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게 만드는
댄 애리얼리, 그레첸 루빈 , 세스 고딘, 스콧 벨스키 , 칼 뉴포트 저 외 16명 | 부키 | 2020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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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힘』은 일상의 작은 습관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자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나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루틴이라고 강조합니다.
“아이디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루틴이다.“라는 문장은 특히 깊은 인상을 주는데, 매일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성과를 결정짓는다는 메시지가 강렬합니다.
『루틴의 힘』은 일상을 재정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을 안내하는 든든한 나침반 같은 책이며 일독을 권합니다.
* 책의 내용중에 인상 깊은 문장이나 문구를 그대로 옮겼(발췌)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켈란젤로, 마리 퀴리,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던 세상과다르고, 심지어 20세기 말에 작고한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가 살던 세상과도 사뭇 다르다.
쉼 없이 등장하는 신기술이 한층 더 강력하게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신세계이자, 우리의 정신이 늘 개방돼 있어야 하고, 누구나 언제든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일 수 있으며, ‘자기만의 방’에 있다고 해도 더 이상 오롯이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다. 창의성은 주변의 신호와 소음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각종 알림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이런 긴급한 요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창조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루틴의 힘》에는 우리 앞에 펼쳐진 신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숙달해야 하는 네 가지 핵심 기술, 즉 탄탄한 일상 구축, 집중력 발휘, 창의력 단련, 일상 도구 관리에 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 각각의 영역에 한 챕터씩 할당한 후 세스 고딘,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토니 슈워츠, 그레첸 루빈, 댄 애리얼리, 린다스톤, 스티븐 프레스필드 등 노련한 사상가 및 창작자를 초대해 그들의 전문성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신세계의 문제와 난점을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마다의 강점과 약점,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방식을 꼭 집어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처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에 따라 어울리는 해법은 각기 다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필요, 습관, 선호에 따라 여러 전략을 결합해야 한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판에 박힌 생산성 시스템보다는 성과가 입증된 최고의 실천 교본을 제공하고자 한다. 한데 모인 이런 통찰들을 활용해 여러분의 마인드셋과 아이디어와 생활이 새롭게 개선되기를 바란다. 조슬린 글라이Jocelyn K. Glei, 편집장
정말 아이디어가 문제일까 나는 창작 업계에서 탄탄한 비즈니스 실천 습관을 육성하는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다. 비핸스와 여정을 함께하면서,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실현됐을까》의 집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창작자 및 창작집단과 함께 그들의 프로젝트와 경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생산성과 관리 기술이 얼마나중요한지, 여러 디자이너, 작가, 기업가에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강조해 왔다. 내 주문은 늘 한결같았다. “아이디어가 문제가아닙니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게 문제입니다.”
나는 여러 컨퍼런스와 기업으로부터 ‘창의성’에 관해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먼저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의 대답은 십중팔구 “물론이죠.그렇지만······”으로 시작해 이런저런 변명이 이어진다. “회사 규모가 커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게 너무 어렵네요.” “일상적인 일에 치이다 보니 새로운 프로젝트 진행이 잘 안 됩니다.” “위쪽에서는 혁신을 외치면서 진행은 가로막아요.”
이들은 ‘창의성’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좀 더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 줄 ‘실행’과 관련된 도움이다. 그런데문제의 본질이 ‘실행’에 달려 있다는 점이 확실해지면 사람들은 재빨리 비난의 화살을 환경 탓으로 돌린다. 회사 조직이 너무크거나 작아서, 경영진이 일을 망쳐서, 아니면 ‘프로세스’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매달리는 걸 그만두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을 생각할 때다. 완벽한 일터란 없다. 따라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있다. 결국 개인의 실천 습관이 우리 일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자면, 아이디어의 실현을 좌우하는 요소는 올바른 루틴의 보유 여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역량, 그리고 업무 습관을 체계적으로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생각하며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반응적 업무 흐름’이다. 우리는 이메일, 문자, SNS 등을 통해 최근 소식들을 잠깐잠깐 열어 보고, 그에 대응하면서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에 급급하다. 서로가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주도적으로 해내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일에 반응하며 살아가는것이다.
계속 새로운 소식을 받고 기기에 접속해 있다 보니 폭주하는 정보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 앞으로 논의를 계속하면서 더욱 깊이 알게 되겠지만, 효율적인 업무 방식과 현대의 경이로운 업적은 희생 없이는 결코 달성할 수없다. 이 신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규범과 기존의 효율성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당장 최적화가 필요하다 업무 흐름을 완전히 밑바닥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일상의 난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은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다.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든, 어떤 무시무시한 상명 하달식 체제가 업무에 악영향을 끼치든, 마음과 에너지는 오롯이 당신 혼자만의 것이다.
당신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의 무게 때문에 일상과 업무에서 잠재력을 내팽개칠 수도 있고, 아니면 주도적으로 일과 삶의 방식을 점검한 뒤 시정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일상의 생활 리듬을 최적화하는데 필요한 깊고도 강력한 통찰이 가득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여러분은 자신의 업무 습관이 자기 욕구에 맞춰 변한 것이 아니라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쪽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재평가의 기회로 활용하라.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있는지 재고해 보라. 단지 일상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일상 밖으로 한 걸음 나와 더 나은 루틴을 구축할 기회를 갖고, 끊임없는 불협화음 속에서 집중력을 되찾으며, 아이디어 실현을 위한 핵심으로 파고들어 당신의 창의적 역량을 갈고닦기를 권한다.
우리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일했을 경우, 단기간에 해낸 일은 과장하는 반면 장기간에 해낸 일은 오히려 과소평가하곤 한다.성실한 작가인 동시에 영국의 우편 체계 혁신에 공헌했던 19세기 소설가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작은 분량의 작업이라도, 매일매일 해낸다면 헤라클레스의 업적도 넘어설 수 있다.”
빈도를 높여 자주 실천하는 습관은 비록 따분해 보일지언정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여 준다. 나는 작가로서 주말, 휴일, 휴가 등을 포함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일한다. 가끔 15분 정도로 짧게 일을 끝마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꽤 긴 시간 동안 글을 쓰며 단 하루도 집필을 건너뛰지 않는다. 이렇게 일을 자주 하는 습관이 붙으면 독창성은 물론 성취도도 훨씬 높아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주 하면, 시작이 수월해진다 항상 시작이 문제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에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다 보면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도중에 일에서 멀어질 새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일도, 이미 해 놓은 일을 떠올리거나 본궤도로 다시 올라서기 위해 검토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기존 프로젝트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중단한 시점으로부터 다시 수월하게 시작할수 있다.
