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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Aug 08. 2021

최근 기자에게 받은 혐오 관련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제가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때문에 간혹 기자들이 '혐오' 관련해서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사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책에도 썼지만, 지금의 혐오 문화를 만든 주범은 정치인과 언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답변을 언론이 제대로 실어줄 리 없지요. 그래서 인터뷰 안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한 기자와 연락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서면 인터뷰'로 하겠다 하고 질문지를 받았습니다. 아래는 그 질문입니다.  


-저서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의 출판사 서평은 현 시대를 ‘혐오 과잉 시대’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평론가님 역시 과거보다 혐오의 정도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심해졌다고 진단하시는지요.

-한국 사회에서 혐오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발생한 혐오를 더욱 확산하는 매개체로 지목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특히 청년과 기성세대 간의 혐오, 남녀 간의 혐오를 타개하고 해소할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혐오 해결책으로는 차별금지법, 교육, 갈등하는 집단들 간의 소통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좋은 해결책들이 될지요.

-갈등하는 집단들 간의 소통이나 사회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이뤄져야 할 과제, 혹은 정부가 해야 할 일, 사회의 노력 등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선 후보들이 혐오 해결책을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지 궁금합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기자님 질문 많이 주셨는데요. 한꺼번에 답변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만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정치인과 언론에 있다고 봅니다. 둘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언론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정치인의 말을 옮기느냐, 얼마나 크게 옮기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혐오 발언 일삼는 ‘프로보커터들’을 키워준 것도 언론이고요. 

혐오발언이라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인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인용만 하면 안 되고, 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냥 ‘베껴쓰기’ 하고 맙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니 일반 시민이나 네티즌들도 따라서 혐오 표현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언론은 자신들의 보도 행태로 생긴 네티즌들의 혐오 표현도 다시 기사거리로 인용합니다.) 혐오 표현이 만연하니,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논의가 될 리 없습니다.

물론 언론도 할 말은 있습니다. 뉴스가 대부분 포털을 통해서 소비되는 까닭에 클릭수를 유인해야 하는데, 그 가장 쉬운 방법이 혐오 발언들을 따옴표 쳐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배임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에는 의제설정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제설정기능에는 뉴스가 온라인을 통해 소비되는 것, 그로 인해 파생하는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까지 포함됩니다. 언론이 혐오를 창궐하게 만든 것은 단지 뉴스 소비 방식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언론이 쉽게 그에 편승했기 때문입니다.     


제도적 과제에 대해서는 ‘차별금지법’이라도 통과되면 좀 상황이 나아지겠지요.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이 아니라 변화의 토대를 놓는 것일 뿐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고 해서 장애인차별이 없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요.     


대선후보들에 대해서는 별 기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인기 있는 대선 후보들 자체가 프로보커터들이거든요. 대중의 사회적 불만과 분노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으로 치환하는 데 열심인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상으로 답변 마칩니다. 제 답변이 쓰기가 불편하시면 안 쓰셔도 됩니다. 다만 쓰실 때에는 논조 바꾸지 말고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답변을 했는데, 아직 인용 보도되었다는 소식은 없군요. 역시 불편해서 쓰지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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