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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Jan 11. 2023

어제보다 조금 더 낫지 않아도 살기

2023년 1월의 일기

 보상받으려고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식으로 인해 뿌듯하고 기쁜 순간이 있으면 육아가 덜 힘들다.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서 우리 아이가 좀 뛰어난 게 있는 것 같으면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지만 속으론 뿌듯함을 느낀다. 숫자를 또래보다 좀 더 잘 센다든지, 두 발 자전거 타는 것을 금방 배운다든지, 두 살 때 봤던 영화의 줄거리를 2년이 지나서 기억한다든지 하는 순간이 오면 '아이고 이 귀여운 자식'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순간은 드물고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처지는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얌전하게 앉아서 책 읽는 여자애들에 비해 왜 이렇게 부산스러운지 모르겠고, 게르만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같은 반 남자애들보다 덩치가 작아서 맞고 다니는 것 같아 속상하고, 그게 다 평소에 하도 안 먹어서 그런 것 같고,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서 학교나 교회 발표회에서 쭈뼛대는 게 못마땅하다.


 그래서 다른 아이와의 비교보다는 아이 자신이 그전보다 좀 더 발전한 점이 있을 때 칭찬해 주려고 노력하고 그럴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아이가 영어와 한국어에 비해 독어를 잘 못하는데 독어를 술술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독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 줘도 거부감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기특하다. 왜냐하면 예전엔 독어 듣기 싫다고 책을 집어던졌기 때문에...... 하지만 어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 되기'가 그렇게 쉬운가. 그것도 보통 노력과 머리로 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나날들은 수십 수백 번을 가르쳐 줘도 똑같은 알파벳을 매 번 틀리게 쓰는 아이에게, 수십 수백 번을 화 안 내야지 다짐하고도 이런 것도 모르냐고 소리 지르는 나의 전쟁 같은 시간들이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도, 어제의 아이 자신과의 비교도, 어쨌든 간에 모든 종류의 비교에서 오는 기쁨은 지극히 찰나적이고 허망하다. 사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큰 감사와 기쁨을 느꼈을 때는 아이가 뛰어나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발전했던 순간이 아니라 녀석이 품은 마음이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예전에 살던 집 베란다에 홍학 모양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아이를 놀게 하면서 '일어나서 첨벙첨벙해 봐'라고 했더니 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핑크 아야 허그."


 자기가 발을 세게 구르면 핑크 버드가 아플까 봐 못하겠다고, 새가 아프면 안아 줘야 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핑크 괜찮대, 안 아프대' 하고 말해 주니 그제야 조심스럽게 첨벙첨벙하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예쁘고 뿌듯하고 하늘에 감사했는지 그걸 핸드폰 메모장에 '우리 아이 어록'이라면서 기록까지 해 놨다. 얘가 그래도 EQ가 높고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은 갖고 태어난 것인지 이 비슷한 에피소드가 꽤 있다. 이건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기에 내가 육아에 들인 노력이나 내 능력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아이가 지음 받은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라나길 바랄 뿐 여기서 내 역할은 없는 것 같다.


홍학 수영장

 연말이 되어 2022년을 되돌아보는데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나'로 인해 감사하고 뿌듯함을 느끼는 소박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분명히 객관적으로는 감사할 거리들이 많았다. 새로 시작한 일도 있었고, 날 찾아 주는 사람도 있었고, 개인적인 버킷 리스트를 행동으로 옮긴 것도 있었고, 책도 좀 읽었고, 아무튼 이래저래 감사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마음은 허전하고 무겁기만 했다. 어느 것 하나 내 기준에 차게 이룬 게 없었다. 예전에 머리가 팍팍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업무 진행 속도도 느리고 작업의 질도 낮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폐만 끼친 것 같고, 피곤함에 의무적으로 남을 대해서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고, 버킷 리스트를 시작은 했다지만 지지부진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고, 한국에서 이고 지고 가져와 놓고 아직도 안 읽은 책들도 많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끔찍하게 무식하고, 기타 등등...... 그래서 연말에 흔히 하는 '이룬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겨울 휴가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예전 파리에 살 때 어학당에서 만난 태국인 친구인데 이번에 방콕을 놀러 가서 무려 7년 만에 해후한 것이다. 그때는 교양 있게 불어나 배우고 카페, 도서관, 미술관 이런 데 같이 다니는 새댁들이었는데 지금은 둘 다 노산과 중년 육아에 찌든 아줌마가 되어 만났다. 몸은 피곤해도 입은 쉬지 않는 엄마들,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들, 그런 아들들을 묵묵히 옆에서 돌보는 아빠들이 함께 한 짧은 점심 모임을 끝내고 너무 아쉬워서 또 계속 메신저에서 대화를 주고받는데 친구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다.


 "너 그전보다 행복해 보여. (You look happier than before)."


 그전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파리에서 같이 놀러 다닐 때가 지금보다 10kg는 덜 나갔고, 지금보다 꿈이 많았고, 지금보다 더 가능성 있는 미래가 있었고, 지금보다 책임은 가벼웠고 10년은 더 어린 젊은이였는데? 철없이 웃고 밝은 모습만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그래도 그때 나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우울, 불안을 느꼈었나 보다. 그리고 지금은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내가 행복해 보인단다. 이것 참 신기한 일 아닌가. 업적도 없고 발전도 없는데 행복할 수 있다니! 능력과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애써 채우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나 이대로 행복해진 걸까?


 이 말을 해 준 그녀에게 고마워졌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봐 주었구나. 그래서 나의 행복을 발견해 주었구나. 내가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남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외계어 같은 말에 감동받아 일기까지 쓴 것처럼. 너는 그런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발견해 주었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만났는데도......


 그래서 어떤 새해 목표도 세우지 않고 홀가분하게 2023년을 맞기로 했다. 어차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들에 압도되어 괴로워하지 말아야지. 올해는 내가 바라보는 대상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좀 더 자주 발견하는 눈을 가지고 싶은 소망 하나는 품고 있지만 그조차도 무거운 배낭처럼 어깨에 둘러메고 가진 않으려 한다. 어제보다 한 치도 자라나지 않았어도 괜찮잖아. 몇 걸음 더 뒤로 물러섰어도 주저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7년 전에 친구와 찍었던 사진. 우리의 마지막 미술관 나들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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