자주 하면, 아이디어가 신선해진다
당신의 마음이 일과 관련한 문제로 끊임없이 설렌다면 아이디어들 간의 새로운 연관성을발견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일에 깊이 골몰해 있으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된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이 든다. 세상 전체가전보다 재미있는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재를 미치도록 갈망하여 촉각을 곤두세울 때 비로소 아이디어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일에 계속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걸핏하면 슬럼프나 혼란에 빠지고, 딴것에 신경을 쓰거나, 원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주 하면, 부담이 줄어든다
일주일 동안의 결과물이 겨우 한 페이지, 블로그 포스팅 한 건, 스케치 하나라면 당연히 ‘특출하게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작업물의 질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된다. 아는 작가 중에 도무지 집필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있었다. 막상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켜면 잘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내놓는 매주의 결과물에 불안해했고 상당히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물만큼은 아주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나는 매일 쓰기 때문에 나에게 하루치 정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잘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 어떤날은 일을 별로 하지 못한 채 끝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분명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불안감이 사라진 덕분에 결과적으로 나는 일을 더욱 즐기게 되고, 새로운 실험을 해 보거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시간은 충분하니까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자주 하면, 창의력이 살아난다
“하고 싶어서든 그렇지 않든, 일을 자주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에 대한 평가 기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진실은 정반대다. 최고의 작품은 생산물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휘저을 때 솟아나며, 풍부한 거품을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 일에 계속전념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일하면 영감 역시 규칙적으로 번뜩인다. 자주 하면, 자주 하는 습관이 붙는다 일을 자주 하는습관을 들이면 일에 들이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뭔가 해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적응하는 데에 시간을 들일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 화가와 결혼한 작가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10분 법칙’이 있어요. 잘되는 날은 앉아서 10분 안에 뭔가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죠.” 자주 하는 습관이 생기면 이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법도 터득할 수 있다.
자주 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매일 일을 하면 당연히 더 많은 것을 이뤄 낼 가능성이 커진다. 매일 성과를 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다음 날 작업이 좀 더 수월해지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자신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쓰거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일을 해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발전과 함께 불안감이 사라지고 영감이 솟아난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는데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으면 불안과 절망감이 엄습한다. 일을 미룸으로써 발생한 불안감 때문에 도리어 일에 매진하지 못하는 것은 직업 생활의 씁쓸한 아이러니다. 자주 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직장이나 가정의 무거운 책무를 안고서 또 다른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할 때 자주 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프로젝트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끝없이 좌절하기보다는 매일 스스로 시간을 내라. 매일 조금씩 일을 진행하면서 수개월, 수년을 견디면 어느새 많은 일이 이뤄져있을 것이다. 물론 ‘자주 하라’고 해서 반드시 ‘매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다. 그러나 일하는 간격이넓어질수록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줄어들 것이다.
대개 ‘심오한 진리’는 그 반대 역시 진리인 경우가 많다. ‘장기간에 걸쳐 자주 하기’는 많은 이점이 있지만 때로는 극기 훈련처럼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강도 높게 일을 진행하는 방식도 큰 재미를 줄 수 있다. 유명 만화가인 스콧 맥클라우드Scott McCloud는 저서 《만화의 창작》에서 이른바 ‘24시간 만화 제작’을 권장한다.
“24시간 안에 24페이지짜리 만화책 전체를 그려요. 대본도, 준비도 전혀 없이 말이죠. 일단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끝낼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창의력이 막힌 사람들에게 효과가 상당히 좋은 충격 요법이죠.”
나는 일을 조금씩 해 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대범하고 야심 찬 조치를 취하는 편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적은 양 대신 더 많은 양을 한꺼번에 다루면 즐거운 에너지와 집중력이 샘솟는 게 느껴진다. 나는 자라면서 주워들은 교훈을 모아 ‘어른의 비밀’이라는 나만의 긴 목록을 만들어 두었다. “시작도 못 해 본 일처럼 지루한 건 없다” “하루하루는 길지만 한 해 한 해는 짧다” “여행 가방에는 반드시 빈 공간을 많이 남겨 둬라”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비밀은 “내가 매일 하는 일이 가끔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고유한 상상력을 격조 높은 창작물로 구현해 내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인생에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고 싶다면 세상의 요구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는 ‘지불해야 할 청구서’와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사이에 넓은 중간 영역이 존재한다.
자칫하면 이 영역은 이메일과 회의, 다른 사람의 요구로 가득 차 버려 정작 중요한 일을 할여지가 전혀 남지 않게 된다. 위대한 소설, 모두의 눈길을 끄는 디자인, 판도를 뒤집는 소프트웨어, 혁신적 기업. 이런 업적을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생각, 기술과 뚝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 놓고 본다면, 이렇게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은 30분 전 고객이나 동료로부터 날아온 네 통의 이메일만큼 다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정작 이들의 요구 사항은 몇 시간, 혹은 며칠 후에 처리해도 될 일인데 말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내 답변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을 만들길 원치 않는다.하루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이메일이 넘쳐 나고, 음성 메시지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으며, 지난번 회의의 후속 절차가 쌓여 있으면 “우선 자잘한 것들을 정리하고 보자”는 유혹이 생긴다. 일을 그때그때 해 놓으면 집중하기가 더 수월해진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이런 일 처리 방식의 문제점은 하루 중 황금 시간을 다른 사람의 우선순위를 처리하면서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내 일을해야겠다 싶으면 어느새 오후 3~4시다. 기운은 다 빠지고 두뇌 회전 속도는 느려진 상태다. “뭐,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혼잣말로 위로한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이메일과 전화, 해야 할 일들이 쌓인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하루 대부분의시간을 쏟아지는 요청에 응하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대응적 업무에 허비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절대로창출해 내지 못한다.
창의적 업무 먼저, 대응적 업무는 나중에 업무 습관을 ‘창의적 업무 먼저, 대응적 업무는 나중에’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 중 일정 분량의 시간을 전화와 이메일에 신경을 끈 채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른 창의적 업무에 할당하라.
예전에 나는 형편없는 작가였다. 그러나 이처럼 작업 방식을 바꾼 후에는 생산적인 작가로 변모했다. 이제는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가능하면 오전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나는 이미 가장 중요한 일을 다 마친 상태가 된다. 돌이켜 보면 내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이런 단순한 변화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도 매일 기고할 칼럼, 블로그 글, 책 원고 등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어김없이 내 답변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요구가 줄지어 있다. 나로서도 거기에 관심을 끄기란 쉽지 않고, 특히 “2시간 전에 이메일 보냈잖아요!”라며 따지는 전화를 받으면 여전히 곤혹스럽다. 간단히 말해 이 업무 방식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와 이들이 가하는 압력에 ‘배짱’으로 버티는 것이다.단 1시간이라도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면 의지력이 필요하다. 찝찝하기도 하고 이따금 사람들의 화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이메일에 답장하느라 꿈을 포기하느니 사소한 일로 몇몇 사람을 실망시키는 게 더 낫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요청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프로답다”는 망상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갉아먹게 된다.
어떻게 루틴을 형성해야 하는가 물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질구레한 일은 무시하라”는 말은 지당하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대체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라: 누구에게나 창의적 집중력을 발휘하기에 특히 좋은‘특정 시간대’가 있다.
우리 몸의 각성 및 정신적 민첩성에 관한 생체 리듬 덕분이다. 하루 중 자신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때를 관찰해서 그 귀중한 시간을 가장 중요한 창의적 업무에 할애하라. 가능하다면 이 시간에는 약속을 잡지 마라. 또한 반복적인 잡무에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창의적 자극제를 활용하라: 동일한 도구나 상황, 배경 음악 등을 계속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연상 작용을 통해 자신이 창의적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점을 인식하게끔 하라.
소설가 스티븐 킹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
저는 자리에 앉아 글을 쓸 때면 늘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물이나 차를 한 잔 마십니다. 자리에 앉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요. 매일 아침 8시에서 8시 30분까지 30분간입니다. 비타민을 한 알 먹고 음악을 튼 다음 항상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신문 역시 같은 위치에 잘 놓아두죠. 이런 일을 매일매일 같은 방식으로 해 나가는 목적은 제 마음에 대고 ‘자 이제 곧 꿈을 꿀시간이야’라고 말해 주려는 겁니다.
