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시게, 나의 여름!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나 사람을 달구던 열기도 물러서고 가을비가 내리네요. 어수선하던 마음도 덩달아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참말로 이젠 정말, 가을로 들어섰나 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아직, 다 보내지 못한 여름이 섭섭함으로 물웅덩이를 괴이고 마네요
불현듯, 이 여름이 나의 마지막 여름이면 어쩌나 하는, 뜬금없는 불안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때가 되면 또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계절이겠지요. 어쩌면 돌아오지 못하는 건, 변해버린 사람 마음뿐 아닐까 싶습니다.
잘 가, 여름아!
안녕, 또 보자~~~
한 번쯤, 떠나는 여름에게 아이처럼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입맛을 씁쓸하게 합니다. 모든 이별이 그렇겠지만 그중, 물 흐르듯 흐르는 세월 속에서 마주해야 하는 이런 이별만큼 마음 씁쓸한 이별이 또 있을까 싶네요.
차 한잔을 두고 가만히 멈춰, 이젠 기억 속에 주저앉을 나의 여름과 소곤소곤 이야기라도 주고받아야 할까 봅니다.
비가 많았던 여름입니다. 덕분에 초록은 더욱 생글생글거렸고 꽃들은 제 색깔을 더 맑게 드러냈지요. 그리고 저는,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배설 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한 껏 늘어졌던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며 살아내고 있었던지? 잘 먹고, 잘 자고, 배설 잘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행위였는지, 새삼스레 알게 된 여름이 되기도 했네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대 혹여 힘들다면, 아무 걱정 마시라고요. 잘 먹고, 잘 자고, 배설 잘하고 그래서 숨 쉬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그게 다라고요. 그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으니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라고요.
어느새, 무심코 아침마다 지나는 거리에 맥문동이 활짝 고개를 쳐들었네요. 참 기특도 하지요. 어찌 저리 알고 제 때 피었을까요? 가끔 뜻하지 않게 방향키를 놓쳐 헤매는 우리와 달리 올곧게 순환되는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나는 것에도 찾아오는 것에도, 속 뒤끓는 저와 달리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그리 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 가을은 그리 생각해 보는 가을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