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갖게 되었다. 누군가 버리려던 피아노다.
일주일에 한 번 이메일로 배달되는 대학 직원 신문에 Free Piano라는 문구가 실려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신문에 Free Piano라고 나온 거 봤어?
아니, 못 봤는데 한 번 볼게.
읽지도 않고 이미 지워버린 이메일을 찾아 맨 뒤쪽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말 그대로 Free Piano라고 쓰여있다. 그게 다다. 클릭을 하니 대학 홈페이지가 열린다.
최근 조율한 상태 좋은 피아노란다. 그런 피아노가 공짜라고? 뭔가 말이 안 된다 싶지만 남편이 연락해 볼까,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곧 답장이 왔다. 아직 가져갈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사진 세 장을 보내왔다. 딱 봐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조율은 꾸준히 했을지 몰라도 여기저기 찍힌 자국이 많았다.
남편은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성화다. 이래서 뭘 시키면 안 된다. 결정장애가 심한 나에게 빨리 결정하라고 들들 볶아댄다. 그 말이 듣기 싫어 그냥 가져오라고 했다.
이른 생일 선물이라길래(내 생일은 12월이다) 그럼 다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뒀다.
피아노 운반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알아서 하게 두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고물 피아노를 가져오는 비용, 수십 만 원에 속이 많이 탈 뻔했다.
그나마 좀 싼 운반 업자를 찾긴 했는데 차고로 피아노를 옮기다 피아노를 들지 않고 끄는 바람에 차고에 깔린 카펫에 구멍이 뽕뽕뽕 세 개가 뚫려서 짜증이 울컥. 다행히 나중에 손으로 잡아당겨서 구멍은 간신히 메웠다.
아무튼 피아노를 배달받긴 했는데 피아노 의자도 악보대도 없다. 우선 먼지를 닦아내고 건반을 눌러봤다. 건반의 무게는 조금씩 다르지만 소리는 그럭저럭 괜찮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준 삼익 피아노 이후로 첫 피아노다. 엄마가 백만 원 넘게 주고 사준 그 피아노는 내가 뉴질랜드로 오기 전 자리만 차지한다며 헐 값에 팔아버렸다. 너무 허름한 이 피아노를 보니 반짝반짝했지만 버려진 내 피아노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제는 악보 보는 방법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악보도 없어 아이패드로 쉬운 곡 하나를 찾아 쳐봤는데 무척 어렵다. 더듬더듬 왼손가락, 오른손가락을 움직여본다.
레슨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체르니 100 악보라도 구해서 연습을 해봐야 할까, 고민에 빠진다.
여기저기 찍힌 곳도 사포질을 해서 촌스러운 체리색 피아노를 매트 블랙으로 칠해도 좋겠다며 유튜브를 찾아본다.
과연 그만큼 연습을 할지, 페인트 칠을 할지, 진짜 팔 걷어붙이려 할 때까지는 한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다.
요즘 감정이 미친년 널 뛰듯이 널을 뛰는데 이 참에 피아노 테라피라도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