‘할 일 목록’의 증가에 주의하라: 하루의 ‘할 일 목록’에 제한을 두어라. 가로세로 7~8센티미터짜리 포스트잇이면 족하다. 할 일 목록을 이 정도 크기의 종이에 다 적지 못한다면, 하루 동안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낼것인가? 목록에 계획을 계속 추가하다 보면 일은 결코 끝나지 않고, 일할 의욕은 곤두박질친다. 대부분의 일은 내일 해도 된다. 그러니 그냥 두어라.
약속을 기록해 둬라: 모든 약속(자신과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을 잊어버릴 수 없는 곳에 습관적으로 기록하라. 이렇게 하면 어떤 요청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더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면 당면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상의 틀을 단단하게 짜라: 혼자 일하는 경우라 해도 하루 일과의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정하라. 창의적 업무, 회의, 소통, 관리 업무 등 작업 성격이 다르면 시간대도 다르게 할당하라. 이렇게 철저하게 시간 틀을 짜 두면 필요 이상으로 작업 시간이길어져 다른 중요한 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중독에서 탈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중독은 겉보기보다 훨씬더 비생산적이다.
사람마다 효율적인 일상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자기 능력과 성향에 따른 맞춤식이어야 루틴의 효과가 배가된다. 따라서 위에서 소개한 탄탄한 루틴 형성법을 직접 실험해 보고 어떤 조합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데 가장 좋은지 살펴라. 매일의 스케줄이 단조로운 일상이 아닌 창의적인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효과적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크는 대형 기획사에서 일하는 광고 제작 감독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들려준 그의 일상은, 내가 평소에 만나는 관리자나 리더의 전형적인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크의 알람은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울린다. 보통 6시간~6시간 30분 정도를 자지만 전혀 개운치 않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아이폰을 들고 이메일을 확인하는것이다.
밤새 시급한 일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란다. 그러나 실상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크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헬스장에 가려고 하지만 출장이 잦고 집에 있을 때는 피곤해서 몸이 말을 듣지않을 때가 많다. 오전 7시 30분경 회사에 도착한 제크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이메일을 확인한다. 이쯤이면 평균적으로 25개 이상의 새 메일이 들어와 있다. 이른 아침 회의가 잡혀 있지 않으면 보통 1시간 이상 꼼짝하지 않고 온라인에 접속해 있기도 한다. 제크의 하루는 대부분 회의로 가득하다. 중간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연달아 잡혀 있다.
그러니 바로직전 회의에서 들은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다음 회의로 부리나케 달려가기 일쑤다. 점심은 그야말로 쑤셔 넣는 수준이다. 보통 간이식당에서 음식을 사 와 책상에 앉아 먹으면서 일한다. 오후 2~3시쯤 되면 전날 밤에 몇 시간이나 잤는지에 따라 제크의 몸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의 회사 분위기상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대신 빨리 기운을 되찾기 위해 누군가 먹다 남긴 생일 케이크 한 조각을 몰래 먹거나 스니커즈 초코바를 사러 자판기로 뛰어간다.
그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집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뒤로 미루곤 한다. 그러나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그 일을 처리할 에너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기운이 남아 있다고 해도 끝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아 다른 일을할 여유를 찾기 어렵다. 드디어 어려운 과제를 하려고 들면 대개 저녁 7시 30분이나 8시경이고, 에너지가 전부 바닥난 상태다. 제크는 저녁을 먹은 후 오전에 미뤄 둔 일을 처리해 보려고 하지만 대개는 그저 다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온라인 게임을하며 하루를 마친다.
어쨌거나 대체적으로 그는 필요 이상으로 늦게 잠자리에 든다. 제크의 사례는 여러분의 경험과 얼마나비슷한가?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지금 이대로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역량은 한정돼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살면서 처리해야 할 요구 사항이 우리 역량을 초과하여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역량을, 자기 기술과 재능을 완벽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연료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대부분은 그동안 역량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갈수록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복잡성이 심해짐에 따라 우리를 향해 더 많은 정보와 요구 사항이 더 빠르고 무자비하게 몰려오고 있다. 인간은 컴퓨터와 달리 오랜 시간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작동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인간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회복하면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우리 두뇌는 고주파와 저주파 운동을 번갈아 한다. 심장 박동 수도 일정하지 않다. 우리 폐 역시 필요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한다. 숨을 잘 들이마시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실 숨을 더 깊이 내쉬면 내쉴수록 더 차분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일직선으로 내달리면서 하루 종일 에너지 비축분을 태워 없애기만 한다.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은행 계좌에서 계속 돈을빼 쓰는 것과 같다. 일정 시점이 되면 우리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다행인 건 우리가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능숙하게 에너지를 관리하면 좀 더 지속적으로, 한층 수준 높게, 그것도 좀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 방법을 두 가지 중요한 과학 연구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수면이 음식 섭취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다만 몸무게를 좀잃게 될 뿐이다. 하지만 단 이틀이라도 잠을 안 자면? 완전히 망가진다. 이런데도 우리는 1시간의 수면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그 1시간만큼 생산성이 더 올라갈 거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실상은 수면이 아주 조금만 부족해도, 우리의 인지 능력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매우 짧은 수면을 취하고도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일부의 얘기는 보통 미신에 불과하다. 인구 40명당 한 사람, 전체 인구의 2.5퍼센트 미만의 사람만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취하고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두 번째 중요한 연구 결과는 ‘우리 신체는 주기적 리듬을 따른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은 90분 주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역량 한계점에 도달한다. 커피나 설탕에 의존하거나 스트레스 호르몬을 자극해서 90분 이상 자신을 밀어붙일 수는 있지만, 그러면 생리적으로 필요한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무시하는 셈이다. 결국 그렇게 한계점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신의 루틴에는 회복이 필요하다 평소의 작업 습관과 신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 즉 처리할 요구 사항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일의 효율성과 지속성 모두를 위해 ‘회복’을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제크의 경우, 변화를꾀한 첫 번째 요소는 수면 루틴이었다. 그는 수년 동안 때때로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할 마땅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새벽 5시 30분 기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항상 해 오던 습관일 뿐이었다. 대신 그는 밤 11시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아무리 늦어도 11시 30분에는 불을 껐다. 기상 시간도 6시 30분으로 1시간 늦춰서 하루에 적어도 7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했다.
예전처럼 집에서 정신없이 뛰쳐나가는 대신, 그는 이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잠도 충분히 잤고 가족과도 시간을 보냈으니 집을 나설 때 훨씬 기분이 좋다.
제크는 오전에 5~10분 정도 휴식 시간을 가지며 대개 동료와 업무 외의 잡담을 나눴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오전 내내에너지가 좀 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반응적으로 일을 처리하던 경향도 줄었다. 그는 힘든 회의를 끝내고 나면 회의 때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상대에게 이메일을 퍼붓곤 했는데 그 내용은 십중팔구 부정적이어서 결국 역효과를 불러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휴식을 가지면서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제크는 점심시간에 30분 정도 밖에서 산책할 시간을 가진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은 책상에 두고 나간다. 그는 걸으면서 재충전할기회도 얻지만, 무엇보다 오전에 있었던 회의와 머릿속을 채운 다른 사안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있다. 처음에는 일도 늦게 시작하고 점심시간이면 산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성과가 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반대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하루 동안 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크는 어떤 일을 먼저 착수해야 하는지에 대해 예전보다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전의 그는 이미지친 상태로 일터에 도착한 뒤 본능적으로 단순한 일을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마음이 뿌듯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당분을 과하게 섭취해 흥분 상태가 되는 ‘슈거 하이’와 동일한 현상이었다.단순한 일을 여러 개 처리하고 나면 만족스러워졌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제크는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을 제일 먼저 처리한다. 그는 장기적으로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여기는 과제에 60~90분 동안 집중한다.
