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을 오고 가는 동안......
나는 이제 경비함정으로 출근한다.
3,000톤급 경비함정에는 조타실, 기관실은 물론 행정업무를 보는 행정실, 체력단련을 위한 체육실, 잠을 자는 개인 침실 등이 있다. 함정은 나의 사무실이기도 하고, 또 다른 집이기도 하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7박 8일 정도 출동을 나간다.
자국(自國)의 경제적 주권이 미치는 수역(水域), 가장 먼바다 배타적 경제수역(排他的經濟水域, Exclusive Economic Zone, EEZ)이 우리의 주 근무 해역이다.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1해리(海里)가 약 1,854m이니 육지로부터 약 370km 떨어진 바다인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통신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선박들의 교신 소리는 적막한 바다의 의지가 되어 준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함정 주변으로 통항하는 선박은 적지 않다.
중국 상선, 북한 선박, 우리나라 어선들로 레이더 안은 반짝반짝 화려하기 이를 때 없다.
출동 중에는 선박 충돌 사고 예방, 의아선박 확인,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은 물론
틈틈이 함정훈련도 해야 한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중국어선 불법 조업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한 출동에 중국어선 5척을 나포한 적도 있다.
‘단속’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불법 조업행위가 의심되면 사전에 증거를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분(分) 단위로 의심선박의 항적을 기록 저장하고, 해군에 협조 요청도 보내야 한다.
증거가 어느 정도 수집되면 나포 작전을 위한 대원들이 분주해진다.
개인 화기를 챙기고 상대 선박의 위치와 접근 및 제압 작전을 짠다.
나포작전 명령이 떨어지면 대원들은 두 척의 고속단정에 신속하게 몸을 싣는다.
바다 한가운데를 전속으로 달리면 어떤 기분인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단정이 해수면에 부딪힐 때면 맨 몸으로 시멘트 바닥에 내리 꽂히는 느낌이다.
허리와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은 함정근무 후에 남은 훈장(?)이 되곤 한다.
바다가 물이라고 물렁하게 보았다가는 골로 가게 된다.
우리는 보통 7~8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중국 선원들이 쇠꼬챙이, 칼을 휘두르며 해양경찰의 승선을 결사적으로 막는다.
저항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들이 불법 행위를 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짐작일 뿐 승선 후 우리가 확보해야 하는 것은 정황이 아닌 ‘증거’이다.
조타실과 기관실부터 제압한 후 어획물 창고를 뒤진다.
증거에 살고 증거에 죽는 것이 단속이다.
증거가 확실히 있음에도 기관고장이나 단순 표류라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단속될 경우 꽤 많은 금액의 벌금이 부과되고 어획물은 몰수되기 때문이다.
고속단정에 올라타 외줄 와이어에 매달린 채 바다로 떨어질 때,
중국 선원들의 저항을 뚫고 상대 선박에 올라탔을 때,
증거를 확보해 다시 경비함정으로 복귀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뒤통수를 지켜준다.
서로가 지켜준 뒤통수 덕에 우리는 다음 작전을 다시 함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주지 못한 동료도 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
우리의 임무이고 역할이지만 때로는 외롭고 서럽다.
특히 중국어 특채는 단속 현장 투입은 물론 조사업무까지 해야 한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어 특채는 자기 결혼 외에는 함정근무 동안 휴가를 가기도 교육을 가기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힘들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나는 바다를, 해양경찰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는 너그러워 보이지만 매우 엄격했으며 그 속에 있는 우리는 차가워야 했지만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