모, 작은 이모, 삼촌, 숙모, 그리고 각 가정의 조카들로 가득했다. 다 같이 모이면, 할아버지께 새배드릴 때 1부와 2부로 나눠야 할 만큼 방이 작게 느껴지고, 식사도 큰 방과 작은 방에 나눠서 각각 점심을 먹었었다. 

할아버지댁은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의 이야기와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의 장난과 수다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밖으로 넘쳐났다. 

할아버지는 너무 많은 손주들의 나이를 매번 헷갈려하셨고, 그 많던 설날 음식들은 저녁이 되면 동이 나기도 했다. 

그때였다. 

명절이 신고가를 찍었던 날은. 

시간은 흐르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성인이 되었고 상당수는 직업적인 이유로 다른 지방으로 흩어졌다. 

차례를 지내는 공간은 바뀌고, 성인이 된 손주들은 결혼했고, 결혼을 하니 각자의 시댁으로, 처가댁으로 가느라 바쁘다. 각자 자신의 가정이 생기고 할아버지라는 큰 어른이 없는 명절은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그러니 당연히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예전에는 친척들께 인사드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던 명절연휴는 점점 여유로워졌다. 

덕분에 나는 연휴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이젠 매년 반복되던 '사귀는 사람은 있고? 결혼은 언제 해? 하는 일은 잘 되고?' 청문회 레퍼토리는 사라졌다.

앞서 언급한 주식 차트로 보면 지금은 명절의 신저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명절이라니. 

이거야 말로 진정한 휴일이 아닌가. 

사람들과의 시간보다 혼자 사색하고 글 쓰는 시간이 더 좋은 나로서는 지금의 명절이 너무 좋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신고가 이후로 하향 곡선이 예고되고, 신저가 이후로는 반등 곡선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 반등 곡선은 아마도 내가 결혼하면 시작될 것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선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내 개인적인 입장에선 여유로운 지금의 시간이 조금은 더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명절의 풍경을 위해 결혼여부를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점점 늘어나는 부모님의 주름을 인식할 때는 마음이 급해지고, 급해진 마음은 혼자만의 시간을 자꾸만 흔들어 놓는다. 

과연 내년 명절엔 신저가를 성공적으로 탈출한 명절의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사람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기에, 지금의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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