“이런 건 제가 리더로서 해야 했던 일입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하지만 이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죠.” 제크가 모든 방법을제대로 깨우치고 터득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는 집에서 평소 실천했던 의례적 습관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원래의 루틴을 회복하느라 상당히 고생한다.
그러나 제크는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하루 중 회복 시간을 확보할 때,즉 올바른 생활 리듬을 확립할 때 인생의 모든 일이 더 잘 풀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고독을 찾기 위해 월든 호수 근처 숲으로 향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19세기 도시 생활의 모든 사건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즉 오직 삶의 알짜배기들만을 바라보며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깨달을수 있는지 알고자 했다.
그리하여죽음을 맞이했을 때 삶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느끼고 싶었다.”
말하자면 소로는 ‘숲의 고독이 삶에 관해 전해 주는 교훈’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갔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고독을 찾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고독이 주는교훈을 배울 수 있고, 오롯이 집중하고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으며, 고요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20분~1시간만이라도 고독을 위한 시간을 비워 두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찾아온다. 이 시간, 고요한 평온 속에서 우리마음은 나무 위의 원숭이처럼 활기가 넘치게 된다.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면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고, 매일의 업무와 인터넷 생활의 불협화음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만의 창조적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일 수 있다.
나만의 공간 확보하기의 중요성
지금 당장 고독을 위한 첫 시간대를 설정해서 일상적인 루틴으로 만들어라.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아이들은 자고 있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나는 이 시간에 최고의 성과를 내곤 하는데,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정해 놓은 계획을 방해할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 여의치 않다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고독의시간을 가져 보라.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30분~1시간 먼저 도착해서 사무실이 분주해지기 전에 조용히 해야 할 일을 해 놓곤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루 첫머리에 고독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가 바빠져서 고독의 방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방해물과 요청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고독 시간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사무실을 벗어나 커피숍이나 도서관, 공원 등 가능한 한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좋다. 게다가 무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이상적이다. 올빼미족들에게 좋은 방법은 밤 시간대에 딴짓할 수 없는 공간을 마련해 고독을 찾는 것이다. 밤에 일이 잘되는 성향이라면 해가 진 후 혼자 일하는 시간대를 계획해 고독 시간을 마련해 보자.
아주 간단하게 고독을 실천할 수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독을 불편하게 여긴다. 고독은 아무런 개입 없이 홀로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을 통해 고독의 두려움을 줄일 수 있으며, 규칙적으로 고독 시간을 갖게 되면 자신과의 대면을 좀 더 편안히 받아들이게 된다. 고독을 연습하는 놀라운 방법 한 가지는 하루에 한 번 소박한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명상은 구태여 신비스럽거나 복잡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적어도 몇 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명상을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대는 아침에 눈을 뜬 직후다. 일어나서 물을 마신 다음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앉아서 5~10분, 길게는 20분까지 명상하라.
명상은 어떻게 하는가? 우선 조용한 장소를 찾아 앉는다. 몸을 바로 하고, 눈은 뜨고 있지만 특별히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지말고, 코로 호흡한다. 명상 초기에는 자기 자세와 몸을 의식하고, 호흡에 집중해 들숨과 날숨을 관찰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의식하고 그 사실을 감지하되, 떠오른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항상 신경을 호흡으로 되돌려 집중한다. 이 순서대로 최소 5분 이상 지속한다. 그냥 앉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다른 의미는 없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아내기 위해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효과도 얻을수 있지만 그저 앉아 있는 연습을 할 뿐이다. 명상하면서 혼자 있는 연습을,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명상은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갈수록 익숙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고독이 편해질 것이다.
또한 떠오르는 생각을 주시하면서도 그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중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터득한다. 즉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을 감지해도 그 충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신경을 현재 하고 있는 일로 돌려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독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으로, 사실 이게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
유명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은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소설 《자유》를 쓸 때 집기조차 제대로갖춰지지 않은 사무실에 스스로를 감금하다시피 했다.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심지어 자신의 구닥다리 노트북 컴퓨터에서 무선 랜 카드를 빼내고 초강력 접착제와 톱으로 이더넷 포트를 아예 못쓰게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귀마개와 소음 방지 헤드폰을 끼고 마치 누에고치가 된 것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프랜즌의 사례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동물인지를 신랄하게 보여 준다. 창의적 정신은 걸핏하면 한눈팔기 일쑤고, 새로 등장한 연결성의유혹은 너무나 강력해서 누구든지 쉽게 집중력을 잃어버리곤 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미신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걷기 같은 매우 자동적인 행위를 할 때만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의식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위인 경우, 실제 이루어지는 현상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구 사항을 놓고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업 전환’ 과정일 뿐이다.
마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동시에 하는 양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그저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또 다시 원래 일로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이 경우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때보다 숙련도와 정확성은 훨씬 떨어진다.
독서를 예로 들어 보자. 예전에는 두세 시간 독서를 한 후에는 타인과의사교적인 접촉을 추구했는데, 이제 인스턴트 메신저 같은 도구가 출현하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어떨까?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교의 로라 보먼이 이끄는 연구 팀은, 교과서를 읽으면서 메신저를 사용하는 학생이단순히 책 읽기만 하는 학생에 비해 해당 단락을 읽는 데 25퍼센트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메신저 사용 시간은 제외).3 동시에 수행하는 특정 행위들이 독서와 채팅이든, 글쓰기와 TV 시청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최종 결과는 동일하다. 각기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경우보다 완성도는 떨어지고, 걸리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딴짓의 유혹 물론 멀티태스킹만 탓할 게 아니다. 이보다 더 은밀한 해악은 바탕화면에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사이트를 열어 둔 채 겉으로는 일에 전념하는 우리의 습관이다. 이들 앱에서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우리는 바로 경로를 이탈하고 만다. 이때 단순히 메시지에 응답하는 시간만 뺏기는 것이 아니다. 한눈팔기 전에 하고 있던 일의‘흐름’을 되찾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는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이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실험을 한 가지 진행했다. 직원 27명의 작업 습관을 2주일에 걸쳐 모니터링했는데, 직원들은 메시지에 응답하느라 평균 10분 정도의 시간을 허비했을 뿐 아니라이를 시작으로 다른 앱도 둘러보는 데 평균 10~15분을 더 보낸 후에야 본연의 업무로 돌아왔다. 이런 딴짓이 때로는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이메일 하나에 후다닥 답하거나 짧게 통화 한번 했을 뿐이라며 위안할지 모르겠지만, 실제 우리는 작업을 전환하는 동안 토끼 굴에 빠져 버려서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본연의 업무로부터 정신 줄을놓게 된다.
제아무리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업 성과가 떨어진다. 유혹에 저항하려는 행위 자체가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정신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는 2011년 심리학자들이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연구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컴퓨터 작업을 지시했는데 이때 한 집단에게는 흥미로운 영상을 그냥 보여 줬지만, 다른 집단에게는 이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고 참게 했다(당신의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 클립의 유혹과 비슷하다).
이후 다른 작업을 수행할 때 영상 시청의 유혹을 참아야 했던 집단은영상을 볼 수 있었던 집단에 비해 작업 성과가 좋지 않았다.5 즉, 딴짓을 무시하려고 애쓴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프랜즌처럼 아예 이들을 집중 영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기가 세워 놓은 규칙을 어기지않는 데 정신 에너지의 절반을 쏟아야만 한다.
