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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Oct 21. 2021

바다는 어디든 참 멀다

골든로즈 호 침몰 사고 


전날 당직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다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몽롱한 정신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더 빨리 퇴근하지 못함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퇴근 후 머리를 할 생각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꽤 오래전 일이라 사실 그날의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다.


 ‘비상 출동 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곧 함정으로 복귀했다. 

무척 화가 났다. 퇴근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근무를 하다 보면 ‘비상(emergency)’은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비상(非常)은 어쩌면 ‘정상(定常)’일지도 모른다. 


출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정확히 하루 만에 다시 출동을 나가는 것이었다. 

급히 청수탱크에 물을 받고 유류탱크에 기름을 채운다. 

주부식을 서둘러 싣는 것으로 최소한의 함정 자체 출동 준비가 끝났다. 

홋줄을 걷고 출항 경적을 울린다. 

출항 날짜만 있고 복귀 날짜가 없는 ‘출동 명령서’를 들고 말이다. 


2007년 5월 12일 중국 다롄(大連)을 출발하여 충청남도 당진으로 향하던 대한민국 제주선적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의 화물선과 충돌 후 침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 함은 골든로즈호 실종자 수색 임무를 위해 중국 발해만으로 긴급 출동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고라도 사고 후 출동은 늘 마음이 무겁다. 

전속력을 다해 달려가지만 참 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중국 측에서 사고 현장을 조사 중이었고 우리는 사고 경위를 전달받았다. 

가해 선박인 중국 선박은 충돌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늦게 신고를 했고 그 때문에 사고 현장 수색 또한 늦어졌다. 


우리 함에는 2명의 중국어 특채가 있었다. 

3교대 근무가 원칙이나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경찰관은 두 명뿐이고 그중 한 명은 사고 현장에 파견, 

나는 함정에 남아 상황을 전달받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교대시간도 없었다. 

눈치껏 밥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올 뿐이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 모두가 힘들었다. 

계속 지시사항이 떨어졌고 실종자 수색에 기대했던 성과는 없었다. 

우리는 사체로 발견되는 실종자를 만날 뿐이었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며칠인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상황보고서에 날짜를 기입해야 했기에 간신히 며칠인지 알 수 있었다. 

언제 복귀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지쳐갔다. 


청수탱크에 받아온 물이 바닥났다. 

근무자들에게 하루 한 번만 씻을 수 있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주부식이 동나기 시작했다. 반찬은 초라해졌다. 

담배가 떨어진 직원, 챙겨 온 약이 다 떨어진 직원들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에 극도로 예민해져 갔다.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누구를 탓하지도 않는다. 

사람인지라 그냥 그 상황이 힘들 뿐이다. 


그렇게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교대 명령’이 내려왔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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