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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Sep 04. 2023

사람에 체한 날

      내 얼굴을 보기만 해도 활짝 웃고 어서 나를 안고 싶어서 달려올 정도로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뜨겁던 사랑도 연애 초반을 넘어가면 미지근해지고 부모형제도 명절에 보면 포옹이 어색하고 악수는 더 부적절한 것 같아 어떤 스킨십도 없이 헤어지는데 그래도 아직은 내 얼굴을 보면 우다다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기는 이가 하나 있다. 다섯 살짜리 아들. 


      그런데 몇 주 전 유치원에 데리러 갔는데 그날따라 풀 죽은 듯이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평소와 다른 차분한 텐션에 좀 놀랐지만 오늘 하루 어땠냐고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니 좋았단다. 그렇게 손 꼭 잡고 집에 걸어와 밥도 먹고 과자도 먹고 같이 나란히 앉아 색칠놀이를 하는데 녀석이 문득 말을 건넨다.


“엄마, 5일 후에 누구 생일인지 알아?”

“몰라. 누구 생일인데?”

“F 생일이야. “

“아 맞다 그렇게 들었던 거 같네.”

“그런데 나는 초대 안 받았어. “


      올 것이 왔구나. 유치원에서 생일파티 초대 되느냐 마느냐 문제로 애들이 속상해하고 부모들도 은근히 맘 상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우리 애한테도 그런 순간이 왔나 보다. 사실 작년까지는 아이가 생일파티가 뭔지 이해도가 떨어져서 초대되면 좋은 거고 초대 안 되어도 기분 나쁜 것 없이 잘 지냈는데 다섯 살이 되고 나니 생일파티에 가고 싶나 보다.


“J는 F 생일 파티에 간대.”

“그럼 여자애들만 초대했나 보다. “


     이 얘기에 갑자기 녀석이 “그건 너무 나빠! 나도 내 생일에 그러면 남자들만 초대할 거야! “ 하며 엉엉 운다. 이런...... 내 말이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되긴커녕 오히려 더 큰 파도를 마음에 불러왔나 보다. 등을 토닥거려 줘도 평소 같으면 금방 그치는 녀석이 한참을 운다. 그래서 ‘기분 전환할 겸 목욕하면서 물장난할래?’ 물어보니 그제야 눈물을 닦고 일어서 욕조로 들어간다. 거품 목욕하면서 다시 명랑해진 아들은 이제 섭섭함을 다 잊은 것 같은데 옆에 앉아 있는 나는 그때부터 오히려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 녀석이 F라는 친구와 학교에서 워낙 잘 논다고 F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따로 만나 놀아도 좋을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이 귀띔해 준 적이 있어서 내가 F의 엄마에게 연락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논 적도 있다. 그 집에 초대되어 가면서 머핀도 구워 가고 작은 선물도 챙겨 가고 많이 신경 썼는데 생일파티 한 번 초대 좀 해 주지 거참 야박하네, 이렇게 섭섭한 맘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날 그 집에서 아이들 노는 동안 부모들 커피 마시며 어울릴 때 내가 말실수를 했나, 또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나, 부모가 별로라 아이가 초대 못 받았나,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J의 엄마가 자기 집에서 J와 F가 같이 놀기로 했는데 나도 시간이 되면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나도 바쁘고 이미 여자애들끼리 놀려고 잡은 놀이데이트에 남자애인 우리 아이가 끼는 게 좀 무리일 수도 있는데 F의 생일파티에 가고 싶어 했던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스케줄을 조정하고 시간을 빼서 데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두 여자애가 우리 아이를 끼워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다. 놀러 오라고 했던 J엄마는 민망해서 따로 자기 딸을 불러내 혼내며 같이 놀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이 자리가 불편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얼른 집에 가고 싶은데 아들은 더 있고 싶어 하고 하고 진퇴양난이었다. 나의 우매함이 자초한 이 촌극에 누굴 탓하리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좋은 점은 사람 욕심이 덜 해져서 누가 불러 준다고 좋다고 다 나가지 않고 누가 나를 안 불러 준다고 해서 크게 섭섭하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 조절이 되는 거다. 스터디 후에 다른 이들이 놀러 간다고 하는 대화를 듣고 '어디 가세요?'라고 물어봤는데 어디 간다고 구체적으로 장소까지 말하면서도 '너도 갈래?'라고 끝까지 물어보지 않았을 때 '그래, 내가 뭐라고...... 이 스터디에 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아직 친하지 않으니까 당연해.'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진심으로 홀가분하게 집으로 가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단 것과 넷플릭스)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한 모임에 올 수 있냐고 전화가 왔지만 내 체력과 일정에 부담이 되면 정말 가고 싶지만 안 될 것 같다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직도 자식 일에는 판단력이 흐려져서 낄 데와 안 낄 데를 구분하지 못해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에 나가 안 느껴도 될 서운함을 느끼고 사람에 체해 버린다. 이렇게 모자란 나인데,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운데, 거절과 소외에 익숙해지는 게 영원히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을 벌써 시작한 아이를 안쓰럽지만 뒤에서 바라보며 그 아이가 소외되었을 때 스스로 달래고 건강하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니. 부모 노릇 이거 왜 이렇게 어려운 건데! 


(F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던 아들을 보고 안쓰러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몇 주 전인데 다음 주말에는 세 개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하루에 두 탕씩 생일파티 참석을 하게 생겼다. 선물을 준비하다 보니 애가 인기 많아 생일파티에 너무 많이 초대되면 나가는 선물 값도 만만치 않겠다 생각이 드는 거 보니 참 나란 인간은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갈 때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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