끝내지 않은 업무는 숙취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제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에는 그 나름의볼일이 있다. 오전에 보고서 작성 업무를 하다가 이 업무를 끝내지 않은 채 오후에는 광고 제작 브리핑 업무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해 보이는 변화지만, 미완성 상태인 아침 업무가 정신을 좀먹는 벌레처럼 뇌리에 남아이후 업무 수행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주의력 잔여물’ 효과라고 부른다.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다른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우선 단어 퍼즐을 맞추게 한 다음, 완전히 별개의 작업인 이력서 검토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참가자들이 이력서 검토를 막 시작했을 때, 다시 말해 새로운 업무로 정신을 전환했을 때 연구자인 소피 리로이는 그들에게 돌발 과제를 하나 제시했다. 나열된 글자가 실제 단어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문제였다.
단어 퍼즐 과제를 다 완성하지 못한 채 새로운 업무를 수행해야 했던 집단의 참가자들은 퍼즐 안에 들어 있던 단어나 ‘풀다solve’처럼 퍼즐의 목표와 관련된 단어에 더 빠르게 반응했다. 끝내지 못했던 첫 번째 과제가 그들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어 퍼즐을 완전히 끝마친 후 새 업무에 돌입한 대조군의 결과와 비교해 본 리로이는, 잔존 업무의 여파가 마치숙취처럼 이력서 검토 과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던 작업을 보류해 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는것이 별일 아니라는 생각과 달리, 연구 결과를 보면 끝내지 못한 과제에서 손을 떼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마음이 떠났다고 여긴다 해도 끝내지 못한 일은 계속해서 우리의 정신적 자원을 축낸다. 더군다나 이런 정신적 끌림을 무시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만다. 가능하다면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찝찝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기꺼이 손을 놓을수 있는 중단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식으로 심적인 마무리를 끝낸 후 다른 과제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훨씬 쉬운 길이다. 물론 창의적인 과제의 수행 과정에서는 일을 바꿔 가며 처리하는 게 득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제 해결 단계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 단계에서, 잠시 과제로부터 벗어나면 잠재의식이 별개의 개념들을 서로 연관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예외일 뿐이다. 효율성 강화 수단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 멀티태스킹은 생산성 저하의 주범임을 잊지 말자. 일단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나아갈 방향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에 매진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단 한 가지에전념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
80권 이상의 로맨스 소설을 쓴 작가 리 마이클스는 이렇게 말했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글을 쓰겠다는 건 공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작품을 생산하는 여건이 이상적인 경우는 드물며, 모든 것이 완벽해지길 기다리다가는십중팔구 일이 지연되기 일쑤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유명한 창작자라고 해도 그들 중 대부분은 생계와 창작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후원자가 없다. 뮤지션들은 낮에 따로 직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고, 시인은 교수를 겸하며, 장편 영화 제작자는 부업으로 광고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좋든 싫든 끊임없이 이 일 저 일을 오가면서 집중력을 빼앗는 장애물과 싸우는 와중에, 혼돈 속에서 창조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자제력은 어떻게 키우는가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데는 어쨌든 상당한 자제력이 요구된다. 부정적인 산만함을 이겨 내고 일에 집중하려면 에너지와 정신적 역량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의지력의 재발견》을 집필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여러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알아내고자 수백 가지 실험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제력이란 유전되거나 고정된 형질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개발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임을 발견했다.8 바우마이스터는 자제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전략을 제시한다. 그중 한 가지는 얼핏 자제력과 관계없어 보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바른 자세 잡기, 건성으로 “응”이라고 답하지 않고 제대로 “네”라고답하기, 자기 전에 반드시 치실질 하기 등이다. 이를 통해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의지력이 강화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단새로운 습관에 익숙해지고 나면 별다른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고, 여기서 아낀 에너지를 더 많은 자제력이 필요한 다른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동 조종 모드로 처리하는 일은 의식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일과 달리 우리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규칙이 변해서 계속 집중해야 하는 전략 게임을 즐기거나, 줄거리를 따라잡기위해 주의해야 하는 오디오북을 듣는 것과 같은 오락 활동 또한 자제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규칙적으로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처럼 단순한 행동도 집중력과 자제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스케줄 전환의 기술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자제력을 키운다 해도, 자제력이란 애초에 한정된 자원이므로 다른 전략을 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의 두 연구자, 킴벌리 엘스바흐와 앤드루 해거든 박사는 업무 중 의식해서 해야 하는 활동과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는 활동을 번갈아 가며 처리할 경우 창의성과 효율성이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육체적 활동에 비유하자면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중간중간에 여러 번의 단거리 경주를 뛰는 것이 인간의 마음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 과학Organization Science》이라는 저널에 실린 이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단순 제조 라인 업무(공급함 채우기), 복사하기, 단순 청소(실험실 장비 세척), 단순 유지 보수, 분류 및 조립,단순 서비스 업무(포장 해체 및 저장)” 등이 ‘무의식적 업무’로 정의된다. 이와는 반대로 문제 해결이나 발명 등과 연관된 핵심과제나 창의력이 요구되는 과제는 ‘의식적 업무’에 속한다.
의식적 업무에서 무의식적 업무로 전환하면 우리 뇌는 이완된 상태에서 복잡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다음번 의식적 업무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시간이 각기 다른데, 이 시간의 길이는 하루 중에도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에너지 수준이 올라가고 떨어지는 시간을 기록해 두면 의식적 업무와 무의식적 업무를 전환하는 스케줄을 짤 때 유용하다.
타이머를 이용해서 에너지 수준의 변동 시간을 미리 파악해 두면 탈진과 시간 낭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언급한 관찰과 훈련 과정을 들으면서 당신은 “창의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무슨 과학자나 운동선수라도 되라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다. 어떤 일에서 탁월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관찰과 정련, 적응과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저명한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자제력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저는 소설 쓰기 모드에 돌입했을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작업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 달리기나 1500미터수영을 한 다음(혹은 두 가지를 모두 한 다음),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지요.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고요. 이런 루틴을 변화 없이 매일 지속합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합니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니까요. 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하지만 6개월~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런 반복적 생활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이요구되지요.
이런 의미에서 장편 소설을 쓴다는 건 생존 훈련과도 같습니다.
예술적 감성만큼 체력이 절실한 일이지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집중력을 단련하고 창의적 에너지를 모으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마치 농구 선수가 상대 팀을 응원하는 관중의 함성 속에서도 자유투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로부터 대가를 받지 않고, 또 당신이 제대로 일하는지 어깨 너머로 감시를 받지 않고 뭔가를 해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요?” 창작자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거의 여지없이 이렇다. “기억이 안 나는데요.” 사실 창의성은 돈벌이나 고객, 상사를기쁘게 해 줄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은 당신의 능력 중 단지 일부만을 사용하게 한다. 정말로 뛰어나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관객, 즉 자기 자신을 위해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줄리아 캐머런은 자신의 저서 《아티스트 웨이》에서지금은 유명해진 ‘모닝 페이지’라는 한 가지 습관을 소개했다. 그녀는 숨어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머릿속 검열관의 목소리를 밀어내며, 창의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을 3쪽 분량으로 자유롭게 적어 보라고 권한다. 캐머런은 모닝 페이지를 통해 실용적이거나 효율적인 결과를 곧바로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를 일종의 의식으로 받아들인 많은 사람에게 기발한 통찰력의 빗장을 열어 주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불필요한 창조’가 주는 유사한 혜택들을각계의 전문 창작자들의 삶에서 목격했다.
