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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Nov 02. 2024

달력

남은 하루를 찢어 냅니다.

열두 달 중 열 달을 떠나보낸 달력이

벽면에서 휘청거리네요.     

그 많은 날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잠시 생각을 되짚나 봅니다.


봄을 기다리는 맘으로 꽁꽁 얼었던 일월이

새싹으로

꽃으로 계절을 입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어 툭 툭 떨어지네요.


어디 떨어지는 게 열매뿐일까요?

가슴도 툭 툭 떨어집니다.

그게 밤송이처럼 야물게 익어 뚝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벌레가 먹었거나 너무 익어 뭉그러져 터져버리고 마는

감빛 물든 가슴이네요.


시간 앞에 흔들림을 멈추는 달력입니다.

아직 병들지 않고 온전히 익어가는 열매도 남아,

그것이라도 제대로 수확을 해야겠다,

마음을 다잡았나 봅니다.


사실, 이맘때쯤이면 시간이라는 거

길고 짧음으로 판단한다는 게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분명, 목표란 고삐를 잡고 힘껏 달려온 듯한데

잡았던 고삐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찌하든 내일보단 오늘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마음을 다시 다잡아 볼 수 있다는 것 이겠지요.


암튼 우리에겐 아직, 두 장의 달력이 남아 있네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려낼 수 있을지?

무엇을 상상하든,

잠깐일 수도

또는 무수한 날이기도 한 시간  아니겠습니까?

분명한 건 짙음을 걷어내듯이 마음도 비워가야 할

시간도 포함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느릿느릿 고양이와 뒹굴다

가을의 한 낮을 만나야겠다 싶어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언제나 돌아서던 시장 초입을 지나

가보지 않은 골목 끝까지 탐험에 나섭니다.

떡볶이집에 치킨집, 김밥집과 작은 카페, 마을도서관에 반찬가게도 있네요.

아하! 인생술집도 있군요.


뭔가 허전한 허기에 김밥을 채우고도 모자라 핫도그를 집어 들고 걷기를 계속합니다. 그러고 보니 배고픔이 아닌, 사람에 대한 허기였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네요.


어찌어찌 걷다 보니 길이 천변으로 이어집니다. 여름밤 내내 산책을 즐기던 길입니다. 혹여, 들고양이에게 잡혀먹지 않았을까 걱정되던 오리새끼들이 장성하여 물 위를 노닐고 있네요. 그 반가움이란,


아, 나도  이렇게 누군가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냥 감사해지네요.


어쩌면 삶은,

오선지처럼 길 위로 펼쳐지는 가을 햇살에 그려가는

음표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지금 무슨 음악을 듣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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