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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r 04. 2019

프리다이빙, 첫 바다로의 초대

다합, 이집트


예상치 못했던 여행은 준비하지 못한 것 투성이였다. 그 중 하나는 바다와 친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수영은 커녕 물장구를 치는 것조차 못했다. 그런 우리가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그저 바라보고 주위를 걷는 것뿐이었다. 여행 중 아름다운 바다를 만나곤 했고, 그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몸으로 바다를 느끼고 싶었다.


이전 직장에서 다양한 청년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그때 만났던 한 여행자가 보여준 영상을 떠올렸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새파란 바닷속 풍경. 그 한 가운데를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프리다이빙'. '다합'. 그 여행자가 말해준 키워드를 따라,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 다합으로 향했다.

라이트 하우스, 다합, 이집트 | 17.11.19

시나이 반도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인 다합은 스쿠버다이빙, 프리다이빙 등의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장소 중 하나이다. 다합 인근에는 다이빙을 배우기에 적합한 10-30m 수심의 '라이트 하우스', 다이버 들을 매료시키는 '블루홀(바다에 생긴 싱크홀의 일종으로, 급격하게 깊어지는 수심으로 인해 짙은 파란색을 띤다)'등 여러 다이빙 포인트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마쉬라바(Mashraba)의 해안가를 둘러보면 수 많은 다이빙센터와 다이버들을 만날 수 있다.



블루홀, 다합, 이집트 | 17.11.18

내 몸을 새롭게 느끼는 시간


공기통과 호흡기를 통해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과는 달리, 프리다이빙은 자신의 호흡만을 가지고 바닷속을 누비는 스포츠다. 이 때문에 프리다이빙의 첫 번째 걸음은 호흡 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었다. 일상에서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숨을 쉬는지, 얼마나 숨을 참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바닷속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나라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몸에 힘을 뺀 채로 물 위에 몸을 띄우고, 숨을 참을 준비를 한다. 스노클을 통해 숨을 쉬는 것이 아직은 어색해 괜스레 긴장이 된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 느끼는 떨림은,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두 감정 사이를 오가는 진동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은 두려움에 가까운 떨림에 몸이 굳어진다. 강사의 목소리를 따라 다시 몸에서 힘을 뺀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최대한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참은 후 스노클을 뺐다.


눈을 감고 멍하니 잔물결의 떨림을 느끼다 보면,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간다. 그 생각을 떨쳐 보내려 애쓰며 시간이 흐르면, 몸에 작은 떨림이 일기 시작한다. 그 떨림을 참기 힘들 무렵, 강사의 신호에 맞추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어느새 1분 30초 정도 흘러있었다. 1분 정도가 한계일 거로 생각했던 내 예상을 훨씬 넘은 기록이었다. 잠시 후 다시 한번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몸이 물에 적응한 덕분에 잠수시간이 좀 더 늘어났 다. 이론수업을 통해 호흡을 비롯한 다이빙 생리학에 대해 배웠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익숙하기만 하던 내 몸이 새롭게 느껴졌다.



블루홀, 다합, 이집트 | 17.11.18

새로운 세계로 향하며 만난 벽


새로운 호흡에 대해 배우는 것이 좀 더 '오래' 바닷속 세계 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좀 더 '깊이'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허리 즈음까지 잠기던 수심에서 진행되던 수업은 키를 훌쩍 넘는 15m 내외의 수심에서 이어졌다. 둘레 1m가 채 되지 않는 동그란 부이는 해양세션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부이에 고정된 하얀 줄은 바닷속으로 깊게 늘어뜨려져 있다. 준비호흡부터 최종호흡을 거쳐, 숨을 참고 내려진 줄을 따라 바닷속 세계로 향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건 설레는 일이지만, 동시에 어색하고 불편하며 때론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여전히 숨을 참는 건 불편하기만 했다. 가만히 물 위에 떠 있을 때와 긴장 한 채로 바닷속으로 내려가며 숨을 참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2-3m 정도를 내려가면, 무언가 귀를 짓누르듯 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이퀄라이징'(수심이 깊어질수록 높아지는 외부압력에 맞추어 몸 내부 공기 공간의 압력을 조정하는 방법) 과정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 이퀄라이징에 사용하는 근육은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익숙지 않은 이퀄라이징을 시도하다 보면, 숨을 참는 것도 더 버겁게 느껴졌다. 목표한 깊이에 다다르지 못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걸 반복했다. 배우고 있던 프리다이빙 초급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수심 15-16m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했지만, 내겐 5m 내외가 한계였다. 이퀄라이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퀄라이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배웠지만, 결국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이기에 꾸준한 시도를 통해 나름의 감각과 요령을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게 다음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이퀄라이징을 연습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라이트하우스, 다합, 이집트 | 17.11.13