정원 가꾸기나 수채화 그리기부터 주말마다 조금씩 소설 써 보기까지, 각자의 조건에 맞춰 나름의 창의적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잠재된 열정과 통찰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적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불필요한 창조가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새로운 가능성과 호기심을 발견하는 방법 불필요한 창조 활동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호기심을 추구할 자유를 준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 창조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전문 창작자들 중에서 극도의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를 자주 봐 왔다. 이들은 자신의 상사나 고객이 그어 놓은 경계에 저항하며, 이런 한계와 타협때문에 기껏 일해 봤자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토로한다.
어도비가 후원한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노동자 중 대략 75퍼센트가 자신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미국의 경우에는 거의 82퍼센트에 달했다!).
창작자가 실제로 매일 할 수 있는 일과, 자원이 더 풍족하거나 규제를 덜 받을 경우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일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위험 허용 기준이 낮고 갈수록 자원이 부족해지는상황에서 이런 한계는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매일의 일상적인 프로젝트만이 당신이 맡은 일의 전부라면 좌절감을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면, 여유 시간에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의 목록을 만들어 뒀다가 매주, 혹은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그 일들을 진행해야 한다.
때로는 과연 이런 일들이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수많은 시급한 일이 아우성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일상 업무를 처리할 창의적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런 시도가 필수적이다.
별도의 노트에 답을 찾고 싶은 질문이나 생각해 둔 아이디어, 혹은 시도해 보고 싶은 실험을 기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리정해 둔 불필요한 창조 시간을 활용해 이런 아이디어들을 시도하면 된다.
스티븐 존슨이 자신의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 적었듯이, “좋은 아이디어란 일종의 네트워크다.
처음에 당신의 뇌에서 수천 개의 뉴런 집단이 동시에 점화되면 아이디어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새로운 아이디어란 당신의 마음이 이뤄 낼 수 있는 인접 가능성을 탐색하는 세포들의 네트워크다.”
결과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은 상태로 자주 ‘인접 가능성’을 탐색할 때, 일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적인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기꺼이 모험에 뛰어드는 용기를 주다 불필요한 창조를 활용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수 있으며, 이 역량은 나중에 창의력이 필요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한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똑같은 아이디어를 되씹고, 똑같은 우물에서만 영감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똑같은 연장함을 열고 있지 않은가?
예전과같은 낡은 방식을 계속 적용한다면 우리의 도구는 뭉툭해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하지만 당신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내도록 고용된 상태이므로, 지시받은 일을 하는 와중에 새로운 방법을 익히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영국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David Whyte는 《일깨워진 마음The Heart Aroused》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썼다.
“창조적 행위를 통해서 자기 운명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간다면(흰 종이 위에 펜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를 감싸고 있던 덮개를 포기하게 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창의적 행위란 불확실성을 향해 나서는 일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위험이 내재돼 있다. 그런데 불필요한 창조를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둔다면, 새로운 일의 방식을 실험할 안전망을 갖추는 셈이다. 나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으며, 머릿속 아이디어를 다른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있게 된다.
불필요한 창조 행위는 이와 같이 자기표현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 주고, 그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은 당신의 새로운 도구가 되어일상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온전한 나 자신과 대면하게 해 주다
불필요한 창조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스스로가 단지 생산의 결과물에 불과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준다. 당신도 나도 기계가 아니기에 아무리 효율적이고 탁월하게 일을 해낸다 할지라도 뭔가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 낼 역량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 시대를 관통하며 진보를 이끌어 왔던 ‘새로움의 추구’를 향한 내재된 열망을 계속 되새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세기 신비주의자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이유는 심각한 이기주의 때문일 수 있다. 사람들은 유행을 모방하고 자신을 과장하는 데는 서두르는 반면, 그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해 내는 데는 게으름을 피운다.
서두름은 예술가뿐 아니라 성인聖人마저도 망친다.
사람들은 빠른 성공을 원하고, 너무 서두르느라 자신에게 충실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러다 광기가 덮쳐 오면 그들은 그 서두름이 곧 미덕이라고 주장하고 만다.”
머튼은 주문형 창조의 압박으로 인해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동료와 경쟁자를 곁눈질하게 되는 현상을 우아하게 지적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다듬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창조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적성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어떤 조건이나 타인의 기대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자신의 직관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법을 배우면서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기술들이다.
물론 당신이 “잠깐만요. 나는 숨 쉴 시간도 거의 없는데, 단지 나 혼자 즐겁자고 안 그래도 빡빡한 스케줄에 다른 일을 쑤셔 넣으란 말입니까?”라고 항의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의 시간을 어디에 쓰든지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고, 더구나 불필요한 창조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건 정말 비효율적인 선택처럼 느껴질 것이다. 사실, 실제로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오로지 실용적인 일에만 투자할 경우 치르게 될 기회비용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시간을 쏟으면서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적성과 창의적 역량을 발견하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않고 있잖은가?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받은 편지함의 새 메일 0통. 듣기만 해도 꽤 좋지 않은가?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그 양은 해가 갈수록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가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식 노동자는 이메일 작성, 읽기, 응답에 평균적으로 주중 근무 시간의 28퍼센트를 소비한다고 한다.
당신이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이메일관리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이메일과 관련된 업무량을 줄이기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소위 ‘이메일 효율성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열풍은 이메일 관리를 도와주는 수백 가지도구, 기술, 서비스, 플러그인 등이 가세함으로써 더욱 거세졌다. 이런 ‘최상의 이메일 관리법’을 일일이 따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생산성 전문가들은 이메일을 완벽하게 관리하려면 다음의 지침들을,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수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빠른 검색을 위해 이메일 라벨을 붙이기
• 이메일을 자체 분류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기
• 집중해서 볼 수있는 방식으로 이메일을 보관하기
• 시각적으로 우선순위가 보이도록 색깔 부여하기
• 중요한 이메일은 다시 상기할 수 있도록 만들기
• 이메일 내용을 곧장 업무로 전환하여 누락되지 않게 하기
• 상대가 언제 어디서 메일을 읽었는지 추적하기
• 공통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할 수 있도록 서식 만들어 두기
• 과도하게 발송되는 뉴스레터는 주기적으로 구독 해지하기
•이메일은 다섯 문장 미만으로 작성하기
•이메일 발송자의 얼굴과 숨겨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소셜 플러그인 사용하기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이메일이 왜 이렇게 복잡한 의사소통 창구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메일이 대화, 아이디어, 독촉, 정보, 이벤트, 영상, 이미지, 문서 등을 주고받는 주요 입출력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메일은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이자, 직업 세계의 다양한 요구를 주고받는 무대이다. 즉 이메일은 우리 두뇌가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NS와 모바일이 이런 관심의 비중을 어느 정도 가져갔지만(앞으로는이들 매체가 이 모두를 독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 각자가 어딘가에 디지털 메일함을 보유하고 있고,늘 그곳을 활동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디지털 자아가 육체적 자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공지능이 극적으로 발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괴리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의 메일함을 두뇌의 확장으로 바라본다면, ‘받은 편지함 0통’이라는 개념은 한층 의미심장하면서도 미묘해진다. 만약 이메일이 나의 아이디어나 목표를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메일함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시도는 아무런의미가 없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나는 전의를 상실한 적을 상대하듯이 매일 이메일과 씨름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이메일에 투자한 시간이 내게 뭔가 의미를 주고 나의 성취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이렇게 이메일을 읽고쓰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는 이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그 메시지를 처리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내가 알아야 할 정보인가? 신속하게답변해야 하는가? 나중에 다시 볼 필요가 있는가? 친구가 즐길 만한 정보인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심사숙고해야 할까? 이 내용과 관련된 다른 이메일이나 아이디어, 작업, 프로젝트가 있는가? 이메일을 당신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다음의 간단한 세 단계를 따라 보길 권한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파악하라
사람들은 저마다 ‘처리할 일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록의 대다수는 책상 정리, 프레드에게 이메일로 마감일 알리기, 인보이스 발송 등과 같은 아주 단순한 작업들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이외에 각종 목표, 계획, 열망과 관련된 ‘계속 발전시켜야 할 일들’의 목록도 있다. 이 목록은 처리하는데 복합적 행위가 요구되고 시간 경과에 따라 처리해야 할 단계들이 다층적이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더 어렵다.
