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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Jan 22. 2022

뚝딱뚝딱 오공사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재밌으니까 열심히 해보자

전에 이 공간을 쓰던 이들이 나간 후 이곳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참담했다.

가구들과 빔프로젝터로 가려놓았던 벽은 그야말로 가벽이라 옆집 아저씨가 하루종일 틀어놓는 티비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덕지덕지 발라놓은 페인트칠이 자꾸만 벗겨졌다.

그리고 하늘의 장난처럼 계약을 하고 월세를 납입하자마자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2주 넘게 월세를 땅에 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주인 아저씨께서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내 개인 사정이라고 하셨지만 괜히 그것도 서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설레고 두근거렸다. 앞으로 이 곳에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으면서, 이 빈 공간을 꾸미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일단 일은 저질렀지만 겁이 많아서 이것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했다. 절대로 욕심부리지 말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이곳을 꾸미자고.

다행히도 철수와 나는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 미드센추리 모던은 하고 싶지 않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바닥을 가릴 카펫을 고를 때, 미드센추리 모던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파란색 카펫 대신 어딘가 조금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귀여운 주황색을 골랐다.


카펫을 주문하고, 바닥을 깔기 전에는 가구를 구해야 했다. 돈을 많이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당근마켓을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대부분이 우리가 직접 가서 가지고 와야 했고, 특히나 이때는 몹시 무더운 7월이었기 때문에 에어컨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성수기 중 극성수기였기 때문에 에어컨의 가격은 중고임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게 비쌌고, 특히 설치 기사님을 부르는 것이 일이었다. 가뜩이나 2주를 잡아먹는 바람에 월세를 날리게 생겼는데 에어컨 설치라도 빨리 해서 얼른 이 공간을 쓰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설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던 와중, 철수의 애인이 마포 재활용 센터를 가보라고 했다.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해제 통보를 받자마자 합정역에 위치한 마포 재활용센터에 갔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상태의 에어콘들이 있었고, 설치도 당장 가능하다고 했다. 더군다나, 당근마켓에서 그렇게 찾았던 것과 비슷한 쉐입의 책상 두개를 단돈 5만원에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배달까지 꽁짜!)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주 조악하지만 무료 인테리어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 요리조리 구성과 배치를 했다. 아마 이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당시 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던 때라, 촬영 후 편집 시에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는 6년을 쓴 맥북이 너무 느리고 아파서 아이맥을 살 작정이었다. 결국 아이맥은 집에 두고 집에서 작업을 했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배치를 하면서 이곳이 낳을 결과물들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바닥을 까는 데는 그냥 깔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부터 규격을 열심히 쟀지만 큰 공간에 가벽을 세워 공간을 나눈 곳이었기 때문에 직사각형으로 딱 떨어지지 않았다. 사이즈를 재는 것이 무의미했고, 우리는 카펫을 깔면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카펫을 조각 조각 내어야 했다. 나는 손재주가 특히나 없는 편인데, 다행히도 철수의 야물딱진 손이 있어 칠교놀이를 하듯이 바닥을 깔끔하고 귀엽게 메웠다.

바닥 작업을 끝내고 허리를 펴니, 노을이 뒤집어지게 지고 있어 괜스레 울컥했다.

의자는 철수가 직접 운전을 해서 고양 이케아에서 구매를 했다.

마음같아선 더 예쁘고 좋은 것들을 사고 싶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자제시키며 적당한 선에서 귀여운 의자들을 샀다. 에어콘도 저렴한 가격에, 책상과 의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했다는 생각에 뿌듯해 미칠 지경이었다. (조명과 스피커, 콘센트, 작은 서랍 같은 것은 우리가 집에서 안 쓰는 것들을 가져다 놓았다.)


주황색 바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는데, 깔맞춤에 대한 욕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철제 선반을 보았는데 여기에 딱이다 싶은 걸 발견했다.

우리 둘 중 누구도 사이즈를 세심하게 잴 생각조차 않고서 그저 입구쪽에 놓고 공간 분리를 해서 현관처럼 구성하면 되겠다고 박수를 짝짝 쳤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사이즈가 아니었다..

결국 입구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선반은 현재 오공사의 마스코트처럼 되었다.

(책상을 쉽게 구매한 탓에 이것 역시도 배송을 5층까지 해줄 거라 단단히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1층에 이걸 내려주기만 하고 아저씨가 가버리셨다. 이때는 철수도 출근을 해서 없었는데 나 혼자서 거대한 철제 선반 부품을 이고 좁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했다. 열심히 운동했던 덕을 여기서 봤다.)


얼추 깔맞춤을 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잘 구했다고 좋아했던 책상이었는데, 하얀색의 유광 테이블이 자꾸만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에 철수가 죽여주는 아이디어를 냈다. 검은색 무광 시트지를 사서 붙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수의 야물딱진 손이 또 한번 고생했다.

그렇게 완성된 오공사의 마르텍 (마포재활용센터에서 데려온 아르텍)

난생 처음 전등도 갈아봤다. 나는 이때 철수의 기지에 홀딱 반해버렸다.

이케아에서 산 전등을 "나중에 언젠가 교체하지 뭐"하고 구석에 쳐박아두었었는데,

옆 건물의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발견한 사다리를 보고서 철수의 눈이 반짝였다.

바로 빨간 사다리를 빌려 전등을 갈았다.

오공사을 열지 않았다면 더 늙어서도 전등을 어떻게 교체해야 하는지 몰랐을 거다.


이렇게 지금의 오공사가 완성되었다.

우리 손으로 뚝딱뚝딱 만든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것을 뚝딱뚝딱 해낼지 기대가 컸다.

컸는데.. 컸는데... (마른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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