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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Sep 02. 2022

설득의 기술

그런 것은 없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만큼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무력한 것은 없다. 그것이 목적을 가진 언어의 자가당착적인 비애다.


 어렸을 때는 말과 글로 사람을 홀릴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남들이 글 좀 쓴다고 추켜 세워 주니 정말 그런 줄 알고 감히 짝사랑하는 아이에게 연애편지를 썼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였는데 순전히 겉모습만 보고 혼자 얼굴을 붉히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점철된 편지를 써서 보내서 전교적인 망신을 당했다. 나도 그걸 돌려 본 독자의 입장에서 배를 잡고 한껏 웃어 보는 특권을 가졌으면 좋았을 정도로 웃긴 명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그 부끄럽고 흉한 것을 쓴 이였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싶지만 이 글을 쓰면서 마지막 문장이 기억나 버렸다. '네가 날 좋아해 주지 않는다 해도 난 그 아픔까지 사랑할 거야.'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를 응용한 이 마지막 문장은 어린아이가 쓰기엔 너무 성숙한 표현이었고 그래서 고백 편지를 돌려 본 아이들 사이에서 히트 쳐서 급기야 선생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그 이후는 차마 가슴 아파 적을 수 없는 흑역사다. 어쨌든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해서 한 번 친해져 보려고 쓴 글은 정반대로 너무나 어색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이제는 그 아이가 말을 걸면 도망가게 되고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현실은 대입 논술고사가 아니었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개의 의견 중 하나를 선점하여 남보다 더 구체적이고 훌륭한 증거와 논리로 상대방의 의견을 압도해 버리면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논술고사가. 현실은 항상 그 어느 것도 딱히 더 낫다 싶지 않은 고만고만한 의견들 중에 힘겹게 하나를 골라 흐릿하게 돌려 돌려 전달하면 그 공허한 말들이 서로 부딪히는 지지부진한 과정 중에 어느새 말 외의 것들, 권력이나 이해관계나 외부 상황과 같은 것들에 의해 결론이 나 버리고 나는 설득에 실패한 사람이 되어 있기 십상이었다.


 교훈을 주려고 하는 대화에 지루해 본 적 있다면.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하는 소리에 반발심이 들어 본 적 있다면.

 상을 타기 위해 쓴 글만큼 허무한 것을 본 적이 있다면.

 할 말이 없는데 침묵을 깨트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후회한 적 있다면.

 마음을 사려고 글을 썼는데 읽는 사람이 도망가 버렸다면.

 나를 알아줘, 투정했는데 '야 너만 힘드냐 세상 사람 다 힘들지' 하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면.


 우리는 모두  번은 목적을 가진 언어 때문에  목적 달성에 실패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설득에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잡으려고 하면 달아나 버리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아니 애초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과 글에 무슨 힘이 있을지 회의가  수록  가지 느끼는 것은 있다. 글과 말은 의도와 목적이 없을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어떠한 설득이나 치장의 의도가 없을 , 자기 자신을 그냥 보여  , 단어와 문장이 이끄는 대로 대화와 글을 이어갈 , 그나마 거짓은 아닌  언어가 된다.  언어가 배설의 기능뿐 아니라 어떤 다른 기능적 효용이 타인에게 있을  있겠는가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겠지만 말이다.


앙리 마티스, 대화 (1908-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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