이런 복합적 목표는 시간과 에너지, 기회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달성하기 어렵다.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페루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우상을 만나 보는 게 궁극적인 목표인 사람도 있다. 미래의 사업, 자선 활동, 혹은 인간관계 등의 목표는 일상에서 개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메일이라는 무정형의 공간 속에서 길을 잃기십상이다. 당신의 메일함을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촉매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이 목표들이 눈에 보이도록 드러나게 만들어야 한다. 내 경우는 약 4개월마다 두세 가지 복합적 목표를 정한 다음, 그 목록들을 항상 상기할 수 있도록 책상 앞에 붙여놓고 있다.
각각의 메일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라
당신이 받은 이메일은 어떤 주제인지, 누가 보냈는지에 따라 당신이 목표를 이루는 데디딤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복합적인 목표를 인식하고 이를 마음 한가운데에 부각시켜 놓으면, 메일함으로 들어오는 내용,사람, 기회 속에 숨은 관계와 잠재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메일함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훑어 내리지 마라. 각각의 메시지를 잠시 동안이라도 심사숙고한 다음, 이 메일을 자신의 전반적인 목표와 어떻게 연계시킬 수 있는지 살펴라. 누구와이 메일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일의 진척을 도와줄 만한 메일인가? 도움이나 조언을 요청할 기회인가? 이 사람은 나를 지지해줄 만한 사람인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둔다면 장기적 안목과 새로운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메일 정리, 전송, 응답, 분류, 라벨링 등을 처리할 수 있다.
버려야 할 것은 그냥 버려라
여러분도 나처럼 하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시험해 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것이 너무나 많으리라 믿는다. 당신의 메일함은 이런 가능성들의 보고寶庫와 같다. 창의적인 사람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인 장소다. 그러니 마음이 넉넉한 낙관주의자들은 메일함에 50개, 100개, 심지어 1000개의 메일을 쌓아 둔 채 언젠가 귀중한 시간을 들여 응당한 대접을 해 줄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메일함을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규칙은, 핵심 목표를 살리기 위해서는 잡다한 가능성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메일함을 둘러보다가 어떤 아이디어나 기회에 눈길이 가거나 신경이 쓰인다면, 이를 추진하는 것이 자신의 복합적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나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정중하게 내려놓은 다음또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라. 만약 당신 내면의 낙관주의자가 말한 대로 그 이메일이 정말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을 지녔다면,그런 기회는 언젠가 반드시 또 찾아올 테니 말이다.
오래전 《진짜 남자는 키슈를 먹지 않는다Real Men Don’t Eat Quiche》라는 제목의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진정으로 남자다운 모든 이에게 선사하는 가이드북’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조언 중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내용은 “진짜 남자는 자동응답기를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요한 용건이라면 전화가 다시 오게 돼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했던바는 유머와 남성성의 과시였겠지만, 이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테크놀로지 및 그 도구와의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잃고 있다는힌트를 담고 있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너무나 맹목적으로, 그리고 기꺼이 우리 삶에 받아들인 나머지, 좀처럼 그 관계에 대해 숙고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려 하지 않는다.
긴급한 알람의 함정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멋지게 디자인된 휴대용 기기들은 우리 안으로 너무 깊게 손을 뻗친 나머지 매너와 문화까지 바꿔 놓고 있다. 전화나 메시지, 알람이 더는 개인적 시공간을 침해하는 요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헬스클럽과 공원은 더 이상 개인적 발전이나 사색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단지 휴대폰으로 ‘출석 체크’를 하는 또 하나의 장소일 뿐이다. 예전에는 저녁 식사 자리나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으면 매너가 없거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다반사로 용인되는 행위다.
자존감과 에티켓은 편리한 접속을 위해 우리 삶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일마저도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개인의 삶 곳곳에 뿌려지다시피 한다. 우리는 퇴근 후나 심지어 휴가 중이라 해도, 언제든 급한 고객을 돕는 게 마땅하다는 잘못된생각에 매몰되어 있다. 언제든 대기 상태여야 하고 항상 모든 사람에게 응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전자 사슬에 묶여 못된 상사, 까다로운 고객, 심심한 친구에게 늘 끌려다니고 있다.
가장 곤란한 점은 우리가 ‘긴급함’과 ‘중요함’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서, 모든 일이 긴급한 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소위 ‘긴급’하지만 사소한 일이, ‘중요’한 일보다 먼저 처리되기 훨씬 쉽다.
그러나 중요한 일보다 긴급한 일을 우선시하면 결국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일을 고르게 되고 만다.
매번 새로운 이메일이 올 때마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나뭇잎처럼 미풍에도 이리저리 나부끼게 된다. 자신의 관심사는 어느새 옆으로 제쳐 둔 채 타인의 일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바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되새기고 상상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로부터 멀어져 버린다. 잠시 멈추는 그 시간이 우리 삶을 향상시키고 위대한 업적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데도 말이다.
주인과 노예 사이의 갈림길
세상일에 지름길은 없다. 기술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지름길은 사람들에게서 일을 빼앗아 간다. 최근 나를 걱정해 주는 한 친구가 내게 명상 수행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했다. 나는 평소 새로운 아이디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경우에는 마치 기타 연주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실제 기타 연주를 배우는 것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좋은 명상 수행법이라면 배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게 핵심일 것이다.
특별히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익힌 기술을 통해 한층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육만 위축시킬 뿐인 목발을 굳이 왜 짚어야 하는가? 왜 애써 노력을 피하려 드는가? 그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곧 목적이다. 노력이 사람을 만들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준다.
매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건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다. 어디에나 기술이 존재하고 믿을 만하기에 우리는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는 모름지기 새로운 습관이 따르기 마련이고, 좋든 나쁘든 새로운 습관은 늘 주의하며 살펴야한다.
카페인, 사탕, 알코올을 섭취할 때 중독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듯이 도구와의 건강한 관계 또한 의식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의 균형감을 잃고 도구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마셜 매클루언의 이론대로 “우리가 도구를 만든 다음에는 그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우리가 도구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이유는 그 편이 가장 저항이 적고 쉬운 통로이기 때문이지만, 쉬운 통로에는 항상 함정이 놓여 있는 법이다.
우리는 기술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자기 자신과 타고난 본능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우리 삶에는 굳이 기술을 이용해 ‘더낫게’ 만들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당신의 스마트폰보다 당신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당신이 구글을 통해 상상하는 그 이상이 존재한다.
