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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n 28. 2023

매미 이야기

  요란스러움이 반가웠다. 담장 너머 가득 나무였던 뒷집이 옛집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자 나무와 함께 사라진 매미다. 그런데 어이하여, 어디에서 날아들었는지 모를 매미 한 마리가 아침부터 방충망을 부여잡고 목 놓아 울어대고 있었다. 참, 별것이 다 반가운 날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뒷집 매미들은 우리 집 방충망으로 모여들어 떼창을 하였다. 뒤늦게서야 그 울음의 속뜻을 알게 되었다. 예의염치도 없는 것들이 남의 집 창문에서 낮거리를 하려  작업질을 하였던 것이다.

  사사건건, 시끄러움이 신경을 파고들었다. 지근지근 머리가 쑤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방충망을 후려치는가 하면, “부끄러움도 모르고 저것들이 대낮부터 저리 용을 쓴다.” 욕지거리를 달고 살게 되었다. 그러던 것들이 새 건물이 들어서고부터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유독, 게으름을 피우던 유충이었을지 몰랐다. 한 뱃속에서 난 형제자매들이 우화하고 성충이 되어 생을 마감하도록 딴짓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뒤늦게 허겁지겁 땅속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아니면, 좀처럼 짝을 찾지 못해 날아든 매미일 수도 있겠다. 땅속 깊은 곳에 집을 짓고 굼벵이로 살아가는 동안 지상의 꽃들은, 풀들은 시멘트 숲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어리둥절한, 삶의 터전을 그리 잃은 매미는 결국 근근이 살아남은 동족의 흔적을 찾아 날갯짓을 해왔을 터였다.     


  시대가 변했어도 다섯 가지의 덕목을 갖추었으니 조금만 건들거리면 꿰차야 할 암컷들이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이라 자만하였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을 목이 터져라 불러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 암컷이었다. 탓에,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애당초 그의 사주팔자에 연분이란, ‘그믐밤에 달 보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었음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팔자 탓이려니 해야 했을까? 용하다는 무당집을 기웃거리며 굿거리라도 해 벗어날 수 있는 팔자였다면, 기꺼이 그러했을 것이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매미의 울음소리에 연민이 스며들었다. 그러니 체면치레를 내세울 만큼 여유가 없는 거였다.     


  어느 해 보다 비가 잦은 여름이었다. 쏟아지는 비에 온종일 울어대던 매미가 모습을 감추었다. 혹여 비를 맞아 젖은 날개가 어디 상한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던 길에 어느 술집이고 들러 파전에 막걸리라도 걸쳐 분명, 나자빠져 뒹굴고 있을 터였다.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암컷 인양 숨죽여, 던지는 추파를 기다리고 있는 낌새를 모를 리 없었다. 틈만 나면 보태던 수작질에 나도 모르게 흘린 웃음이 방충망을 칸칸이 채우고도 넘쳐나고 있지 않았던가?     


  매미의 울음소리가 끊어지자 집은 다시 묘지처럼 조용해졌다. 늙음의 평화가 죽은 자의 평화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주 잠시 잠깐, 매미의 울음소리에 홀렸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숨겨둔 발톱처럼 잠재웠던 화냥기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 것일지도 몰랐다. 이내 수그러들고 말, 그뿐이었다며 위안 삼아 보겠지만 내리는 비에 희뿌연 기억들이 때론 선명하게 또는 희미하게 들락날락 오갔다.     


  햇빛이 들지 않는, 땅속 깊이 파고들던 시절이 있었다. 단 한 가지도 넉넉함이 없던 결핍의 시절이다. 그런 시절에 사랑이 찾아왔다. 우린 굼벵이처럼 매미가 될 속셈을 감추고 나무 기둥 아래 둥지를 틀었다. 귀머거리가 되어도 좋았고 벙어리로 살아도 좋은, 지나고 보니 슬픔도 잠들던 그런 시절이었다.


  기억 끝에, 어쩌면 저리 우는 매미도 그러한 세월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인고의 세월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궁핍한 생활을 참지 못한 그녀는 도시로 떠났고, 그녀를 잊지 못한 매미는 세상 밖으로 그녀를 찾아 나서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절규에 가까운 그의 울음은, 그런 마음을 담아 애타게 불러 되는 그녀의 이름에 가까웠을 것이다.     


  비가 그치자 쭈뼛거리며 다시 나타난 매미가 서둘러 울기 시작한다. 한풀 꺾인 더위가 머지않아 곧, 가을이 올 것이라 전하는 예보를 그도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일까? 날씨가 덥지 않아 좋은 나와 달리 매미는 감기라도 걸린 듯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내 울음이 멀어진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헤어짐을 받아들이기엔 언제나 시간이 필요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퍼뜩, 떠나는 길에 배웅이라도 해야겠단 마음으로 방충망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눈뜬장님이 되어 시선을 피하는 매미다. 어찌 보면 꿈을 꾸는 듯도 보였다. 떠난 그녀를 찾아 다시 손이라도 맞잡고 고향으로 돌아서는지, 그가 빙그레 웃는 듯도 하였다.     


  본의 아니게 상여꾼이 되어야 했다. 방충망을 상복 삼아 새끼줄로 동여매고 곡소리를 보탠다. 샌님만큼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던 매미다. 땅속 깊은 곳에서 굼벵이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 것을 그는 알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목청껏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명품을 두르고 수입차를 몰고 나서면, 강남의 일류 성형외과에서 갓 출고된 바비인형 같은 그녀들이 앞다퉈 줄을 선다는 것을, 그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떠난 그녀도 사랑 하나면 그만인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가정환경이니, 학벌이니, 경제적 능력이 다 무슨 소용이냐 반문하며 사랑이 모든 것이었고, 모든 것이 사랑이었을 시절을 그녀도 살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집세가 오르고, 동창회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몇십억 아파트에 거주하며 황금나무 수액을 빨아먹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도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 앞에 거칠 것 없던 삶이,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꾸만 작아지던 그녀는 끝내, 허공 속으로 먼지처럼 떠돌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만하면 호상이었다. 세상이야 어찌 변해가든 제멋대로 살다 간 세상이니 아쉬움은 남겨두지 않았을 매미다. 그런 매미를 미련 없이 떠나보낼 듯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이 조문객처럼 불어들었다.

  부고를 받지 못한 그녀도 어찌해서든 한 번쯤 다녀갔으면 하는 욕심이 따라 들었다. 살아보니 겉치레가 무슨 소용 이냐며, 너무 얕잡아 본 세상이 무서웠다고, 벚나무 아래서의 평범한 날들이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을 마지막 술잔에 눈물처럼 쏟아 붙기를 바라는, 가당치 않은 나의 욕심이 더해졌을 것이다.


  수차례 탈피를 통해 재생을 반복하는 매미다. 어쩌면   이번 생 저 매미는, 떠난 그녀보다 삶이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내게 경각심을 주려 찾아든 인연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단 한 번도 매미처럼 간절하게 울어 본 적 없는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질없는 욕심으로 매 순간 나를 죽이며 살아왔다. 그렇게 무뎌진 삶에 매미는 어느 날 무심코 찾아들었던 것이다.


  고해소에라도 들어선 듯 눈물방울이 고백처럼 쏟아진다. 늘 뒤따라서는 게 후회라지만, 쉼 없는 고백 끝에 언젠가 나도 저 매미처럼 허물을 벗는 그런 날이 찾아올 수 있을지? 잠시 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오래전,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덤덤해지고 마는 습성에 나를 던져버린 지 오래 전이 아니었던가?


 이젠 정말, 혼자 살아남은 도시의 매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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