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언니 Oct 23. 2021

몸으로 일해야 하는 때!

땅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땅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나의 일터 이야기

2년의 함정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 발령을 받았다. 

대개 여경은 1년 정도 함정 근무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개이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예외가 되었다. 

중국어 특채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2년 연이어 함정 근무를 했다. 

중국어 특채 남자 경찰관 중에는 그 이상을 함정에서 계속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육상 날씨도 신경 쓰지 않던 아빠는 딸이 함정 근무를 하는 내내 ‘해상 날씨’를 꼼꼼히 챙겨 보셨다. 

파고가 1.5m라는데 멀미는 안 했느냐고 풍속이 얼마라는데 멀미는 안 했느냐고… 

해경이 되는 것을 무척 반대하셨던 아빠다. 

그저 얌전히 공부해서 안전한 교사가 되라고 합격 소식에도 좋아하는 기색 하나 없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에게 여경은 함정 근무도 안 한다고, 걱정 마시라 해놓고, 함정 근무시키면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 해 놓고 16년째 잘 다니고 있다. 


경찰서 근무 부서가 사기업으로 따지자면 총무과였다. 

그곳에서 내 역할은 ‘서무’였다. 다 알겠지만 서무는 ‘자질구레’한 업무가 주 업무이다. 

잘해도 티가 나지 않지만, 못 하거나 놓치면 바로 티가 나는 업무 말이다. 

우리 과는 물론 경찰서 안의 7개 과 서무를 상대해야 했다. 


그때는 무슨 회의가 그리도 많은지. 월례회의, 주간회의, 주간 점검회의 등등 주 5일에 회의 없는 요일이 없었다. 대면 회의가 없으면 서면회의가 있었으니 서무들은 회의자료 만드느라 매일을 쥐어짰다. 

제시간에 취합도 되지 않고, 취합 후에는 수정도 많았다. 

이 때는 이런 일들을 전부 불필요한 행정 낭비로 치부했다.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후임이 생겨나고 나의 직무도 변화가 생겼다. 

담당 주 업무가 생기고 보고서에 쓸 만한 “거리”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쓸모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들이 하나의 톱니바퀴였고, 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이라고 말이다. 

내가 아는 교수님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다.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 따라 일 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몸으로 일하는 때가 있고 머리로 일하는 때가 있고 가슴으로 일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때는 몸으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위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점심은 같이 먹지만, 커피는 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