실수도 삶의 일부이고 깊고 새로운 통찰력으로 인도해 줄 때가 많은데, 왜 굳이 완전히 없애려 하는가?
예전에는 운전하다가, 혹은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멋진모험담이자 훌륭한 이야깃거리였다.
이제 우리는 그저 GPS가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다.
진정한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법
“너 자신을 알라”는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충분하다고 믿는일은 한층 더 어렵다. SNS에 출석 체크를 하지 않고서, 트위터에 최근 소식을 올리지 않고서, 팔로워들로부터 ‘좋아요’를 얻기 위해 자기 존재를 입증할 사진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긍정하는 게 요즘은 힘들다는 말이다.
전자 기기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자신의 시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고 자신의 삶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첨단 기술을 철저히 반대하는급진적 네오러다이트neo Luddite 운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일은 쉽다. 개와 산책을 하고, 아이와 한가롭게 거닐고, 데이트를 나가라. 단, 휴대용 기기를 손에 들지 않은 채로 말이다. 당신의 자존감, 우선순위, 매너, 좋은 습관은 트렌드를 좇는 일과 맞바꿀 정도로 낡은 이상이 아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할 때 자기 자신을 책임지거나 자녀를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사람도 많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영웅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산만한 외부의 시끌벅적함을 잠재운 채 자신의 심장 박동에충분히 오래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네안데르탈인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걷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만의길을 가는 사람 말이다. 그 대열에 합류하라.
어느 쪽에 더 집중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신중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라.
세상은 기다리게 돼 있다.
중요한 용건이라면 다시 전화가 오게 돼 있듯이 말이다.
젊은 시절, 아직 아마추어 시절일 때의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나, 별로 쓸모없는 존재다. 적어도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영역, 뭔가를 이루는 영역에서는 그렇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우리가 보유한 유일한 기술이라고 해 봤자 실수하기,지쳐 나가떨어지기, 기회 앞에서 허둥대기, 자신의 권리를 과도하게 주장하기 등 보통 자기 앞길을 막는 행위들이다.
프로가 되고 나서야 모든 것이 변한다. 그러나 프로가 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문성에 이르는 길에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 나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단계들에 대한 개념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창업을 하고 싶어” “영화를 찍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문성에 이르는 3단계
내 인생에서 이 단계들이 어떻게 펼쳐졌는지에 기반해 나만의 로드 맵을 소개하겠다. 1단계는 단 1시간이라도 자리에 앉아 일할 수 있는 단계다. 비웃지 마라. 100명 중 99명은 해내지 못하는 단계다.
이 단계는 입문 수준, 유치원 수준이다. 그럼에도나는 7년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오래전 맨해튼의 셋방에서 깨달았다.
이 1시간을 반복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2단계다. 다음 날에도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은 가능할까? 일주일 동안 계속할수 있을까? 이 단계에서의 우리는 만화 속 물고기와 같다. 그 물고기는 원시 바다에서 튀어나와 숨죽인 채 마른땅에 처음 지느러미를 내딛었다. 이는 거대하고 획기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가미를 지닌 채 시속 0.0001킬로미터로 기어가며 산소를 갈망하는 캄브리아기의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에 불과하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아직 ‘질’적인 면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당신과 내가 결국에 책, 영화, 회사 등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뭔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하게 되는 일은 자기감정을 관리하고, 자기 파괴적 충동을 조절하고, 역경에 처해서도 굴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것이다(와튼스쿨이나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는 이런 문제의 해결법을 가르치는 수업 과정이 개설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독학하는 수밖에 없다).
3단계는 결승선을 넘는 것이다. A에서의 시작은 쉽다. 그러나 과연 Z에 이를 수 있을까? 마침내 ‘끝’이라는 글자를 새기기까지의 과정에서 실제로 뭔가를 얻어 낼 수 있을까(처음 프로가 된 이후의 내 경험을 돌이켜 보건대, 이 과정에 또 4년이 더 걸렸다)?
우리가 장章 하나를 쓸 수 있다면, 단편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까? 단편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이제 장편 영화도만들 수 있을까?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아가미로는 호흡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폐를 가졌고, 두 다리로 서 있으며, 완성된 문장으로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품질’을 논하기 시작한다.
기교, 경험,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시장에서 통하는,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전하는, 그리고 독립적인 판매가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이르렀다. 그럼 이제 프로가 된 것일까? 그럴 수도,아닐 수도 있다. 첫 번째는 어찌어찌 해냈지만, 두 번째도 가능할까?
첫 번째 성공 이후가 더 중요하다
나는 ‘저항’을 스스로 창조되고 영속화된, 눈에 보이지 않고 몰개성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저항의 목적은오로지 우리가 일을 해내지 못하게, 최고가 되지 못하게, 능숙, 완벽, 관용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이 힘은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저항의 힘은 전문성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욱 변화무쌍해지고 교활해진다. 저항은 첫 번째 작업에서 두 번째 작업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를 죽이려 든다. 이 힘은 우리를 오만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공격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자만하고 안주한다. 동시에 저항은 두려움을 통해 우리를 약화시킨다.
우리에게 ‘달랑 히트곡 하나로 반짝 성공했을뿐’이라고 속삭인다. 첫 번째 성공에서 두 번째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은 별개의 신기원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나 마찬가지다.이른바 ‘영웅의 길’이다. 그 역경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기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커리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작가라면, 책등에 당신 이름이 새겨진 책들로 가득한 책장을 떠올려 볼 수 있는가? 영화 제작자라면, 당신의 필모그래피가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에 실린 모습이 그려지는가? 사업가라면, 첫번째 창업과 여섯 번째 실패와 아홉 번째 파산과 열두 번째 대성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새로 태어날 수 있겠는가?
과연 당신은 성공을 감당할 수 있는가? 실패 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가? 업무를 타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가? 외부에 위탁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 뒤를 돌아보고 다음 세대가 뒤이어 등장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압박을받으면 윤리를 저버릴 것인가? 시류에 영합하고 원칙을 포기할 것인가? 세상이 변해서 책, 영화, 자선 사업이 모두 로봇의 일이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화성으로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도넛 구멍이 아니라 도넛을 주시하기’를 당신의 목표로 삼아라. 하지만 도넛이 뭘까? 돈인가? 권력, 섹스, 영광, 악명인가? 봉사인가? 이타주의인가? 당신에게는 진정으로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정말 프로가 되고 싶은가? 그럼 프로란 뭘까?
프로란, 자신의 주변 또는 자기 내면에서 좋든 나쁘든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고차원적 노력과윤리로 무장한 채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프로는 매일 일터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프로는 아픈 채로도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다.
프로는 성공도 실패도 절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내 경우에도, 결국에는 모든것이 다 일에 관한 문제였다. 역설적이게도 프로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점점 젊어지고 순수해진다. 물론 신경도 과민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만큼 탁월함에 더 다가서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일에 소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당신이 거듭해서 실행할수록 그 실천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덜해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내놓음으로써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능을 위해 무엇이든 내어 준다. 전문성이라는 여신에게, 그에 이르는 과정에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사포Sappho 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진화하면서도 셰익스피어다움과 사포다움, 스프링스틴다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과 나 또한 우리만이 들을 수 있는 멜로디에 맞춰 계속 변신해 가야 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문턱을 넘을 때마다더 많은 것을 내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말로 이런 길을 걷고 싶은가? 혹시 누군가 당신에게 수월한 길이라고 말했던가, 아니면 당신이 선택한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