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맛공방 Aug 04. 2022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국정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으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는 이 시기에 과연 대한민국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전 세계적인 정치경제 체제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신채호는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였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전세계 민중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한 체제가 저무는 시기에 인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은 이런 면에서 탁월한 교과서이다. 저자는 1970대 신자유주의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1848년의 유럽혁명부터  설명한다. 당시 자본주의에 맞서 대안을 제시한 세력은 ‘좌파’였음을 밝히고 그들의 역사적 도전과 한계를 검토하는 틀로서 ‘생활세계’ ‘국민국가’ 그리고 ‘지구질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국민국가’란 봉건사회로부터 민중들이 선거권 등을 쟁취하며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기초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을 말한다. ‘생활세계’란 국민국가의 제도권 정치세력과는 달리 민중들이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등과 같은 대중운동을 통하여 생활현장에서 자치적으로 네트워크를 결성하는 벌이는 민중자치 운동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질서”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중에 어떤 체제가 전 지구적으로 국가들 사이에 우세한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뜻한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그는 좌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세계정치경제 체제의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그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좌파가 실패했던 ‘과정’들을 유폐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를 다시 불러내 어떤 전략적 약점이 있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책의 목표임을 밝힌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을 살핀다. 전전(戰前) 좌파는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얻어 집권에 성공했으나 그들이 가졌던 구조적 모순은 좌파를 위기에 빠뜨렸다. 좌파의 구조적 모순이란 선거제도를 통해 정치권력에 진입한 좌파들이 경제 현실이 악화되었을 때 이를 해결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여 자본주의자들이 쓰던 경제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잃었으며 자본주의에 수렴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전후(戰後)에 국민국가의 대중-민주주의와 국민-대중경제가 조합되면서 현대적 국민국가경제의 틀이 형성되었다. 국민-대중경제체제는 케인스주의를 발판으로 호황을 누리며 좌파는 자본주의와 동침하게 되었고 이어서 ‘신좌파’가 등장하게 된다. 좌파는 더 이상 사회주의를 고집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적 질서에 안주하게 된 것이었다.  68년 베트남 전쟁을 기폭제로 전세계는 다시 혁명의 깃발을 높이 세우게 된다. 이런 배경하에 ‘구조개혁 학파’가 등장하게 된다. 구조개혁 학파는 국민국가의 대중민주주의 틀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의 구조자체에 개혁을 추구하게 된다. 이 구조 개혁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라고 분명히 규정되었다.      


탈자본주의 구조개혁론자인 잉그라오 좌파(1960년대 이탈리아 공산당의 대표적 구조개혁론자)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직접 산업투자 활동을 통제해야 하며 사회복지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노동 계급이 소비 영역을 통제해야하며  그러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의 가장 많은 지면에 걸쳐 저자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좌파들의 투쟁을 추적한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당시 좌파들의 성취와 실패가 무엇이었는지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70~73년 칠레 인민연합정부의 분투와 1970년대 영국 노동당 안팎에서 계속된 모색과 논쟁, 1981~1983년의 프랑스 좌파 연합정부의 시도와 스웨덴 등지의 비슷한 흐름이 그것이다. 이들 중 칠레 아옌데 정부의 구조개혁의 시도가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 군부쿠데타로 실패한다. 최후까지 대통령궁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저항한 아옌데의 죽음은 자못 역사의 드라마를 보는 듯 장엄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그의 최후를 전해들은 영국 노신사가 지었다는 ‘살바도르 아옌데 찬가’라는 시까지 소개한다. 인문서에는 어색할 수 있는 부분이나 세계개혁이라는 명제에 저자가 가진 열정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읽다보면 각국의 신자유주의자들과 좌파들의 정책대결이 낯설지 않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여야 정당들이 내놓은 정책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74년 영국 보수당 히스총리는 노동조합을 인플레이션의 원흉으로 지목했는데 물가가 계속 오르는 원인이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투쟁에 있다고 했다. 노동조합 때문에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생산비를 낮출 수 없다고도 했다. 결론은 새로운 노동 입법으로 노동조합의 방만한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소득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며칠전에 뉴스를 통해 전해들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책 후반에 저자는 1980년대 이후의 영국 후일담을 소개한다. 영국 좌파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가장 공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중에 두드러진 것이 당시 보수당 중앙정부와 다르게 추진된 지방정부의 사회주의 시도의 실패이다. 보수당 대처 정부는 지방정부의 사회주의 정책들이 더 이상 발전되거나 전파되지 않도록 지방예산을 삭감하는 등 탄압했다. 지방 정부의 시도는 실패는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제도권 좌파 정당이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여성, 소수민족, 성 소수자 등의 대중조직들의 주체로 부상하였다. 이는 좌파들로 하여금 국가 기구를 변형하고 정치의 형식 자체를 바꿀 대중의 힘은 생활세계에 있으며 국민 국가의 정치를 재탈환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활 세계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고 박원순 시장이 실행하였던 대중 중심의 여러 가지 정책들이 상기되는 바가 크다. 또한 영국좌파들이 국민 국가의 정치에만 관심을 집중했는데 한 국가 수준의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구 질서 차원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좌파에게는 초국적 정치의 안목과 비전, 정치적 의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결론부분에서는 앞에서 다룬 사례들을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을 재정리하며  좌파정치의 전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로 전후 사회민주주의의 복원이며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이라 주장한다. 그 핵심과제로 지난 세기 좌파 ‘정치’가 등장한 것처럼, 이제는 생활세계-국민국가-지구질서를 가로지르는 ‘정치’형태를 새롭게 발명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들 세 층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사항이 대중운동을 새롭게 개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라 결론짓는다.      


책의 제목은 딱딱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읽힌다. 반세기 가까운 동안 자본주의자들과 투쟁해온 좌파들의 분투는 소설책을 읽는 듯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저자의 탐구방향이 좌파의 타협과 실패의 역사이나 그것이 아프거나 좌절감만을 떠오르게 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실패의 역사를 성찰하며 위에서 말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는 생활세계의 정치 즉, 민중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질서’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국가 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초로 새로운 좌파 인터내셔널을 구축해야 체제를 변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읽힌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폭넓고 깊은 공부에 감탄이 나온다. 다만 저자가 좌파 정책의 이해를 위해 제시한 세 가지 좌파정책의 개념(생활세계, 국민국가, 지구질서)을 책의 첫머리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마지막 부분에 들어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계 여러 국가 좌파들의 분투 과정은 ‘남의 얘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읽는 것 같다. 체제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다. 그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며 일부지역에서 시작되어 점차 그 세력을 넓혀간다.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민중 자치적인 조직운동을 통하여 세계시민들과 연대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이러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나가는데 대한민국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글쓴이. 허풍선이

허풍 떨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 이 글은 글맛공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존을 위한 변화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