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아이 유치원에서 깜짝 선물을 받았다. 유치원은 방학 중이었는데 선생님들이 미리 아이들 영상을 찍어서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보낸 것. 그전 주에 있었던 파스나흐트 (Fasnacht 카니발 축제) 기념으로 변장 파티 도중이었는지 가면과 공주옷, 만화 캐릭터 옷을 입은 아이들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기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를 내리는 모습은 정말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고 으스러지게 안아 주고 싶고 볼 비비고 싶고 뽀뽀해 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들의 대답은 나름대로 몇 가지 종류로 묶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사랑은 신체 접촉, 물리적으로 가까운 신체적 거리, 몸으로 표현하는 바디 랭귀지, 이른바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대답들이 있었다.
- 사랑은 누군가가 안아 주는 것.
- 먼저 키스부터 해야지.
- 사랑이란 키스를 한다는 걸 의미해.
그다음으로는 물질적인 상징, 심벌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류가 있었다.
- 사랑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거야.
- 반지.
혹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 나는 당근을 사랑해.
- 마쉬맬로우 먹는 거
- 나는 우리 엄마를 너무 사랑해
- 사랑은 가족을 사랑하는 거야.
- 친구를 사랑하는 것
- 동물에게 친절한 거.
아이들은 사랑을 '친절'이나 '우정' '도움' '행복'과 같이 사랑 그 근처에 있거나 어쩌면 사랑 그 자체일지도 모를 다른 감정과 행위로 이해하기도 했다. 말 잘하고 성숙한 아이들은 사회 규범과 제도 안에서 사랑을 이해하기도 했다.
- 우리는 선생님을 좋아해, 왜냐하면 우리한테 너무 많은 걸 가르쳐 주시니까. 우리는 그걸 꼭 배워야만 해, 공부는 너무 중요하니까!
- 결혼하고 그다음에 '나는 너를 좋아해, 그래서 너랑 결혼했어, 그래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거야.
'과학실험을 같이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경험, 같이 하는 시간으로 사랑을 이해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많았던 응답은 아무래도 이거였다.
- 사랑은 사랑이야.
- 사랑은 누구를 사랑하는 거야.
- 사랑은 사랑하는 걸 의미해.
- 사랑은 좋아하는 거야.
네다섯 살짜리들이 어휘력이 부족해서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웃다가 문득 수긍했다. 그래. 사랑은 사랑이지. 사랑을 어떤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에게 사랑이란, 아름답고 귀엽고 예뻐서 좋아하다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초라한 것이 짠해서 마음 쓰이다가, 너무 많은 마음을 주어서 거두어들일 수 없어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한 마음이 된 이 모든 게 사랑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대상이 사라지거나 내 사랑에 화답하지 않거나 인연이 다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게 인생인 것 같고. 남녀 간의 사랑을 지나 누군가와 가족이 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인생을 살면서 알 수 없는 이 사랑, 이 사랑만이 답이려니 하고 살게 된다.
(밸런타인데이 즈음 시의적절하게 올리고 싶었던 짧은 글인데 게으르고 핑계 많아 3월에서야 올린다. 화이트데이가 가까워 오니 그래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