여행 중 가장 부단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번씩 바다에 나가 프리다이빙 연습을 했다. 호흡과 이퀄라이징은 점점 나아졌지만, 그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다합에서의 한 달을 보낸 후에는 40여일 간의 아프리카 트럭킹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만나고 있는 우리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다합을 떠나기 몇 일 전 남은 수업을 진행했다. 다른 수료기준은 통과했지만, 끝내 숙련하지 못한 이퀄라이징으로 수심 10m 기록에 머무른 나는 과정을 수료하지 못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새로운 배움에 감사하며 다합을 떠났다. 그 배움 덕분에 트럭킹 중 만난 말라위의 호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바다는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배에 걸쳐진 사다리를 붙잡고 버텨야 했던 아내는, 스노클링만큼은 자신 있다며 구명조끼를 벗어던지고 바다 위를 누볐다. 나도 이전과는 달리 산호와 물고기를 가까이서 만나며 새롭게 발견하는 바닷속 세계를 맘껏 즐겼다. 다시 유럽여행을 시작하기 전 바다를 좀 더 즐기고 싶었다. 트럭킹 여행이 마무리돼갈 때쯤, 우리는 다시 다합으로 향하는 티켓을 예매했다.



(좌) 블루홀, 다합, 이집트 | 17.11.18      (우) 블루홀, 다합, 이집트 | 17.11.24

마침내 바다의 품에 안기다


다시 돌아온 다합, 지난번엔 시도하지 못했던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물속에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숨을 참는 데 신경 쓰느라 미쳐 눈길을 주지 못했던 바닷속 산호와 다양한 생물들을 살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한 켠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10월 말의 다합에서는 프리다이빙 대회 'Red C cup'이 열리고 있었다. 대회를 즐기는 프리다이버들의 모습을 보며, 그 채워지지 않던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다이빙이라는 세계에 좀 더 깊이 잠기고 싶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 다른 프리다이버들의 트레이닝 시간에 함께 바다에 나갔다. 오랜만에 프리다이빙을 하려니 몸이 떨려왔다. 떨림을 안고 바닷속으로 향했다. 다만, 이번엔 두려움보다는 설렘에 더 가까운 떨림이었다. 그래서일까 지난번에는 불편함을 겨우겨우 이기고 도달했던 10m 수심을 한결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리다이빙. 하루에 한 번씩은 바다에 나가고, 집에 돌아와서는 호흡훈련과 스트레칭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꾸준한 노력만큼 좋아지는 기록에 신이 났다. 지난번에 통과하지 못했던 초급과정을 마무리하고, 중급과정을 시작했다. 중급과정에 들어가면서 기대하던 '프리폴(자유낙하)'을 배울 수 있 게 되었다. 다른 움직임 없이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듯 가라앉는 경험. 프리다이버들이 매료되는 그 경험을 나도 해보고 싶었다.


라이트하우스, 다합, 이집트 | 17.11.13

몸을 물 위로 띄우는 양성부력 영역을 지나, 중성부력 지점을 넘어 음성부력 영역에 접어 든다. 핀을 차던 발을 멈추고 바다에 몸을 맡긴다. 이때부터는 내 힘이 아닌, 부력에만 의지한 채 바닷속으로 향한다. 눈앞의 하얀 줄 에만 집중한 채, 온 몸으로 바다를 느낀다. 바다가 나를 자기 품 안으로 안아 당기는 것만 같다. 그 바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 같다. 이미 그 품 안에 있으면서도 더 깊숙이 안기고 싶은 마음에 품을 파고드는 것처럼, 바다 의 품에 좀 더 깊숙이 안기고 싶다. 그 깊숙한 품으로 파고드는 순간들엔 바다와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정해진 수심에 도착하면, 눈앞에 있는 줄을 잡아당긴 후 다시 핀을 차고 수면 위를 향한다. 내려갈 때 느꼈던 황홀 함은 금세 사라지고, 그저 빨리 수면 위로 나가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찬다. 내가 굳이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올라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참았던 숨을 차라리 뱉고 싶어질 때쯤, 안전을 위해 내려 온 버디와 눈이 마주친다. 수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버디와 눈을 마주치며 수면 위로 올라와 회복호흡을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이번엔 올라올 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금세 사라지고, 다시 바닷속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다. 결국, 잠깐의 휴식시간이 지나고, 다시 바다의 품속으로 향한다.


블루홀, 다합, 이집트 | 17.11.18

프리폴을 통해 프리다이빙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지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 여행에서는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행복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어제 간신히 도달했던 깊이까지 가는 여정이 오늘은 훨씬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제보다 좀 더 깊이 내려가 만난 바다는 한없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중급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다합을 떠나기 전 블루홀로 마지막 다이빙을 나갔다. 한 달 전 프리다이빙 대회가 열렸던 그 바다, 그 품에 나도 안길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다녀온 수심은 32m. 간신히 10m 언저리를 오가던 몇 달 전의 나, 그리고 그저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던 그 이전의 나를 떠올렸다. 저 멀리 존재했던 바닷속 세계, 알지도 못했던 프리다이빙이라는 세계. 이 새로운 세계가 이미 내 여행의, 세계의, 삶의 일부가 되어 조금씩 커지는 걸 느끼며, 다합에서의 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ARTRAVEL TRIP.28  'THE FIRST'>에 기고한 글입니다.
(수중사진촬영: 다합 프리다이브 아지트)

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https://www.ar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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